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기 시장의 4위 '와이즐리'는 출시한 지 아직 2년도 채 되지 않는 신생 브랜드입니다. 2018년 2월 처음 제품을 선보인 지 2개월만에 검색량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시장을 정확히 파고 들었습니다. P&G와 베인앤드컴퍼니에서 소비재를 배운 김동욱 대표는 어떻게 남성 소비자의 마음을 읽어냈을까요. 지식 플랫폼 폴인(fol:in)의 스토리북 <그루밍 최전선 5개 기업의 비즈니스 인사이트:남성 소비자는 누구인가>에서 김 대표의 목소리를 들어보시죠.
면도의 맛에 괴성을 지른 것은 영화 <나홀로 집에>에 나온 케빈(맥컬리 컬킨 분)뿐만이 아닙니다. 면도기 구독 서비스 ‘와이즐리’의 김동욱 대표는 자취를 시작하며 처음 사 본 면도날의 매서운 가격을 잊지 못합니다. 당시 구입한 8개들이 면도날의 가격은 4만6000원. 함께 장바구니에 담은 생필품과 며칠간 일용할 양식을 모두 합친 것보다 비쌌습니다. 면도를 경험한 남성이라면 누구나 케빈의 마음을 이해할 것이며, 김동욱 대표의 불편한 기억에 공감할 겁니다.
면도날 가격은 물가 상승률을 성실하게 따라가 지금은 8개들이에 5만 원 가까운 돈을 지급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성능이 크게 개선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면도날에 베이고, 쉐이빙 젤에서는 아저씨 냄새가 나며, 애프터쉐이브는 알코올 성분이 지나치게 많아 소독제처럼 느껴집니다. 1990년 나홀로 집을 지킨 케빈이 38세의 건장한 남성이 되어 미술가로 활동할 만큼 세월이 흘렀지만, 그 장면을 웃으며 지켜본 남성들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면도기를 살 때마다 괴성을 지르고 있습니다.
면도기는 왜 비쌀까
면도기 사업은 수익성이 매우 좋은 편입니다. 김 대표는 질레트의 영업이익률이 30%대인 점을 꼬집습니다. 유통회사가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을 달성하기 힘든 것이 일반적이며, 고부가가치 산업의 대표주자인 애플의 영업이익률이 20%대인 것을 비교하면 놀라운 수치죠.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컨설팅하며 봤던 회사들은 대개 한자리 수 영업 이익을 겨우 힘들게 지켜내는 게 일반적이었거든요.
왜 이렇게 면도날이 비싼지 살펴 봤는데요,
면도날 판매 가격의 30~60% 정도는 중간 유통 마진이에요. 면도날은 대부분 유통 마진이 높은 채널에서 많이 팔리거든요. 가장 많이 팔리는 곳이 대형마트고, 다음으로 드럭스토어예요. '소비자가 누리는 본질과 다른 곳에 비용이 쓰이고 있구나’ 해서 바꿔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유통 마진이 이렇게 높다면 원가율은 어느 정도일까요. 면도기의 원가율은 판매가의 5%에 불과합니다. 이런 구조가 나타난 건 면도기 생산이 독과점화돼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세계에서 면도날을 생산하는 업체가 약 다섯 군데뿐이라면 믿어지시나요. 그중 대부분이 유명 면도기 회사와 독점 납품계약을 맺은 상태라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나기 힘듭니다. 수요는 꾸준하나 공급은 제한된, 기형적으로 성장한 면도기 시장의 실체입니다. 김 대표는 이 시장을 정면으로 두드려봤다고 합니다.
3000만원어치 면도날, 부모님 집을 물류 창고로
처음엔 무작정 전화도 하고 독일 공장도 찾아가고 그랬어요. 한국에서 뭐하다 온 어린 애인지 모르니 ‘면도날을 달라’고 해도 줄 이유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200명분의 샘플이라도 달라’고 해서 소비자 가격으로 구매했죠. 이 사람들을 통해서 데이터를 조사했고요,
공장에서도 ‘뭔가 사업을 하려고 하나보다’ 하고 제게 최소 주문량을 제시하더라고요. 3000만 원어치 물량을 사가면 만들어주겠다는 거였어요.
