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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ly 샐리 Apr 28. 2020

난 날 몰랐다. 낯가리고 있는 중이란 걸...

- 필라테스 강사 S의 20대, 02


어릴 적부터 새로운 사람들, 아니 친인척에게도 낯가림이 심해서 인사도 쭈뼛쭈뼛하며 엄마 뒤로 숨던 기억이 참 많다. 떠올려보면 보수적인 부모님 밑에서 애교 없는 무뚝뚝, 털털 충만 첫째로 태어나 내성적인 성격이 지금보다 심했다. 거기에다가 부모님도 자식이 처음이었던 나를 만나 모든 게 어설펐을 것이고 과연 사랑의 매가 전부였을진 모르겠지만 쨋든 부모님께 이래저래 첫째로서 혼나기도 참 많이 혼났다. 


춤을 전공하고 잠시 잠깐 회사 생활을 하면서 타인과 어울리는 법을 제법 배웠지만, 어른이 된 지금도 아직은 낯선 사람과 밥을 먹거나 대화를 할 땐 말을 더 많이 하려 드는 날 발견한다. 


낯을 가린 다는 건 단순히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타인을 경계하는 정도면 나도 타인도 빠르게 받아들이고 그럴 수 있다는 납득할 만한 상황이 만들어졌겠지만, 나에게 낯가림이란 보기보다 단순한 부분은 아니었다. 

말을 과하게 이어감으로서 잠시 잠깐의 적막함을 단 1도 허용할 수 없는 무지막지한 엄청난 부담이었음을. 

그리하여 사람과의 만남이 어색함이 어색함으로 표현되지 않고 나름의 멋진 대단함으로 둔갑시킴으로 활발하고 밝고 절대 생각이 무겁지 않은 그저 그런 크게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의 평범함으로 보여지도록 노력한다. 어쩌면 새로운 타인과의 만남이 오직 내겐 썩 유쾌한 에너지를 쓰는 행위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혼자 골똘히 내 모습을 떠올려 본다. 모든 상황을 내 나름의 정의가 내려질 때까지 미련하게 파고드는 걸 좋아하는데 과연 내가 가진 이러한 성향이 본래 그렇게 태어난 유전자인지, 후천적으로 환경의 영향에 노출이 된 인간인지 원인을 찾아 복잡하디 복잡하게 생각에 꼬리에 꼬리를 물곤 한다. 대부분 멍때림은 여기서 시작된다. 아니 멍떄림이 아니라 그냥 매번 생각에 이런 뉘앙스로 잠기곤 한다. 

문제의 발단. 어디서부터인지를 찾아서...


나의 20대, 완벽한 자아를 가지고 싶었던 마음은 컸지만 매사 완벽함을 찾는 마음 속에 절대 완성되지 않은 내 자아를 직면하는게 참 힘들었다. 나는 보기보다 많이 나약했고, 감성적이고, 예민하고, 외로움을 많이 타는 동물이었다. 어쨌거나 내가 원하는 삶은 저만치 위에 있는데 하루하루 사는게 왜이리 버겁기만 했는지... 

모르는 것도 많고 조심성도 없는 터라 타인에게 받은 상처보다 더 깊은 상처가 바로 내 자신에게 오는 반복되는 실망감, 절망감이더라.


그림을 그리고자 데생 작업을 들어갈 때면 그저 도구 먼저 집고 의자에 앉아 그릴 자세를 취해야 하는데 그 조차도 나에겐 쉽지 않았던 것이다. 단계별 목표점이 있다면 그걸 무조건 잡는 게 멋지다 생각했던 나의 20대.


제일 유연하게 살 수 있을 나이에 각목처럼 우직했고 또 반대로 금방 부러질만큼 포기도 빨랐다. 뭐든 잘하고 싶었던 그림에 조금이라도 멀어지면 그냥 내가 싫었다. 아주 사소하고 전반적인 나의 대학생시절, 자취생활도 학교생활도, 친구들관계도, 무용실력도 모두 다 그러하였다. 

날 가장 사랑하고 위로해주고 아껴줘야 할 존재가 나임을 모른 채... 내심 완벽치 못하다는 메시지만 머리에 다람쥐 챗바퀴 돌아가듯, 끊임없는 감정 출동선에 있었을 뿐. 20대를 떠올렸을 때 나의 기억의 현재이다.


글쎄, 이 기억조차 나에게 합리화인걸까. 비록 순간 순간의 암울함은 존재했지만 삶의 이유는 다분했다. 

나의 추억은 오직 나를 통해 이렇듯 글 뿐이지만 그 시절 잔상은 여전히 다시 오지 않을 그리운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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