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언급된 홀드백 법제화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최근 국회에서 발의된 ‘홀드백 6개월 법제화’가 영화계를 흔들고 있다. 극장에서 상영이 끝난 뒤 6개월이 지나야 OTT에서 공개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내용이다. 정부는 이를 극장 산업 보호책으로 내세우지만, 과연 법으로까지 고정해야 할 사안일까? 핵심은 단순히 기간의 길고 짧음이 아니라, 굳이 법으로까지 묶어야 하느냐는 점이다.
홀드백(Holdback)은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한 뒤 일정 기간 동안 다른 플랫폼에서 공개되지 않도록 막는 제도다. 극장 상영의 독점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도입된 장치이며, 과거에는 ‘극장 → IPTV/VOD → 케이블/지상파 → OTT’라는 순차적 유통 구조 속에서 자연스럽게 적용됐다. 한국에서는 법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배급사와 플랫폼 사이 협상으로 유연하게 운영돼 왔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관객이 급격히 줄자, 제작사와 배급사는 손실을 줄이기 위해 OTT 공개를 앞당기기 시작했다. 엄청난 흥행에 성공한 <범죄도시 4>도 개봉 후 한 달 만에 OTT로 넘어간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극장 측은 “OTT 조기 공개가 관객 감소를 부추긴다”는 불만을 제기했고, 이번 법제화 시도가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기간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 자율성과 콘텐츠 흐름의 문제로 봐야 한다.
세계적 흐름은 정반대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90일이던 홀드백을 45일로 줄였고, 일부 영화는 17일 만에 OTT에 공개된다. 디즈니, 워너브라더스, 파라마운트 등 주요 스튜디오가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배급 전략을 빠르게 조정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역시 과거 36개월이라는 긴 규제를 두었으나, 최근엔 15개월로 단축하며 OTT 투자 의무와 연계하는 방식으로 조정했다. 영국이나 독일 등은 배급사·플랫폼·극장이 협약 형태로 기간을 합의하는 경우가 많다. 각국은 법으로 일률적 기간을 정하기보다, 시장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협상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한국만이 6개월 고정을 법으로 추진하려는 건 시대 흐름과 괴리가 크다.
홀드백의 본래 목적은 극장 수익 보호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시장이 스스로 균형을 만들어왔다. 흥행작은 자연스럽게 상영이 길어지고, 반대로 성과가 낮은 작품은 OTT나 VOD로 빠르게 옮겨가 손실을 줄였다. 이미 현장은 작품별, 규모별, 상황별로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작 블록버스터는 극장에서 오래 버티는 반면, 중저예산 영화나 독립영화는 OTT 진출로 생존을 모색한다. 결국 자율 조정이야말로 산업에 맞는 방식이었다. 법제화는 이 유연성을 봉인하는 셈이다.
모든 흥행작이 장기 상영을 보장받는 것도 아니다. <F1 - 더무비>처럼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관객을 모으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좀비 딸>이나 <범죄도시> 시리즈처럼 개봉 직후 폭발적인 성과를 내지만 빠르게 소강상태에 접어드는 작품도 많다. 극장 입장에서는 이런 순간 흥행형 편성이 더 효율적이다. 신작 주기가 빠르기 때문에, 같은 영화를 몇 달 동안 붙잡고 가는 것은 오히려 손해가 된다. 거기에 극장이라고 편성하고 싶은 영화를 마음대로 편성하는 것도 아니다. 대형 배급사의 경우, 흥행이 저조할 것이라 예상된다고 하더라도 추후 더 큰 영화 편성을 위해서 눈치를 보는 경우도 있다. 즉, 극장도 배급사와의 협상을 통해서 영화의 편성을 진행하는 것이라서 홀드백 기간이 법제화된다고 하더라도 장기간 한 영화를 편성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극장 상영 종료 후 6개월”을 법으로 묶는다고 해도, 실제로 그 기간 내내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극히 일부일 뿐이다.