이렇게 폐쇄적인 면도기 시장이지만 언제나 도전자는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2011년 미국에서 등장한 달러 쉐이브 클럽(Dollar Shave Club)과 2013년 문을 연 해리스(Harry’s)가 대표적입니다. 두 스타트업은 저렴한 가격과 깔끔한 디자인, 정기배송 서비스로 시장에 균열을 일으켜 미국 온라인 시장에서 질레트를 앞지르고, 2017년 기준 시장 점유율을 12% 가까이 차지했습니다. 60~70%대를 유지해온 질레트의 점유율은 50%대로 떨어졌죠.
국내는 어땠을까요. 이 대표가 베인앤드컴퍼니를 퇴사한 건 2017년, 독일에서 주문한 3000만원어치의 면도날이 항공 운송을 통해 집에 도착했을 때입니다. 면도날이라는 게 부피가 작아, 3000만 원어치라고 해도 라면 박스만큼도 안 되는 자그마한 박스였다고 합니다.
'아 이제 어떡하지'하는 마음으로 퇴사를 했어요. '이게 진짜 팔리는지를 한번 보자'는 마음이었죠. 마침 부모님께서 해외 파견을 나가셔서 제가 집을 무단으로 사용하면서 집을 물류 창고로 거의 개조했어요. 소파를 치워버리고 그 곳에서 택배 박스를 접었어요. 아침에 일어나 직접 전화를 받고 박스를 접었죠.
택배 아저씨가 오후 8시 반에 물량을 수거해가면 그때야 밥을 먹었어요. 어찌 보면 초라하던 순간인데, ‘이게 진짜 팔리는구나’ 하는 생각에 힘들지도 않았어요.
정기배송 대신 가성비로 승부수
6개월 동안 서비스를 하며 ‘진짜 사람들이 이게 필요하구나’ 라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동시에 개선해야 할 점을 발견해나갔죠. “제대로 된 서비스를 해보자”고 마음먹었고, 부모님 집을 본격 사무실로 개조했습니다. 공동 창업자들과 전국 각지로 흩어져 금형 업체들을 만났습니다. 원하는 가격에 좋은 면도날을 생산해줄 곳을 찾아나선 거죠. 천신만고 끝에 파트너를 찾았고, 6개월 동안 고민해 ‘와이즐리’의 첫 제품과 패키지를 탄생시켰습니다. 와이즐리는 값싼 제품을 원하는 이들이 구두쇠여서가 아니라 현명하기 때문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 지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새로 내놓은 브랜드 ‘와이즐리’도 처음에는 사실 정기배송 서비스가 아니었습니다. 앞서 소개한 미국의 두 서비스 ‘달러쉐이브클럽’과 ‘해리스’는 정기배송 서비스였거든요. 2017년에는 국내에서도 핸섬박스(Handsome Box)라는 면도기 정기배송 서비스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왜 김동욱 대표는 오로지 가격에만 집착했을까요.
미국에선 ‘정기배송’이라는 컨셉이 먹혔죠.
하지만 저는 ‘사람들이 원하는 게 그게 아닌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면도기와 관련해 주목한 문제는 가격이지 정기배송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라요. 미국은 생필품을 사려면 15분 정도 운전을 해서 가야 하잖아요. 우리는 집 바로 앞에 올리브영이 두세 곳씩 있고, 편의점은 열 개 정도 있잖아요.
대신 가격 대비 성능에 매달렸다고 합니다. ‘와이즐리’는 제품부터 패키지 디테일 하나하나를 집착하듯이 들여다봤다고 합니다. 그 집착을 보여주는 일화가 ‘전량 까대기’사건입니다. 2018년 2월, 제품 출시를 앞두고 면도기 버튼 불량을 확인한 겁니다. 1000개 중에 3개 확률로 버튼이 문제가 있다는 걸 발견한 거죠.
김동욱 대표가 말하는 와이즐리 브랜딩 전략의 모든 것, 오직 폴인에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