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영화를 좋아합니다. 근데 왜?

내가 만든 영화를 어떻게 좋아할 수 있냐?

by 황정복

소름 끼치는 사실은 내가 만든 영화를 나는 정말이지 애정합니다.


그런데 나만 보고 싶어요. 다른 사람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왜?

나만 보려고 만들었으니까요.


사실 만들게 된 시작점도 특이하다만 쉽게 말해 귀신 들렸다고 말하는 게 맞을 듯합니다.

무슨 미신적 소리냐 싶기도 하겠지만, 나의 실제 경험에서 뿜어져 나온 이야기입니다.


사람이지만 유령 같은 아니, 사람일지도 모르는 유령을 마주친 순간부터

이걸 어떻게든 기록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아서 만들었습니다.

목숨의 위협이 아니라 정신적 위협을 받았달까요?


결론은 첫 영화에 유명한 영화제에 갔습니다.

귀신 보고 영화가 잘되었다는 공식은 이럴 때 쓰이는 것 같습니다.


기록의 종류 중 영화를 선택한 이유에는 단순히 나와 가장 맞닿은 기록방식이 영화였던 덕분입니다.


영화를 배운 적 있냐? 없습니다.

다만 작년 극장에서 영화관, 장르 안 가리고 닥치는 대로 먹어치운 영화가 70-80편 이상은 됩니다. 올해도 작년만큼은 아니지만 쥐똥만도 못한 돈이 들어오는 족족 극장에 들이부은 걸 보면 한 좌석정도는 내가 만들었다고 해도 될 정도는 아닐까요? (희망사항) 더불어 본업 덕분에 현장에서 어깨너머로 좀도둑마냥 쫌쫌따리 기술들을 습득한 부분도 한몫합니다.


그럼 영화 만들려고 영화 봤냐? 아닙니다.

본업인 영화 관련 업을 수행하기 위해 가장 빠르고 쉽게 할 수 있는 선택이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기였습니다. 영화 관련 업이라고 한다면 영화 만드는 감독, 연출, 촬영, 사운드 등 창작적인 분야 외에도 기술, 배급, 홍보 등등 다양한 분야의 직업이 존재합니다. 참고로 본업은 앞서 쓰인 내용에는 없습니다.


영화제 출품은 왜 했냐? 무시할 수 없어서요.

태어나자마자 한마디도 울음도 터뜨리지 못하고 감금당한 우울한 영화

가 될 뻔했지만요. 구석에서 꿈틀거리던 일말의 양심이 성가시게 하더라고요. 알량한 연민이 영화의 첫 울음소리를 터뜨렸네요. 혼자서 만든 영화라면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습니다. 함께 만들어준 사람들이 있으면 예의라는 것을 차리고 도움에 보답할 줄 알아야 해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제 어떻게 갔냐? 모릅니다.

이 점이 개인적으로 가장 의아한 부분입니다. 뭘 배워야지 생기는 영화적 규칙을 깨부순 것도 아닌 존재하지도 않은 영화적 규칙에 얽매이지 않은 채로 움직이는 개인주의에 지멋대로 만든 불친절한 영화를 시각적 색채들로 인식해 뇌까지 전달해 해마에 저장해 두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만큼 잔상이 남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겠습니다.


너만 보려고 만든 거면 대충 만든 거 아니냐? 아닙니다.

나의 고질적인 기질 중 하나가 집착입니다. 집착이라는 기질, 범죄로 발현이 되었다면 장안의 화제, 전 세계 제일가는 스타 범죄자가 되었을 수도 있다는 망상을 하고는 합니다. 집착도 사람마다 종류가 다를 것 같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집착이라는 것에 대해 해부되고 싶어 주체 못 하는 실험 주제처럼 꺼내보는 글을 써보고 싶어요. 꼭 실현해야 하는 장면들, 필요한 것에만 집중했습니다.


1.

머릿속 공간을 액자로 만듭니다. 카메라 프레임을 액자로 변환하는 것과 같습니다. 흰 도화지 안에 떠돌아다니는 글들을 장면의 움직임으로 그려냅니다. 글이 그림이 되는 과정을 거치는 겁니다. 그림 속 장소, 인물, 식물, 소품 등등 배치합니다. 그리고 입체적으로 움직입니다. 움직이는 그림이 되는 것입니다. 큰 틀 안에서 장면의 순서를 반복해서 배치합니다.


2.

머릿속으로 어느 정도 밑그림을 그렸다면 실물로 옮깁니다. 시나리오를 바로 쓰지 않고 작동원리부터 작성합니다. 만들게 된 시발점, 규칙, 기술, 장면, 배치, 장소, 인물, 소품, 음악, 인서트 등 있어야만 하는 존재이유를 씁니다. 쓸모를 만들어 줍니다. 그중에 최선의 선택이 아닌 것은 삭제합니다. 작동원리는 필수 규칙 이외의 다양한 변수에 의해 시나리오 작성 혹은 실제 작업 현장에서 유동적으로 삭제 및 추가 등의 즉흥적 즉석 수정이 가능합니다.


3.

