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풀 없는 데드풀 이야기 |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저는 영화가 시작하고 나서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케빈 파이기’도 청불을 해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조금 냉정하게 말하면 이번에 개봉한 [데드풀과 울버린]은 전작에 비해서 아쉬움이 조금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데드풀이 마블의 메인 스트림으로 합류하는 것이 오히려 악재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선 이 영화를 아직 안 보신 분들을 위한 이야기를 먼저 해보자면, 만약 여러분이 엑스맨 시리즈를 포함하여 디즈니에서 제작하지 않은 마블의 영화들을 전혀 모르신다면 이 영화가 만족스럽지 않을 겁니다. 조금은 당황스러울 수도 있을 겁니다. ‘나는 데드풀을 보려고 왔는데 왜 자꾸 다른 캐릭터 이야기만 하는 거야?’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렇기에 데드풀의 전작들에서 쌓인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방향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더 나아가서 생각을 해보면 앞으로 진행될 마블 세계관을 정리하기 위해서 데드풀을 이용했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이용 당했다’는 워딩이 부정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저는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마블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면 20세기 폭스의 인수를 통해서 디즈니가 제작을 하고 있던 MCU에 등장하지 못했던 캐릭터들이 이제는 MCU에 등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판을 다시 짜야하는 상황이 생긴 것이죠. 그런데 기존에 진행이 되던 이야기가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이들을 MCU에 등장시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들이 등장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죠.
이전 <엔드게임>의 캡틴 마블처럼 다른 세계의 지구를 구하고 있었다는 설정으로 모든 것을 퉁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데드풀과 울버린>을 통해서 그들이 그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방법으로 MCU에 합류하게 되었는지 등 앞으로 제작될 MCU의 콘텐츠에서 그들이 등장하더라도 어색하지 않도록 판을 잘 깔아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영화를 바라보면 마블이 영리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MCU 전체로 보면 <데드풀과 울버린>이 이전에 디즈니 주도하에 제작된 콘텐츠가 아닌 마블 콘텐츠의 캐릭터들이 MCU로 합류를 하게 되는 물꼬를 튼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MCU 이외의 마블 캐릭터를 모르신다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다수의 마블 캐릭터들이 그리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을 겁니다. 영화가 그것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자연스럽게 데드풀이라는 캐릭터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기보다는 캐릭터성을 활용한 잔재주를 부리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물론 영화는 데드풀 시리즈의 전통인 가족 영화라는 점을 이야기의 메인 코드로 삼지만 사실상 영화에서는 그것이 중요하다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냥 울버린이랑 데드풀의 티키타카, 더 나아가서는 액션이 더 중요한 것이고 그 이면에는 앞서 이야기한 MCU의 확장이 있는 것이죠.
영화를 보면서 내심 마블의 수장인 ‘케빈 파이기’, 더 나아가서는 디즈니의 마블 담당자들도 데드풀의 합류를 기다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만의 느낌인지는 모르겠으나 영화 초반부에서부터 청불 장면을 만든다는 것에 신났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근거는 없는데 그냥 느끼기에 그랬습니다.
사실 ‘케빈 파이기’를 포함한 MCU 담당자들도 상부에 허락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라는 면에서 청불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것을 데드풀을 통해서 해소한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이것을 시작으로 청불 MCU 작품도 다양해졌으면 합니다. 특히 <베놈>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영화 속 데드풀이 ‘20세기 폭스’와 ‘디즈니’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와 최근 MCU의 멀티버스에 대한 자조적인 이야기도 언급하는데, 저는 이 부분도 앞서 이야기한 MCU의 책임자들이 지금까지의 과오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언급한 MCU의 미래에 대해서 더욱 탄탄하게 가져가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이겠죠.
<데드풀> 시리즈를 전반적으로 재미있게 보셨다면 분명 <데드풀과 울버린>도 재미있게 보실 것 같습니다. 다만, 기존 데드풀의 서사가 이어지는 느낌은 아닙니다. 이 영화는 ‘데드풀’이라는 캐릭터에 집중하기보다는 캐릭터를 이용한 MCU의 새로운 기초를 다지는 과거 ‘아이언맨’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전반적으로 데드풀 시리즈의 개성은 잘 가져간 영화이긴 하지만 앞으로 진행될 MCU를 위해서 기초 공사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기존 마블 캐릭터들이 합류하는 그림을 만들기 위한 영화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면에서 MCU 이 외의 캐릭터들을 아는 분들은 아주 재미있게 보실 것 같습니다.
거기에 더해 마블과 상관없는 배우들이 카메오로 등장하기도 하고, 영화의 주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코미디에도 영화 관련 밈들을 활용하기 때문에 이것을 잘 모르신다면 그렇게까지 흥미를 느끼시지 못할 것 같습니다. 배우 개그와 관련된 부분이 그것이겠죠.
그래도 <로건>을 통해서 마무리가 된 울버린의 이야기를 크게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이야기를 잘 살렸다는 생각도 듭니다. 기존에 제작 작품들에 대한 존중은 이어가면서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을 잘 만들었다는 것이죠. 이런 걸 보면 마블이 참 똑똑하긴 합니다.
한 편으로는 데드풀이 MCU에 합류하게 된 것이 조금은 아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데드풀의 캐릭터 자체가 B급 포지션에 머물러서 ‘어벤저스’에 합류하고 싶어하지만 겉으로는 티내지 않는 듯한 약간은 찐따 같은 캐릭터라는 면에서 데드풀이 MCU 메인 캐릭터가 되는 것이 데드풀의 캐릭터성을 잃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마블 영화를 이야기하게 될 때면 해당 캐릭터의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앞으로 공개된 마블의 세계관에 대한 설계와 복선들을 같이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을 따라가는 것 자체가 지치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그것이 지금 마블의 가장 큰 리스크가 될 것입니다. MCU라는 거대한 세계관 형성이 마블의 전성기를 가져왔지만, 그것이 지금 마블의 가장 큰 고민거리라는 것이죠.
과연 마블은 앞으로 어떤 세계관과 영화를 보여줄 것인지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드라마 안 보는 편이라서 드라마 말고 영화로만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요.
여러분들은 <데드풀과 울버린> 그리고 MCU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https://youtu.be/0OhhCn7PFiw?si=_Qd98GJRsDXuP2H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