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lly 샐리 May 13. 2020

서른 셋이 되어 보니 알겠다. 엄마도 어렸다는걸..

시간은 왜이렇게 빨리 지나가는지...내가 벌써 서른 셋이다.

10대 20대때만 해도 삼십대는 꽤나 먼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난 서른을 넘어 서른 셋이 되고 말았다. 서른이 되면 뭔가 되게 완벽한 삶을 살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인생 뭐 하나 쉬운게 없듯이 상상 속의 30대와는 또 다른 나의 삶을 살고 있는 나다. 


서른 셋..마냥 많은 나이라고 생각한 이 나이가 되어 보니 그렇게 많기만한 나이는 아니란 걸 알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스위스에 머물고 있는 난 5월이 되니 더 가족 생각이 났다. 한국에서는 내 생활하기 바쁜 나였기에 엄마에 대해 조금이라도 깊게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아니 사실 시간이 없다는건 핑계다. 그냥 나만 생각하고 내 인생을 살아가고 싶었던 나라서 부모님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 덕분에(?) 한국이 아닌 스위스에 머물고 있다 보니 지금의 나를 돌아보고, 이미 지난 부모님의 30대도 생각해 보게 됐다. 특히, 카카오톡 보이스톡을 매일 같이 하는 엄마 생각이 작년과는 다르게 많이 났다. 함께 있을 땐 잘 모르는데 떨어져 있으면 그렇게 애틋해 지는게 가족이 아닐까 싶다. 


사실 작년만 해도 해외에 나가면 가족 생각은 났지만 엄마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적은 없다. 항상 옆에 있는 엄마니까 라는 생각에 그랬던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올해 서른 셋이 되고 보니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철이 들어가고 있는건지...아니면 스위스에서 생활하다 보니 엄마를 생각하게 된건지는 모르겠지만.... 


엄마 나이 서른 셋...난 내 삶을 살겠다고 나만 생각하며 살고 있는데 서른 셋의 엄마는 한 사람으로서의 삶이 아닌 나의 엄마가 되었다. 엄마...그녀에게도 꿈이 있었을테고, 처음 사는 인생에 매일이 서툴렀을텐데...엄마니까 다 할 줄 알고 만능인 사람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가 나를 낳은 서른 셋이 되어 보니 이젠 조금은 엄마를 이해할 것 같고, 엄마의 삶에 미안해졌다. 


누구나 처음 사는 인생이고, 처음 해보는 결혼, 임신, 출산, 엄마로서의 삶일텐데....태어나 보니 나보다 훨씬 나이 많고 큰 여자인 사람이 내 엄마였고, 그녀의 품에서 보호받고 관심 받으며 자란 나였다. 엄마 또한 나를 낳고 얼마나 긴장 됐고, 하루하루가 새롭고, 힘들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그랬을까...

인생이 처음 사는 거라 억울하고 후회도 되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거라고 하지만 그 누구도 후회하고 억울한 마음이 드는 선택은 하고 싶지 않을거다. 나역시 그렇다. 그래서 나로 살고 있는 나인데 엄만 엄마가 아닌 누군가를 위한 삶을 서른부터 시작했다. 스물아홉, 서른에 오로지 나로 살기로 한 나와는 정반대의 삶인거다. 

지금 내 나이 서른셋에 나를 낳고 한 남자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나의 엄만...하루하루 엄마의 꿈이 아닌 가족의 삶을 위해 지금까지 아닌 아직도 현재 진행중이다.


엄마의 인생을, 꿈을 포기하고 낳고 키운 자식이 엄마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들며..그녀의 인생을 꿈을 포기하게 한 나를 돌아보게 했다. 인생이 처음 사는게 아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매순간이 처음이기에 한 순간의 선택으로 내일이 달라지기도 하고 앞으로의 몇 년 후가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선택이 중요하지만 그 누구도 결과는 알 수 없기에 어느 선택이 옳고 그르다 라고 할 수 없다. 


서른 셋이 된 지금도 난 매순간 순간 나를 위해 살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는데 그런 나를 보며 엄만 얼마나 부러웠을까?..엄마의 서른 셋은 나처럼 나를 위해 사는게 아닌 가족을 위해서 살았으니 말이다. 물론, 그녀의 선택이었지만, 내 나이에 내가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다는 상상을 하면 사실 두렵다. 나 자신이야 내가한 선택에 나 스스로 만족하고 때론 후회도 하면 되지만 내가 낳아 태어난 아이를 위해 어떠한 선택을 해야할 때 매 순간이 두렵고 걱정이 앞설 것 같다. 내가 상상으로만 느끼는 이 감정의 몇 배는 엄마가 느꼈을 감정이었을거고, 두 아이가 성장해 나갈 때 당신이 상상 했던 선택이 아니었을 땐 후회가 되기도 하고 억울한 마음도 들지 않았을까 싶다.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고 내 삶보단 너희의 삶이 좀더 햇살이 깃든 인생이길 바랬을테니...


사실 그동안은 느끼지 못했다. 엄마니까 라는 이유로 우리를 위해 하는 것들에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았던 때도 있었다. 사실 지금도 아니 때론 앞으로도 엄마가 100% 이해 되지 않을 때도 있을거다. 엄마의 인생은 없이 그렇게 서른 셋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살기 시작한 엄마의 인생이 괜히 미안했고, 이제야 조금은 엄마도 어렸다는걸 알 것 같아서 가슴이 저려왔다.


‘엄마’…이 단어가 갖는 무게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일거다. 그렇기에 그 무게를 견딜 자신이 없어 난 결혼 이야기에 외면해버리고, 남의 이야기인 듯 들었다. 그 무게를 견디며 나만 보며 커갈 아이에 대한 책임감이 생겼을 때 그 언젠가 결혼이란걸 생각 해보지 않을까 싶다. 서른 셋, 아이가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나이에 난 나를 위한 선택 조차 버거움을 느끼며 30대도 아직 완벽한 어른은 아님을 매 순간 느낀다. 이런 느낌을 엄만 나를 낳으며 정신없이 흘러간 시간에 어른이 되어 버린듯 착각하며 엄마의 젊고 예뻤던 순간을 잊은 채 그렇게 ‘엄마’라는 책임감에 자신은 없이 그렇게 살아 왔을 엄마의 삶에 이제야 엄마가 나를 낳은 나이가 되어 보니 조금씩 엄마가 어땠을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 물가에 내 놓은 자식 같다는 말이 사실 크게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그게 무슨 느낌일지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내가 낳은 자식이 어리든 크든 엄마 눈엔 매순간이 아슬아슬하고 걱정도 되고 그럴거다. 자신에 의해 세상에 놓여진 아이라서 그 아이에 대한 책임감에 지금도 자식 걱정을 하는게 대부분의 부모님이니까... 

나의 엄마 이기 이전에 여자로서 인생을 ‘엄마’로서 30년 넘게 살게 해서 미안하고 감사하다. 서른 셋 철 없는 딸이 나의 인생을 살겠다고 했을 때 당신도 그렇게 살고 싶었을텐데...나로 인해 그럴 수 없었던 시간을 이제라도 엄마의 인생을 살 수 있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