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쌀국수집에서 따로 고수를 부탁하는 나를 보고 친구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언제부터 고수를 먹기 시작했냐며, 몇 해 전 자기와 같이 홍콩에 갔을 때만 해도 '노 샹차이'를 외치고 다니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랬었다.
고수가 혀에 닿기만 해도 구역질이 날 것 같다며 치를 떨었었다.
그런데 요즘엔 고수 이파리가 이 사이로 짓이겨지고 채즙이 입안을 한바퀴 돌아, 마침내 코끝에 아찔한 향이 전해질 때 다른 어떤 재료로도 대체할 수 없는 맛의 즐거움을 느낀다.
아마도 어려서부터 삼촌이 고수를 키워서 온갖 음식에 고수를 '부어' 먹던 전 남자친구, 베트남에서 여행으로 보낸 삼 주의 시간, 홍대에서 술에 취해 고수가 들은지도 모르고 먹어치운 타코, 뭐 그런 것들이 내게 흔적을 남기고 지나간 덕일 것이다.
나의 옷장엔 한때 온갖 스타일이 난무했지만 이제 무채색만 빼곡하다.
종잡을 수 없던 책장 역시 잠시만 살펴봐도 주인이 기형도를 좋아하리라 짐작할 수 있게끔 변했다.
이렇듯 옷과 책에 관해선 갈수록 편협해지고 있지만 음식에 있어서만은 관대해지고 있다.
당최 왜 먹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던 고수와 에스프레소, 맥주를 좋아하게 되었고, 또 동시에 여전히 양배추와 초콜렛, 치킨을 좋아한다.
일반적인 취향이 빼기의 결과물이라면 식성은 더하기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내가 밟아온 삶의 궤적을 여실히 보여준다.
에스프레소를 좋아한다는 나의 말에는 게으른 습성 탓에 벼락치기로 정신없던 시험기간들이 묻어있고, 맥주를 좋아한다는 말 아래엔 서울 자취살이로 혼자 보낸 외로운 밤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언젠가 내가 샐러리마저 좋아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과연 어떤 발자국들이 이어진 결과물일지.
도대체 얼마나 고약한 경험이길래 샐러리 같은 것을 좋아하게 만들었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져온다.
https://www.instagram.com/project_a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