또한 관객의 선택 역시 순간적 흥행에 더 민감하다. 소셜미디어와 유튜브 리뷰, 관객 평점이 집중되는 시점은 개봉 직후 한두 달이다. 이 타이밍을 놓치면 관심은 빠르게 사라진다. OTT가 바로 이 시점을 활용해 새로운 관객층을 끌어들일 수 있는데, 6개월 규제는 이 흐름을 가로막는다.
현재 영화 유통 구조는 ‘극장 → IPTV/VOD → OTT’ 순서로 이어진다. OTT는 단순히 극장의 경쟁자가 아니라, 극장 수익으로 충당하지 못한 제작사의 손실을 보완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특히 글로벌 OTT는 해외 시장 진출 기회를 열어주기도 한다. 국내에서 중간 성과에 그친 영화라도, OTT를 통해 해외에서 재발견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극장에서 흥행에 성공한다면 장기 상영이 당연히 최선이다. 하지만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극장 개봉작”이라는 타이틀만으로도 OTT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개봉 직후의 화제성이 살아 있을 때 판권 계약을 체결해야, 최소한 제작비라도 회수할 수 있다. 최근에는 OTT가 판권료를 높게 책정하는 시점도 바로 이 개봉 직후다. 시간이 지나 이슈성이 사라지면 가격은 떨어지고, 협상력도 줄어든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일률적인 ‘6개월 유예’가 아니다. 영화의 성격과 성과에 따라 극장 장기 상영과 OTT 조기 진출 사이를 선택할 수 있는 유연성을 보장하는 것이 산업을 살리는 길이다. OTT를 막아서는 것이 아니라, 극장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것이 현실적 해법이다.
물론 정부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영화는 한국 문화산업의 중심축이고, 그중에서도 극장은 심장부다. 위기 상황에서 극장을 지켜야 한다는 발상은 IT 산업 위기에 삼성부터 살리려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방식은 문제다. 얼마 전 영화 소비 쿠폰 정책도 회수율이 40%도 넘지 못하며 한계를 드러냈다. 티켓 가격을 할인해도 관객들이 무조건적으로 영화 관람을 위해, 극장을 찾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로써 일시적 관객 유인책으로는 지속적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관객이 줄어든 근본 원인은 규제 부재나 티켓 가격이 아니라, 보고 싶은 영화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홀드백 법제화 논의는 아직 초기 단계다. 정부 지원을 받은 영화에만 적용할지, 제작비 30억 원 미만 작품이나 독립영화는 제외할지, ‘상영 종료’의 기준을 모든 극장 퇴장 시점으로 볼지 아니면 일정 회차 이하로 줄어드는 시점으로 볼지 등 세부 기준은 여전히 논의 중이다. 실제 시행까지는 업계 합의와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률적 규제가 최선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크다.
좋은 콘텐츠는 언제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온다. <F1>처럼 대규모 홍보 없이도 장기 흥행을 이어가거나, <얼굴>처럼 저예산이라도 입소문으로 관객이 찾아보는 경우가 그렇다. <기생충>이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작품성으로 인정받은 사례도 마찬가지다. 결국 관객 감소의 본질은 OTT 조기 진출이 아니라 콘텐츠 경쟁력 자체다. 플랫폼 규제로는 관객의 발걸음을 돌려세울 수 없다.
산업을 살리는 해법은 법제화가 아니라 창작 생태계다. 창작자와 제작사, 배급사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중소 제작사 지원, 다양성 영화 투자, OTT와 협력한 글로벌 공동 제작 등이 장기적으로 한국 영화의 활력을 높이는 길이다.
홀드백 6개월 법제화는 겉으로는 극장을 보호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장의 자율성을 제한하고 제작사의 선택권을 빼앗는다. 산업을 살리는 길은 규제가 아니라, 관객이 자발적으로 찾게 되는 영화를 꾸준히 만들어낼 수 있는 제작 생태계다. 정부가 던져야 할 질문은 “어떻게 극장을 지킬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영화를 만들 것인가”일 것이다.
관객은 재미있는 영화를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환경과 플랫폼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선택은 관객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