시나리오를 작성해 줍니다. 시나리오 작성은 연출, 카메라, 배우용 3가지 종류로 만들었습니다.

어색한 부분은 없는가? 허용 가능한가? 나, 카메라, 배우 이 셋의 관점에서 보기에 편안한가?

이해하지 못할 내용이더라도 감각적으로 수용하게 되는가? 이 단어와 문장과 지문과 장면이 꼭 필요한가? 낯설고 새로운 표현인가? 나의 마음에 드는가? 만족하는가? 등의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최종까지 수정을 반복하며 달려갑니다. 임시 최종본이 나왔으면 시나리오 장면 사이사이에 정해둔 음악과 오디오의 위치를 지정합니다.


4. 로케이션

임시 최종본이 나왔으면 생각해 둔 로케이션 탐방을 갑니다.

로케이션이 영화의 반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합니다. 공간이 주는 힘이 있습니다. 로케이션은 주요 인물과 관련된 곳으로 주제와 일체화하는 과정입니다. 꾸며지지 않은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장소여야만 합니다. 우리가 제대로 보지 않고 쉽게 지나치는 한국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한글간판의 바래진 가게, 건물 위주로 실제로 많이 다니면서 잘 알고 있는 장소로 선택했습니다. 사람들이 거침없이 지나다니는 공간과 장소는 이 영화 전체를 대표하기에 충분합니다.


5. 배우들를 구합니다.

배우들은 제가 잘 아는 동료이자 친구입니다. 배우를 구하는 건 생각보다 쉬웠습니다. 그 친구들에게 감사인사를 보냅니다. 고마워잉~ 각자 사느라 바쁘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습니다.

배우들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나서 배우용 대본, 역할에 대해 설명해 줍니다. 이에 관해 각자의 의견을 내놓아 그것을 수용하고 변화시키고 합해서 결과물을 내놓습니다. 현장에서 수정될 수 있다는 주의사항도 미리 전달합니다. 배우들이 궁금해하는 점은 최대한 해소시켜 주려고 노력합니다. 불안하면 일이 안 돼 듯 연기도 마찬가지니까요. 잘 아는 사람과 함께 일하면 좋은 점은 내가 그 사람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담배 피우는 사람 역할인데 평소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캐스팅하면 자연스럽습니다. 원하는 그림을 실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뜻입니다.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미지가 우위를 차지해 담배를 피우는 게 어색하더라도 캐스팅하는 것, 뭐든 장단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미지로 끌고 가야 하는 영화라면 이미지가 중심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요. 물론 그 배우가 노력까지 해서 그 행위가 자연스러워 보인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아무튼 배우에 대해 연출자가 잘 알고 있으면 일의 난이도가 조금은 낮아집니다. 특히나 소통과 현장에서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배우라면! 물론 서로의 고집과 충돌도 필요하기도 합니다. 타협하는 과정에서 더 나은 장면, 영화의 방향에 맞는 장면이 탄생할지도 모르죠.


다시 돌아와 밖으로 나와 배우들에게 부탁해 어떤 배치로 촬영할지 테스트 촬영을 해봅니다. 그럼 연출도 배우도 미리 알아두면 편할 테니까요.


6. 촬영을 합니다.

카메라는 디지털카메라입니다. 우리가 아는 디카 맞습니다. 촬영하시는 분께 어처구니없는 부탁을 했습니다. 카메라가 사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로써 다른 누군가의 시선이라고 생각하고 촬영해 주세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개떡 같은 부탁을 찰떡같이 실행해 주셨습니다. 짱!


콘티 없이 촬영을 합니다. 장면이 몇 개 없어 콘티 없이 촬영해도 무리는 없지만 날씨는 눈이 펑펑 내리는 영하의 온도입니다. 대략 3박 4일 정도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촬영합니다. 물론 우리 배우들 촬영은 세 시간 안에 끝냈습니다. 컷은 2-3번 정도 동선위치만 몇 번 정리하니 바로 마음에 드는 컷이 나와 리플레이 한 번하고 바로 다음 컷으로 넘어갔습니다. 한두 번에 넘어갈 정도로 정말 맘에 들었습니다.


따뜻한 밥도 맥였어요! 무페이로 도와준 배우님들을 추위 가득한 누추한 길거리에 둘 수 없습니다. 그리고 촬영님이 고생을 정말 많이 하셨습니다. 밖에서 몇 시간 이상 있으니 동상 걸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 말 없이 묵묵히 함께해 주셨습니다.


7. 편집

편집하기 전에 먼저 머릿속에 큰 순서를 정리해 줍니다. 역시 편집이 가장 귀찮습니다. 그래도 합니다.

처음에 맥북 아이무비로 편집했습니다. 돈이 없어요. 편집할 때는 꼭 들어가야 하는 장면 먼저 배치를 해줍니다. 그리고 방향성에 맞는 주제 2가지를 중심으로 정해줍니다. 거기서 벗어나지 않게 편집을 해주면 편집은 꽤 수월합니다. 디지털카메라 질감을 그대로 살려서 따로 후작업은 하지 않았고 쓰지도 못하는 기술을 어설프게 사용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기술과 효과는 최소화했습니다. 컷과 약간의 장면전환과 타이틀, 음주파수 정도로 편집했습니다.


