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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유시는 왜 이적을 선택했을까?

또다시 증명의 길을 선택한 어느 선수의 이야기

by 따따시


T1의 전무후무한 월즈 쓰리핏 달성 이후, 사람들의 관심은 계약이 종료된 T1의 원딜 ‘구마유시’의 재계약 여부에 집중됐다. 이전 그의 발언과 T1의 행보를 고려했을 때 많은 이들은 높은 확률로 재계약을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구마유시는 T1이 아닌 한화생명으로의 이적을 선택했다.

‘최고의 선수가 있을 곳은 T1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팀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선수가 왜 이적을 선택했을까.
그는 이적 발표와 함께 “증명의 길을 나선다”는 표현을 남겼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증명하려 했을까.

그리고 2025년 초 있었던 ‘스매시’ 선수와의 교체 기용은 그의 결정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이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진짜 세체원’이라면 팀을 떠나도 강해야 한다


구마유시 선수는 2019년 T1 루키로 시작해 2020년 LCK 1군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6년 동안 T1의 원딜로 활약하며 팀과 함께 월즈 3회 우승, 1회 준우승이라는 엄청난 성적을 거두었다. 이 과정에서 그의 기여도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T1의 압도적인 성적을 이야기할 때 중심에 놓이는 이름은 언제나 ‘페이커’였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구마유시 선수가 이적을 선택하게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구마유시는 세계 최고 원딜, 이른바 ‘세체원’이라는 타이틀에 대한 강한 갈망이 있다. 물론 그는 이미 세체원으로 불릴 만한 퍼포먼스를 보여왔고, 월즈 우승으로 이를 증명해 왔다. 하지만 진짜 ‘세체원’이 되고자 한다면, 팀의 상징과 함께 우승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징을 넘어서는 우승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즉, ‘T1의 구마유시’가 아니라 ‘구마유시’라는 이름 자체로 인정받는 것, 그 독립적인 증명을 위해 그는 이적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증명’이라는 방향성에서 이어지는 이야기가 바로 다음이다.


스매시 교체 → 제이카 시너지 테스트

2025년 초 T1은 주전 원딜이 아닌 ‘스매시’ 선수의 교체 기용을 선택했다. ‘주전 경쟁’이라는 말로 포장되긴 했지만, 당시 많은 팬들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뛰어난 기량과 높은 계약 금액을 가진 선수를 벤치에 두는 것은 구단 입장에서 흔치 않은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패치로 인해 제리·카이사·이즈리얼, 이른바 ‘제·이·카’ 조합의 가치가 크게 올라 있었고, 구마유시 선수의 제이카 숙련도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래서 스매시 기용이 메타 대응이라는 분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여기에는 코칭스태프의 방향성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팀은 분명 두 가지 갈림길 앞에 서 있었다.


제이카 중심 메타에 팀 전체의 조합을 맞출 것인가

구마유시의 제이카 숙련도를 억지로 끌어올릴 것인가



이 지점에서 ‘스매시 기용’은 단순한 주전 경쟁이 아니라,
팀 전체 조합과 메타 적합성을 테스트하려는 의도였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서부터는 개인적인 해석이다.

구마유시는 제이카 기용에 마냥 긍정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미 월즈 우승을 이끌 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준 상황에서 충분히 의견을 낼 수 있는 위치였다. 그렇기에 오히려 코칭스태프는 “제이카가 들어갔을 때 팀이 어떤 모습을 그릴 수 있는지 직접 확인해 보자”라고 제안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시즌 전,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은 LCK 컵을 테스트 베드로 삼아 스매시를 메인으로 기용해 조합 실험을 진행했던 것 아닐까. 구마유시 역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스스로 판단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이후 카이사의 숙련도를 크게 끌어올렸고, 2025 월즈에서 카이사로 압도적인 활약을 펼쳤다.
이 흐름을 보면, 그의 시즌 전체가 결국 ‘제이카 메타’에 대한 또 다른 방식의 ‘증명’이기도 했다.




일부 팬들은 T1이 구마유시와 재계약하지 못한 것을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적 의사는 선수 본인에게서 비롯된 것이었고, 그는 그 이유를 명확히 설명했다. T1 역시 이를 충분히 존중한 모습이었다. 6년간 함께한 선수를 위해 구단 유튜브에 계약 종료 인사 영상을 업로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안정만 생각한다면, T1에 남아 프랜차이즈 스타로 자리 잡는 것이 더 나은 선택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구마유시는 안주하지 않았다. 더 뛰어난 선수가 되기 위해, 더 높은 곳을 향하기 위해, 그는 ‘증명’의 길을 선택했다. 월즈 쓰리핏이라는 전무후무한 팀을 떠나까지 이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나는 그의 도전 정신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다. 앞으로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의 선택은 이미 충분히 의미가 있다.



이제 구마유시는 ‘T1의 우승’이 아닌 ‘구마유시의 우승’을 향해 움직인다.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그는 분명히 멈추지 않을 것이다.

도전은 언제나 시선을 넘어서는 행위다.



그의 선택은 스포츠가 가진 도전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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