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걷는 시간]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
한때 이곳은 대한민국, 싱가포르, 대만과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의 용'으로 불리며 비상했습니다. 강렬한 네온사인과 함께 동서양이 신비롭게 조화를 이루는 이색적인 경관을 지닌 이곳의 영화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 상영되었습니다. 또한 이곳은 낮은 세금과 높은 접근성을 바탕으로 쇼핑을 비롯하여 다양한 서비스 산업과 물류 산업이 극도로 발달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이 아시아의 작은 도시는 뉴욕, 런던과 함께 세계 3대 금융 허브로 손꼽히며 밤이면 화려한 불빛이 현란한 심포니와 함께 울려 퍼지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2024년 현재 그 불빛은 점차 사그라들고 있습니다. 이곳은 바로 중화인민공화국의 특별행정구 홍콩입니다.
제가 처음 홍콩 여행을 하게 된 이유도 홍콩이 아시아의 국가와 도시들을 연결하는 '허브(hub)'적 위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돈이 넉넉하지 않았던 대학생 시절 직항보다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경유 비행기를 자주 탔습니다. 일반적으로 직항 비행기보다 경유 비행기가 20~30% 정도 저렴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태국 방콕으로 여행을 가면서 홍콩을 경유했습니다. 홍콩 란타우 섬에 위치한 챕락콕 국제공항은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항공사들이 경유하는 아시아의 대표적인 허브 공항 중 하나입니다. 기왕 경유하는 것 며칠 동안 홍콩에 머무르면서 여행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렇게 우연히 시작됐지만 여행을 준비하면서 홍콩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홍콩을 단순히 중국의 특별 행정구역 중 하나 혹은 작은 도시 국가 정도로 정의 내리기에는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홍콩은 청나라 때까지 현재 중국 남부 광둥성 선전의 일부였으나 1842년 난징 조약으로 영국의 신민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1997년 중국의 특별행정구로 편입되기 전까지 무려 150년이 넘게 서구 문명의 영향을 받은 홍콩은 동서양의 문화가 공존하는 독특한 사회를 형성했습니다. 영국의 자본주의, 그중에서도 특히 금융 산업의 영향을 크게 받은 홍콩은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관문으로서 역할을 수행함은 물론 전 세계의 자본이 유입되는 금융허브로 성장하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사회 전반적으로 서양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았고, 공용어로 영어를 사용하는 홍콩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국제도시가 되었습니다.
홍콩의 집값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곳으로 유명한데 무려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비싼 도시인 뉴욕보다도 월등하게 비싸다고 합니다. 그 원인으로는 우선 홍콩의 지리적 환경을 들 수 있습니다. 홍콩의 면적은 1,105.6㎢로 서울의 약 1.8이지만, 오히려 인구는 730만 명으로 940만 명인 서울보다 적습니다. 즉, 단순 수치상으로만 보면 서울의 인구밀도가 홍콩보다 높습니다. 하지만 면적의 대부분이 평지인 서울과는 달리 홍콩은 대부분 개발이 어려운 산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홍콩은 건물을 짓거나 사람이 거주할만한 공간이 매우 부족합니다. 자연스럽게 홍콩인들은 대부분 구룡반도와 홍콩섬의 일부 지역에 밀집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아파트와 같은 주거 공간의 가격이 매우 비싼 것입니다.
홍콩의 집값이 비싼 이유로 제도적 측면도 있습니다. 홍콩 정부는 낮은 법인세로 세계 다수의 기업들을 유치시켜 홍콩을 아시아의 금융 허브로 발전시켰습니다. 반면 홍콩 정부는 기업에게 얻지 못 한 세금 수입을 토지 임대를 통해 보완합니다. 홍콩의 모든 토지는 정부 소유이며 토지 장기 임배를 경매를 붙여서 수익을 얻습니다. 이렇게 경매를 통해 집값이 매겨지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홍콩의 집값이 세계 1위가 된 것입니다. 그 외에도 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중국 본토에서 많은 투기성 자본이 홍콩으로 유입되면서 부동산 가격을 폭증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살인적인 집값으로 인해 홍콩인들은 웬만한 부자가 아닌 이상 큰 집에서 거주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일반 서민들은 대부분 관처럼 좁은 집 관재방(棺材房)에 거주합니다.
