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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은 Jan 01. 2021

언미라클 모닝

2021년 새 아침이 밝았다. 새해 계획으로 미라클 모닝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미라클 모닝이 요즘 대세니까. 미라클 모닝은 아침 4~5시경, 거의 취침시간 즈음에 기상하여 일상에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확보하고 자기 주도적인 시간을 보내는 기상법이다. 미라클이라는 단어는 많은 사람들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했다. 코로나 19로 단조로워진 일상에 극적인 변화를 기대하게 만든다. 유튜브에선 미라클 모닝의 기적 체험 간증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아침의 변화가 하루의 변화를 이끌고 더 나아가 삶을 변화시키는 기적을 만든다고 한다.


새벽 4시에 일어나는 것. 그 시간에 눈이 떠진다면 그 자체로 기적일지도 모른다. 코로나 시국이 오기 전, 나도 6시 반에 일어나서 7시 수영 강습을 듣곤 했지만, 수영장이 문을 닫은 이후부터는 그 시간에 일어나지 못했다. 수영을 다녔던 날들이 무색하게 요즘 기상 시간은 8시 30분이다. 언제부턴가 언미라클 해진 아침에 죄책감을 느껴 부랴부랴 변명거리를 찾아보았다.


그 첫 번째는 미라클 야근이다. 새벽 1~4시에 퇴근하는 날이 이어지면서 12시가 되어도 눈이 말똥말똥해졌다. 매일 야근한 것은 아니지만 취침시간이 자꾸만 뒤로 밀렸다. 수면 시간이 줄어드니 부지런히 살아야겠다는 의욕보다는 이러다 일찍 죽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두 번째는 미라클 전기장판이다. 겨울철 이불속 포근한 온기는 그 어떤 의욕도 무력하게 만든다. 딱 5분만 더 온기를 느껴보자는 생각을 하면서 결국 다시 잠든다. 아니면 밤새 전기장판에서 흘러나오는 전자파에 노출되면서 쉽게 일어날 수 없는 증상이 생기는 건 아닐까. 나는 문과생이다.

  

세 번째는 미라클 넷플릭스이다. 넷플릭스 서비스를 이용하기에 인간에 수명은 턱 없이 너무 짧다. 넷플릭스의 스포일러는 평생을 구독해도 다 보지 못할 만큼 많은 콘텐츠가 있다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기업이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구독료를 내야 하는 운명이 돼버렸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악독한 건 연속 재생 기능이다. 연속극 특성상 마지막 부분을 다음 편이 궁금해서 참을 수 없게끔 만든다. 우리는 궁금함을 해결할지, 넷플릭스를 끄고 오늘 하루의 남은 일과를 해결할지 선택해야 한다. 악독한 넷플릭스는 연속 재생 기능으로 우리의 삶의 선택지를 뺏어간다. 넷플릭스를 재생할 때 그날에 시청할 콘텐츠에 개수를 미리 입력하면 어떨까?


"기대는 높을수록 충족되기 어렵고, 낮을수록 의외의 만족감이 있다. "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서 김영민 작가는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목표나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계획은 언제나 무력하게 무너지고 그로 인해 사람은 쉽게 불행해지기 때문이다.


김영민 작가의 글처럼 추석을 즐기기 위해선 추석에 대한 기대를 접는 것이 좋고, 아침을 즐기기 위해선 아침에 기대를 접는 것이 좋겠다. 따라서 더 이상 변명거리를 찾지 않고 언미라클한 모닝을 음미하며 살겠다. 미라클의 의미가 예상하지 못한 경이로운 일이라면, 반대말은 예상 가능한 혹은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일 일것이다. 새해에는 특별하지도 기적적이지도 않은 그런 평범한 아침을 나름의 부지런을 떨면서, 의외의 만족감을 느끼며 맞이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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