* [결국 존재에 대해 탐구해도 알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이 처음과도 같은 상태를 유지 중].이라는 주제의식 맞춰 진행되는 모든 상황(장면)이 진행되다가 처음으로 되돌아올 것.


* 창작자의 개입으로 인해 주요 인물이 시간이 지날수록 따뜻함(살아있음)을 느낄 것


NG컷들도 버리지 않고 쓸 수 있는 건 써줍니다.

이제부터 검토 및 감상 무한반복합니다.

불필요한 장면들은 삭제합니다.

보면서 미세한 조절로 리듬감을 맞춰줍니다.


이제 오프닝과 타이틀을 넣어줘야 하는데 아이무비에서는 불가능해서

결국 거금 들여 필모라 연간 구입해 삽입했습니다. 젠장!


타이틀을 넣을 때는 화가가 그린 그림처럼 장면과 조화를 이루면서 글자가 글자로 존재하지 않고 각자 독립된 객체의 모형으로 보였으면 좋겠어서 글자가 그림처럼 보이도록 배치를 이리저리 다양하게 넣어주다가 맘에 드는 조화를 이루면 픽스해 줍니다.


8. 음악을 넣어줍니다.

음악은 동요 [노을]로 정해두었습니다. 동요의 매력이라고 하면 음과 가사를 분리했을 때 가사가 하나의 시처럼 보입니다. 추가로 보여주고 싶은 풍경이 이 가사에 전부 내포되어 있습니다. 가사가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따뜻하고 아름답고 모두가 한 귀에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음과 가사를 분리합니다. 음은 멜로디언으로 직접 연주, 가사는 내레이션으로 변주를 줍니다.

악보를 그대로 연주하기보다는 편집된 영화를 보며 그 리듬감에 맞춰 멜로디언의 숨소리 특성을 살려 연주해 줍니다. 맘에 들 때까지 연주(내레이션)-삽입-감상을 반복해 줍니다.


추가로 실로폰을 넣어줍니다. 맑은 음을 내면서 연주할 땐 경쾌하기까지 한 실로폰은 극 중간의 리듬감과 생동감을 부여합니다. 다소 어두운 장면의 분위기와 반대되는 어린아이 같은 상큼한 실로폰자체 음을 살려줍니다.

위와 같이 영화를 보면서 즉흥적으로 맞는 음을 리듬감에 맞춰 연주합니다. 서로 반대되는 분위기는 그 장면의 매력을 극대화시킵니다. 다시 생각해도 그 순간은 정말 찌릿찌릿합니다.


추가로 하모니카도 넣어줍니다. 하모니카는 특유의 음울하면서 향수 돋는 특성을 담고 있습니다. 실로폰과 같이 정해둔 음이나 악보 없이 영화의 장면을 보면서 앞에 깔아 둔 노을의 멜로디언의 흐름에 이어지도록 여러 버전을 다양하게 연주합니다. 반복하다가 영화와 멜로디언의 호흡과 맞춰지는 음이 나오면 그 음악으로 픽스해 삽입합니다.


이 모든 과정이 4시간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녹음실 없이 제 방에서 노트북 내장 녹음기로 녹음했습니다.


9. 마무리 무한 반복 감상.

이제 진짜 최종 마지막입니다 모든 것을 완료한 후에 무한 감상 및 검토해 주면서 내가 만든 거 보면서 실실 웃어주면 됩니다. 배우들 보면서 흐뭇해합니다. 그리고 제 보석함에 넣어두고 잘 재워두면 됩니다. 우히히


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모든 과정을 꽉 붙잡고 포기하지 않은 사람은 창작자이기에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영화도 하나의 탄생이기에 내 새끼라고 부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내 영화가 저엉~말 정말 정말 좋은 걸 우짜라고요~ 부족한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나만이 할 수 있는 정성이 여기에 들어있는 것을..... 내 영화는 나에게 영원히 남습니다. 심지어 누가 알아봐 주어 영화제까지 같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물론 도와준 배우, 촬영님께 무한 감사합니다. 왜 이 글을 적었는지 모르겠지만 과정을 투어 하면서 내가 해왔던 것을 곱씹어보며 놓치지 않고 이어나가고 싶기도 하고 감사한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영화를 계속할 거냐? 모르겠습니다.

영화를 계속할지는 모르겠지만 안 한다고는 말 못 하겠습니다. 저의 본업을 최선을 다해 수행하다 보면 영화를 만들 기회가 오겠지요. 그 와중에 영화를 사랑하는 것은 계속할 것입니다. 돈 내지 않고도 마음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영원히 할 수 있으니까요.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를 알아도 저는 계속할 것 같아요. 이유는 알아도 몰라도 중요하다고 해도 결국 결정하는 건 자신이니까요. 영화 만드는 건 몰라도 사랑하는 건 영원히!


글 쓰다 보니까 마무리가 흐물텅하네요.

또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또 봐요.

그럼 안녕히 가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