이처럼 홍콩의 부동산 가격은 매우 비싸지만 외식 물가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입니다. 물론 코로나 팬데믹과 환율 상승으로 인하여 지금은 홍콩의 외식 물가도 많이 올랐다고 하지만, 여행할 당시에는 한국에 비해서 많이 저렴하다고 느꼈습니다. 홍콩의 집은 가격에 반비례하여 실내가 매우 좁습니다. 그래서 좁은 방의 경우는 조리 시설을 갖추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래서 많은 홍콩 사람들은 집에서 식사를 해결하기보다는 외식을 하거나 테이크 아웃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아침 식사로 홍콩 서민들의 일반적인 아침 식사인 차찬텡을 경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차찬텡은 홍콩식 퓨전 서양음식으로 동양의 국물 문화에 서양의 식재료가 들어간 형태입니다. 저는 홍콩 사람들이 많이 주문하는 마카로니 햄수프와 소시지 라면을 선택했습니다. 이름 그대로 마카로니 햄수프는 하얀 국물에 마카로니와 햄이 둥둥 떠있는 수프였고, 소시지 라면은 인스턴트 라면에 소시지가 들어있었습니다. 물론 맛있다고는 할 수 없으나 굉장히 저렴한 가격과 동양과 서양이 이색적으로 만나는 홍콩의 특색을 반영하는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려한 홍콩의 도심 지역으로 떠나봅시다. 홍콩 시가지는 크게 구룡반도와 홍콩 섬 지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영국식 빨간색 2층 버스를 타고 홍콩의 빌딩 숲으로 들어갑니다. 구룡반도에 위치한 몽콕은 홍콩 하면 떠오르는 낡았지만 높고 화려한 홍콩 특유의 사이버 펑크 건물들이 밀집하고 있는 곳입니다. 몽콕은 특히 홍콩 최대 규모의 재래시장들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의류, 운동화, 전자 제품과 같은 다양한 물건들을 비교적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곳입니다. 나단 로드(Nathan Road)를 따라 남쪽으로 걸어 내려가면 홍콩 최대의 번화가 중 하나인 침사추이가 나옵니다. 구룡반도 끝에 위치한 침사추이는 홍콩 최대의 쇼핑센터인 하버시티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걷다 보면 ‘홍콩에는 편의점보다 샤넬 매장이 더 많다’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홍콩은 아시아의 금융 허브로 불리는 만큼 전 세계은행들과 다국적 기업들의 빌딩이 빼곡합니다. 특히 밤이 되면 이 수많은 빌딩들이 내는 빛들이 장관을 이룹니다. 홍콩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우선 구룡반도에서 홍콩섬을 바라보며 즐길 수 있는 방법인데요. 대표적으로 세계 최고의 야경 쇼로 불리는 '심포니 오브 라이트'가 있습니다. 심포니 오브 라이트는 홍콩의 수많은 스타들의 핸드 프린팅과 동상들이 전시되어 있는 스타의 거리에서 매일 8시부터 약 15분간 홍콩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함께 펼쳐집니다. 이는 단순히 야경을 감상하는 것뿐만 아니라 홍콩의 화려한 빌딩들과 현란한 레이저 불빛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듯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종합예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페리를 타고 홍콩 섬으로 건너가며 야경을 즐기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 방법은 배를 타고 가면서 북쪽의 구룡반도의 야경과 남쪽의 홍콩섬의 야경을 둘 다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남중국해의 따사로운 바람을 맞으며 홍콩섬에 도착하면 구룡반도와는 또 다른 매력이 느껴집니다. 대부분 산지로 이루어진 홍콩섬에서 첫 번째로 들른 곳은 익청빌딩입니다. 이곳은 사실 그저 50년이 넘은 홍콩의 낡은 아파트 건물일 뿐이지만 닭장처럼 다닥다닥 붙은 건물이 ㄷ자 형태로 우뚝 솟아있어서, 홍콩 특유의 빈티지함이 물씬 느껴집니다. 