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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망이 아빠 Apr 17. 2024

중간보스를 깼더니 끝판왕이 나타났다 (ft.둘째 아이)

'육아 아빠'로 지내온 지난 1년을 돌아보며


나는 작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육아 아빠'의 삶을 살아왔다.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아내에게도 '내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어서 결정한 큰 변화였다. 직장생활을 정리했고 자연이 좋은 곳에서 아이를 키우고픈 꿈을 위해 서울에서 제주로 이사도 했다. 그러던 차에 둘째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고 올해 초, 새해 분위기가 채 가시지 않은 맑고 추운 날에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첫 째 소망이는 이제 32개월, 한국 나이로 4살이 되었고 얼마 전 백일이 지난 둘째 온유는 그야말로 갓 태어난 신생아다. 내 어린 시절이 어제 일처럼 선명한데 어느새 딸과 아들,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2024년의 봄을 살고 있다.


여러 변화들로 마음이 힘든 때도 있었지만 작년 한 해를 돌아보면 '충실', '충만'과 같은 단어들이 떠오른다. 가족을 이끄는 가장으로서, '가족'과 '시간'이라는 더 중요한 가치를 좇아 우리 가족의 배를 몰았고 그 항해의 과정에서 아내와도, 첫 째 소망이 와도 참 많은 시간을 보냈다. 특히 소망이 와는 더없는 친밀함과 부대낌, 유대를 쌓아 '아빠 바라기', '애착 아빠'와 같은 말들을 주변에서 종종 듣곤 한다. 수년 전, '돈 잘 버는 아빠', '능력 있는 아빠'와 같은 표현들에 쫓겨 얻지 못했던 소중한 말들이다.


사실 둘째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이제 꽤나 육아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었다. 영어로 표현한다면 'Under my control', 내 통제 하에 있다고 생각할 만큼 이제 꽤 육아를 잘하게 됐다고 생각했다. (오랜 육아 경험을 가진 분이라면 이게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지 '피식' 웃으실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첫 째 아이가 두 돌이 지나 말도 통하고, 어린이집 등원 등 어느 정도의 일상이 자리 잡힌 시기였기 때문에 힘들어도 '숨 돌릴 틈'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숙련도를 요하는 모든 일이 그렇듯 1을 알고 나니 2가, A를 하고 보니 B가 기다리고 있었다. 게임으로 치면 고생고생해서 '중간 보스'를 깼는데 '끝판왕'이 나타난 느낌, 나에겐 올해 태어난 둘째 아이가 바로 그렇다. 이제 육아에 좀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신생아의 출현은 우리의 육아 시스템에 여러 가지 변화를 주고 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있는 동안 주어졌던 자유시간이 없어졌고, '통잠'을 자긴 하지만 아무래도 새벽에 잠에서 깰 때가 더 많아졌다. 오래전 공부하고 치워버린 수학 공식을 힘겹게 떠올리듯 아기 띠, 젖병, 물똥, 등센서 같은 것들을 다시 일상에 끼워 맞추고 있다.


신생아를 키우는 것 그 자체도 물론 어렵지만 아기 동생의 존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고 있는 첫 째 소망이를 대하는 게 못지않게 어려울 때가 있다. 여기엔 여러 부분이 있는데, 첫째로 '다시 아기처럼' 행동하려는 모습을 종종 보인다. 예를 들어 아기 동생이 울 때나 엄마, 아빠에게 뭔가를 요구할 때, 또 맘에 들지 않는 것이 있을 때 (이전 같으면 그거에 대해 말을 했을 텐데) "으으-응!" 혹은 "빼액-"하고 소리치거나 울어버린다. 이제 많이 커서 말이 통한다고 생각했던 아이의 그런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둘째로, 그렇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동생에 대한 질투를 표출할 때 당황스럽고 안쓰럽다. 아내에게 들은 얘기인데, 한 번은 온유가 아기 쿠션에 앉아 있고 소망이가 그 앞에서 동생에게 말도 걸고 볼도 쓰다듬었던 때가 있었단다. 일상적인 모습이라 아내는 잠시 다른 일을 하고 있었는데 잠시 뒤에 보니 소망이가 온유 쿠션 위에 반쯤 올라가 온유가 소망이에게 깔린 모양새여서 놀랐다고 했다. 또 한 번은 온유가 소망이의 손을 잡았는데 손톱에 뾰족한 부분이 있었는지 소망이가 약간 따끔해했다. 그런데 소망이가 "엄마, 온유가 소망 이를 아프게 찔렀어요." 하며 손을 내밀고 보챈 적도 있었다. 동생에 대한 질투를 느끼지 않도록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엄마, 아빠를 독차지하던 아이에게 아기 동생은 질투를 느낄 수밖에 없는 존재일 것 같다.


