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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망이 아빠 Nov 28. 2023

"제주에서 더 오래 살고 싶다."

[아빠육아] 공동육아 문화가 주는 기쁨과 안정감

가족과, 특히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선택한 퇴사와 서울생활 정리, 그리고 제주로의 이주까지 2023년에는 우리 가족에게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6월 초에 이사를 왔으니 벌써 거의 6개월을 제주에서 살았다. 그리고 겨울을 앞둔 지금,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만족스럽다. 좋은 직장과 경제력을 어느 정도 내려놓았지만 누군가 만약 다시 그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아니오."라고 답할 것 같다. 


제주생활을 가장 만족스럽게 하는 요소는 아름다운 자연도 따듯한 기후도 아닌 '공동육아' 문화다. 아이를 키우는 가정이 주변에 많이 있고 그 가정들이 아이들을 중심으로 정기적으로 모여 서로 돌봐주고 공유하는 문화 말이다. 내가 어린이였던 90년대에나 있었을 법한 이야기이니 그런 문화에 대한 기대는 아예 갖고 있지도 않았다. 합계 출산율 0.6을 이야기하는 시대에서 점점 우리 사회의 기준은 아이가 아닌 것들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제주로의 이주를 결정했을 때 우리가 가졌던 기대라고 하면 가족이 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이왕이면 자연이 아름다운 곳에서 그 시간들을 보내는 것이었다. 코로나 시국에 결혼을 한 까닭에 신혼여행도, 태교여행도, 아이와 함께한 첫 장기 여행도 모두 제주에서 보냈기 때문에 제주에 대한 각별한 마음도 한몫했다. 제주에서 산지 이제 곧 6개월, 우리가 가졌던 기대들 모두 훌륭하게 우리 가족을 만족시켜 주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매우 일상적인 여정도 파란 하늘과 푸른 오름과 나무, 저 멀리 반짝이는 바다 등으로 아름답게 빛났다. 사실 거기까지만 해도 제주생활이 주는 즐거움을 충분히 느끼며 살았을 것 같다.


그럼에도 제주생활이 준 가장 큰 기쁨은 공동육아 문화다. (물론 제주라고 해서 다 그런 것도 아니고 서울이나 육지의 다른 지역에서도 공동육아가 활성화된 곳도 있을 테니 일반화할 의도는 없다.) 그리고 그 문화를 접하게 된 건 지난 7월부터 출석한 우리 교회, 구좌읍의 행원교회 덕분이었다. 바닷가의 시골마을 행원리에 있는 오래된 교회인데 불과 6~7년 전만 해도 마을 어르신 등 몇 가정 정도만 다니는 시골 교회였단다. 그런데 지금의 목사님이 부임하시고 지역 아이들에 대한 비전을 품기 시작하면서 점차 일개 교회 이상의 의미로 자라왔다. 학교가 끝나면 갈 곳이 없는 지역 아이들을 위해 교회 문을 개방해 간식을 만들어주는 것으로 시작해 지금은 도시의 키즈카페 못지않은 시설의 어린이/청소년 놀이/문화공간인 들락날락센터를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아이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공간이 생긴 덕분에 자연스레 아이를 둔 가정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지금은 200명이 넘는 교인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 또 관광객들까지 누구나 무료로 '들락날락'할 수 있는 교회로 지역을 섬기고 있다. 우리 가족 역시 소망이를 위한 실내 놀이터 정도로 이곳을 찾았다가 들락날락센터의 취지에 공감하고 교회까지 정식으로 출석하게 되었다. 더불어 아내는 이곳에서 많은 엄마들을 만나 교제를 하고 있고 나는 들락날락센터에서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영어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제 우리 가족의 제주생활에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이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소망이에게 수많은 이모, 삼촌과 언니, 오빠가 생겼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 부부에게는 서로 의지하고 나눌 수 있는 뭇 부모들이 참 많이 생겼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둔 동년배의 부모들도 있고 초등학생 이상의 자녀를 둔 육아 선배들도 많다. 덕분에 둘째 출산을 앞두고 있는 지금, 그렇게 많이 두렵지는 않다. 서울에서는 아이 한 명 키우는 가정도 주변에 많지 않아서 참 소중했는데 여기에는 두 명은 기본이고 세 명, 심지어 네 명의 아이를 둔 가정도 심심치 않게 본다. 그러니 늘 아이들을 중심으로 모이게 되고 마음에 의지가 된다. 미국의 Play mate 문화처럼 아이들이 함께 노는 동안 부모들끼리 교류할 수도 있고 심지어 때로 몸이 아프거나 중요하게 참석해야 할 자리가 있을 때 서로 아이를 봐주기도 한다. 


동지가 있다는 것은 큰 기쁨과 의지가 된다. 제주에서 찾은 공동육아 문화는 6개월이 안 되는 짧은 시간이 무색하게 이곳을 '집'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12월에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 나는 어느새 4인 가족의 가장이 된다. 한 아이를 키우는 것도 때로 실감이 안 가는데 출산율 0.6의 시대에 두 아이를 둔 가정이 된다니, 한편으론 참 막막한 상황이다. 그래도 동지들이 있기에 두렵지만은 않다. 오히려 더 큰 즐거움들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공동육아 문화를 선물해 준 제주에서 더 오래 살고 싶다.


2023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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