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 추석 연휴 박스오피스 1위를 한 이유
<보스> 추석 연휴 박스오피스 1위를 한 이유
추석 연휴에 <보스>를 봤다.
영화는… 그냥 그랬다.
코미디로서 웃음이 완전히 없진 않았지만, 신선하거나 기억에 남는 장면은 거의 없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대사, 익숙한 캐릭터, 예상 가능한 전개.
<극한직업>의 한 장면이 떠오를 정도로 비슷한 구도가 많았다.
그렇다고 완전히 나쁘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냥, ‘그럴 법한 영화였다.’
아마 그 말 안에 모든 평가가 담겨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스>는 추석 연휴 기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같은 시기 개봉한 <어쩔수가없다>나 <극장판 체인소맨>보다 더 많은 관객이 연휴 동안 이 영화를 선택했다.
최종 관객수로 보면 비슷한 수준이지만, 명절 기간만큼은 가장 많은 사람이 극장을 찾은 영화였다.
완성도나 평판에 비하면 의외의 결과였다.
“추석엔 볼 영화가 없어서 그렇다”는 말로도 설명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 이유가 단순히 ‘대체재 부재’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사람들은 왜 극장에 가는 걸 망설일까.
예전엔 주말이면 자연스럽게 영화관을 찾던 사람들이, 이제는 “굳이?”라는 말을 먼저 꺼내는 시대가 됐다.
정말 예전에는 그게 관성처럼 이어졌던 걸까, 아니면 그땐 문턱이 낮았던 걸까.
이제는 ‘극장에 간다’는 게 단순한 여가 활동이 아니다.
시간을 내고, 돈을 쓰고, 교통과 사람 많은 공간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OTT를 켜면 비슷한 퀄리티의 콘텐츠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 굳이 그 수고를 감수해야 할 이유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특히나 나의 경우, 주변에 있는 극장이 모두 대형 쇼핑몰에 입점해 있다 보니 영화만을 보러 가기 위해 그곳을 방문하는 일이 오히려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편한 복장과 마음으로 영화를 보러 가고 싶지만, 쇼핑객들로 붐비는 공간을 통과하는 것 자체가 피로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결국 ‘나가는 게 문제’라기보다, 나가더라도 마음 편하게 가지 못하는 순간이 생긴다는 것이다.
극장이 점점 영화보다 소비의 중심 공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전한 영화’를 고른다.
‘실패하지 않을 영화’, ‘별로일 가능성이 낮은 영화’.
그건 단지 영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극장 나들이 자체가 리스크가 된 시대의 선택 방식이다.
특히나 혼자 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보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영화 선택에 신중을 기하게 된다.
앞서 언급한 누군가와 함께 보는 영화라면 더욱 그렇다.
이때 영화는 영화로서의 재미보다, 극장이라는 공간이 여가의 일부로 작용한다.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라는 이유로 예술성에 대한 기대와 부담을 동시에 안고 있다.
‘재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
반면 <보스>는 그런 위험이 없다.
익숙한 얼굴, 익숙한 유머, 익숙한 구조.
예상 가능한 재미는 지루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리스크 없는 선택의 보증수표이기도 하다.
현대인에게 영화는 어떤 의미일까.
실시간 상호작용이 중요한 시대에서, 영화는 오히려 즉각적인 반응이 불가능한 콘텐츠로 남아 있다.
집을 나서서 돈을 지불하고, 시간을 맞춰 좌석에 앉아 2시간을 보냈는데 재미가 없다면 그 경험은 실패로 느껴진다.
결국 사람은 성장하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
무언가를 투자했을 때 그만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감각.
하지만 그 보상이 과연 영화에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언제든 전화나 톡이 오면 답변을 해줘야 하는 사람이라면 극장이라는 공간은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런 경계가 약한 나부터도 그런데 말이다.
더 나아가서는 스트리밍과 라이브 콘텐츠의 시대가 되면서, 관객은 ‘참여하는 콘텐츠’에 익숙해졌다.
이제는 반응하고, 댓글을 달고, 실시간으로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가 더 ‘살아있는 경험’처럼 느껴진다.
그에 비해 영화는 닫힌 세계다.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점점 관객이라기보다 관찰자가 되어가고 있다.
영화는 본질적으로 클래식하다.
시간이 지나도 수없이 회자될 수 있고, 한 번 완성되면 다시 수정할 수 없는 형태로 남는다.
그렇기에 영화의 가치는 다른 문화 콘텐츠에 비해 ‘시간을 견디는 예술’에 가깝다.
하지만 한국 영화계는 유독 ‘트렌디함’을 중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제작의 구조상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하기 어려운데도 말이다.
기획부터 개봉까지 길게는 수년이 걸리는 산업에서, 지금의 유행을 따라잡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결국 많은 영화가 ‘지금 개봉했지만 이미 지난 시즌의 감각’을 품게 된다.
일명 ‘창고 영화’들이 늘어나면서, 트렌디함에서는 더욱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는 다르다.
시즌제로 이어지며 사람들의 일상과 함께 천천히 스며든다.
처음엔 잔잔하지만, 시간이 쌓이며 커다란 파도를 만든다.
반면 영화는 단 한 번의 파도를 만들어야 한다.
두세 시간 안에 감정의 절정과 여운, 메시지까지 모두 완성해야 한다.
그래서 영화는 흥행의 난이도가 가장 높은 콘텐츠다.
그만큼 한순간에 수많은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폭발력도 지녔다.
유튜브에서 100만 조회수가 ‘대박’으로 불리듯, 극장에서 200만 명이 같은 영화를 봤다는 건 엄청난 일이다.
<보스>가 비록 특별한 영화는 아니었더라도, 200만 명이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파급력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
함께 본다는 감각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여전히 무한하다.
한국시리즈나 월드컵, 혹은 롤드컵 같은 경기의 극장 중계가 잘되는 것도 그 연장선이다.
사람들에게 극장이라는 공간은 단순한 관람 장소가 아니라, ‘집단 감정이 살아 있는 공간’이다.
개인화된 시대일수록, 그런 공간의 가치는 오히려 더 커진다.
그래서 극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영화, 이를테면 <범죄도시> 같은 작품들이 그 ‘함께 보는 경험’을 다시 열어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어야 관객이 극장의 매력을 다시 느끼게 된다.
지금 필요한 건 새로운 플랫폼이 아니라, 극장만의 리듬을 되찾는 일이다.
OTT와의 차별점은 기술이 아니라, 공동의 순간을 만드는 힘에 있다.
아무리 쇼츠가 빨라지고, 패스트 콘텐츠가 대세를 이룬다 해도 영화는 여전히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마블의 몇몇 기대작들은 3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에도 수많은 관객을 모았다.
그건 단순한 팬심이 아니라, 느림 속에서도 확실한 보상을 기대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조만간 개봉할 아바타 3의 러닝타임과 흥행 성적을 보면, 그 믿음이 아직 유효한지 다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대의 관객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찾아 극장에 가지 않는다.
오히려 관크 같은 문제 때문에 영화를 방해 없이 즐기기 위해서는 집이 더 좋은 선택지가 되기도 한다.
그보다는, ‘확실한 안정감’을 얻기 위해 극장에 간다.
<보스>는 그 안정감 속에서 만들어진, 지금 시대 극장의 초상 같았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면, 사람들은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 몇 초의 어둠 속에서만큼은, 우리는 같은 장면을 보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극장은 여전히 존재할 이유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