셋 째로는, 이건 내가 잘못한 부분이라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지만, 아직 32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이에게 자꾸만 '누나'로서의 보다 나은 행동을 요청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소망이가 막 울면 그 울음의 의미를 헤아려주지 못하고 "소망아, 이제 누나인데 씩씩하게 행동해야지~ 왜 울어~"하는 식으로 말하게 된다. 그리고 온유가 갓 잠들었을 때 소망이가 무슨 말을 크게 하면 (사실 그리 큰 것도 아닌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소망아, 동생 자니까 좀 작게 얘기하자." 같은 말들을 일상적으로 하게 된다. 그럴 때 아이가 자칫 '이제 아빠는 동생이 더 중요한가' 같은 생각을 할까 봐 마음이 쓰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신생아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에 소망이도 한 부분이 될 때가 자주 생긴다.


마지막으로, 동생을 대하는 아이의 말이나 행동에서 내가 비춰보일 때가 있다. 대표적으로 온유가 크게 울 때 소망이가 보이는 두 가지 반응이 있는데 하나는 "온유야, 시끄럽잖아-" 혹은 "시끄러워-"... 처음 그 모습을 봤을 때 아이가 부모의 거울이란 말이 가슴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 소망이가 밤새 떼를 쓰거나 빽빽 소리를 지를 때 화를 참지 못하고 내가 했던 말인데 (부끄러운 내 모습이다.) 똑같이 행동하는 걸 보면서 육아의 어려움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온유가 울 때 소망이가 보이는 또 하나의 반응은 "온유야 울지 마, 온유가 울면 엄마, 아빠가 속상해-" 같은 말, 이 역시 울고부는 소망이를 달랠 때 혹은 '시끄럽다' 같은 말을 한 이후 사과할 때 소망이에게 했던 말인데 역시 동생에게 비슷한 말을 하는 걸 종종 본다. 부모의 말과 행동이 아이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는지, 그 책임이 새삼 무겁고 무섭다.


'중간 보스' 소망이와 '끝판왕' 온유.

이제 둘 다 내 마음속에 가장 큰 존재들로 자리 잡았다.


수유를 하다 보니 둘째 온유는 아무래도 아내가 더 많이 보게 된다. 아내의 출산과 산후조리 기간 동안 내가 혼자 소망이를 돌봤기 때문에 자연스레 나는 소망이, 아내는 온유를 더 케어하게 된 것도 있다. 그래서 나는 사실 얼마 전까지 온유에 대한 사랑이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었다. 내 아이가 아닌 것 같은, 약간 조카를 보는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다. 그리고 '소망아, 그래도 네가 내 최애야' 같은 첫 째 아이에 대한 의리 같은 것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온유를 돌보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고, 어떻게 하면 아이가 웃는지 같은, 그 아이만을 대하는 요령들이 생기면서 온유와 사랑에 빠진 기분이 든다. 배를 쿡 찌르면서 "두구두구두구두구-"하면 빵끗 웃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또 겨드랑이를 받치고 안아 양쪽으로 흔들어주면 자동차 앞자리의 목만 움직이는 강아지 인형처럼 고개가 까딱까딱하면서 웃는데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렇게 점차 한 아이의 아빠에서 두 아이의 아빠로 조금씩 바뀌어 간다. 마음의 한 자리를 또 내어준다.


'육아 아빠'로 산지 벌써 일 년, 육아는 여전히 어렵다.

그래도 우리 가족의 많은 이야기들이 쌓였고 새롭게 태어난 아이는 자연스레 나와 아내, 그리고 소망이 마음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미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아름답지만은 않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참 어려우며 때로 나를 매우 지치게 한다. 그래도 한 가지 꼭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감사함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가족을 갖게 하신 것에 대한 감사함을 '새삼' 글로 적는다.


24.04.15.

두 아이가 잠들고 아내 역시 지쳐 잠든 밤에, 2층 방에서 조용히, 참 오랜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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