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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봄 Jan 22. 2024

하찮은 상담심리사의 사적인 일기 _ 첫 번째 기록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다.

스무 살 이후로 한 번도 쉬지 않고 살았다.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그 흔한 휴학도 한 번 하지 않았고, 졸업과 동시에 직장인이 되었다.

3년 동안 직장을 다니다 대학원에 들어갔고,

역시나 학업과 아르바이트, 조교, 수련을 함께하면서 학기 내에 논문까지 마쳤다.

그리곤 쉬지 않고 일했다.


내 나이 서른 여섯, 출산과 퇴직이 동시에 이루어지면서

내 인생에 첫 공백기가 생겼다.

공백기라고 하기엔 육아를 하는 전업주부의 삶은 너무나 고단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지금이지만

언제나 '무언가'로 불리던 난, 이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었다는 생각이 나의 첫 공백기를 너무나 힘들게 했다.


2023년 12월 31일.

내가 출산을 한 지 4개월이자 2023년의 마지막 날.

시댁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께선 새해 덕담과 함께

'우리 집에 시집와서 우를 낳은 일이 제일 잘한 일이다'라고 하셨다.

그땐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하하하' 하고 웃었지만

어머니의 그 말은 며칠 동안 나를 괴롭혔다.


며느리의 과업은 출산이란 말인가.

내가 아이를 낳은 것이 왜 '며느리'로서 잘한 일이란 말인가.

그런 어머니께선 왜 연우 100일때에는 전화 한 통조차

없으셨나요.


원래 출산을 하면 모든 것이 삐딱하고 예민해지는 거였나..

내가 상담했던 우울증 환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서

그 동안 난 진심으로 공감하고 이해하긴 했던걸까.

나라는 사람이 참 부끄럽고 하찮아졌다.






그렇다.

우울증 환자를 상담하던 나는

지금 산후우울을 겪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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