영화 트랜스포머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익청 빌딩에서 그 유명세 덕분에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들어 기념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영화 중경삼림에 등장하였던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홍콩섬을 즐겨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세계 최장의 야외 에스컬레이터인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다가 중간중간 내려서 홍콩섬의 아기자기한 골목들의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거나 골목에 숨겨진 맛집을 찾아보는 것도 이색적인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홍콩의 나이트 라이프를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란콰이퐁으로 가면 됩니다. 이곳은 마치 거리 자체가 하나의 클럽처럼 느껴집니다. 흥겨운 음악이 거리 곳곳에 울려 퍼지고 펍의 사람들은 잔을 들고 거리에 나와서 이야기하며 또는 음악에 몸을 맡기면서 홍콩의 밤을 즐깁니다. 홍콩의 야경을 즐길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은 케이블을 타고 홍콩섬 정상에서 북쪽 구룡반도 쪽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때 케이블의 오른쪽에 앉으면 올라가면서도 홍콩섬의 야경을 즐길 수 있습니다. 정상에 오르자 홍콩섬의 빼곡한 건물들과 바다 건너 침사추이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함께 어우러져 장관을 이룹니다.
하지만 이렇게 반짝반짝 빛나던 홍콩의 불빛이 점차 사그라들고 있습니다. 다수의 매체에 따르면 홍콩의 항셍 지수는 몇 년째 하락하고 있고, 홍콩을 찾는 관광객의 실질적 수치와 규모도 매년 감소하는 추세라고 합니다. 더불어서 홍콩이 지니고 있던 아시아 금융 중심으로서의 지위는 싱가포르로 점차 대체되고 있다고 합니다. 실례로 2023년 한 해 4,200여 곳의 다국적 기업이 아시아 지역 본부로 싱가포르를 선택한 반면, 홍콩을 선택한 기업은 1/3인 1300여 개에 그쳤다고 합니다.
이처럼 홍콩이 아시아의 경제, 상업 중심지에서 멀어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홍콩의 중국화와 그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홍콩은 '일국양제'라는 중국과 분리된 자유롭고 독립적인 금융, 사법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또한 낮은 관세와 자유롭고 합리적인 경제 환경은 홍콩을 아시아의 물류, 금융 허브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우산 혁명으로도 불리는 홍콩의 반정부 시위 움직임에 맞서서 중국이 2020년 6월 국가보안법을 시행하였고, 안보를 이유로 외국 기업 단속을 강화하자 다국적 기업이 다수 홍콩에서 이전하였습니다. 비슷한 시기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중국 정부가 본토와 마찬가지로 홍콩에 봉쇄, 격리 정책을 실시하자 기업들의 탈 홍콩 움직임은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과거 중국 남부의 한적한 어촌이었던 홍콩은 영국을 통해 서구 문명의 수혜를 받으면서 150년 간 동서양의 관문이나 세계 금융의 허브로 성장하였습니다. 1997년 중국에 반환된 이후에도 홍콩은 기존의 제도와 문화적 역량을 유지하며 중국의 경제 발전과 더불어 가파르게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홍콩에 대한 정치적 간섭은 점점 심해졌고, 코로나 19 이후 중국의 강력한 봉쇄 정책과 홍콩 보안법의 통과는 홍콩 민주주의와 더불어 경제 시스템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었습니다. 과연 홍콩은 과거의 찬란했던 영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점점 희미해져 가는 홍콩의 불빛을 바라보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