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인] 회사를 움직이는 신입사원
인턴을 하며 '지금보다 더 빡세게 일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는 것도 맞겠지만,
새로운 도전이 없으니 힘이 나질 않았거든요.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맞는 일하는 법은 따로 있다. 그 방법을 찾는 길을 모를 뿐이다. 이윤주는 그 방법을 인턴 활동에서 찾았다. 총 5번의 인턴을 하며 이윤주는 자신이 원하는 업무가 무엇인지 파악했고, 원하는 롤을 명확하게 의사전달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함께 일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도 몸소 알게 됐다. 마지막 인턴으로 일했던 현대자동차에 2019년 7월 입사했다.
졸업 전 마지막 학기에 6학점만 들으니까 여유가 생겼어요. 언젠가 꼭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친한 친구와 시작했는데, 패션 잡화 중에서도 그나마 접근이 쉬워 보이는 가방을 골랐어요.
‘아메리칸 빈티지’ 스타일의 남녀공용 가방이에요. 빨리 변하는 패션 트렌드에도 오래 쓸 수 있는 가방을 만들고 싶어서 소재에 좀 신경을 썼어요. 이것저것 검색하다 ’왁스캔버스‘를 알게 됐는데, 직조한 면직 캔버스에 왁스를 칠해 가죽처럼 에이징할 수 있는 천이에요. 스크래치가 생겨도 왁스를 칠하면 원래대로 쓸 수 있어요. 브랜드 이름은 빈티지와 레트로를 섞어서 ‘빈트로’라고 정했어요. 판매는 위험 부담이 적은 크라우드펀딩으로 하기로 했죠.
'언젠가 꼭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졸업 전, 학점에 여유가 생기자 윤주님은 패션 브랜드를 창업하고 가방을 만들었습니다. 이 같은 호기심과 실행력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는 윤주님만의 원동력입니다.
물건을 사보기만 했지, 만들어본 적이 없어서 어려웠어요. 천을 구하려고 동대문 원단시장부터 신설동 원단시장까지 찾아다녔어요. 처음엔 초짜인 게 티가 날까 봐 전전긍긍했는데(웃음), 어차피 들통날 것 같아서 나중엔 초보라는 걸 밝혔죠. 의외로 사장님들이 친절하게 알려주셔서 3~4곳에서 단가 견적을 받았어요.
가방 디자인은 친구의 아는 분이기도 한 가방 브랜드 대표님에게 조언을 받아 최종 디자인을 결정했어요. 가방 제조공장을 찾는 것도 일이었어요. 검색해서 나온 제조공장 10곳 정도에 무작정 전화를 돌렸는데 샘플 제작 단가가 너무 비싼 거예요. 결국, 원단을 주문한 사장님에게 제작공장을 추천해달라고 부탁 드렸어요. 다행히 크라우드펀딩을 여러 번 해본 공장을 추천 받았어요. 공장 사장님이 제작 공정을 친절하고 자세히 설명해주셔서 많이 배웠어요. 처음에 저는 철형이 뭔지도 모르는 생초보였거든요. 철형은 가방의 부위별 본이에요. 각 부위를 손으로 일일이 자를 수 없으니까 본을 만들어서 찍어내거든요, 가방을 만들려면 철형 제작을 별도로 해야 하더라고요.
사진 찍을 돈이 없어서 필름카메라 동호회 활동을 하던 고등학교 친구에게 연락해 촬영했어요. 작업 비용과 소정의 인건비를 주고요. 그런데 그 친구, 결국 빈트로 팀에 합류했어요. 스튜디오는 조인스타트업을 할 때 알게 된 분이 운영하는 곳을 빌렸고요.
크라우드펀딩 사이트를 통해 주문한 고객은 총 330명이었어요. 가방은 1개당 6만원이었고, 총 2297만6000원을 펀딩 받았어요. 그런데 왁스캔버스 단가가 비싸서 가방 가격도 올라가고 말았죠. 그래서 소재를 바꿀까 고민도 잠시 했지만, 원하는 걸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그대로 진행했어요. 수익은 함께 일한 동료 2명과 동등하게 나누기로 했어요. 액수가 큰 것도 아니고, 다 같이 고생했으니까요.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다음 프로젝트를 위해 얼마 정도 남긴 후 나누자는 의견도 있었어요. 왁스캔버스 가방을 한 번만 내는 게 아쉬워서요. 다른 타입의 가방도 내보고 싶고, 옷이나 액세서리도 만들어보고 싶거든요.
‘인생 가방’이라는 피드백과 ‘다음에 신제품이 나오면 또 믿고 살만한 브랜드’라는 평이 가장 동기부여가 되더라고요. 저희가 고민해서 만들어낸 창작품이 평생 들고 다니고 싶은 물건이란 평을 받은 거잖아요. 소중하고 가슴 벅찼어요. 작은 일이긴 하지만, 구매하신 분들 이름 하나하나를 스티커로 제작해 붙여드렸었는데, 정말 좋아해 주신 분들이 많았어요. 배운 점도 많아요. 제품의 완성도 측면에서 보완할 점도 많지만, 궁극적으로는 더 소비자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배웠어요. '소비자가 이 상자를 열었을 때 처음 볼 광경이 어떠면 좋을까' 생각하면 포장을 더 신경 쓰게 되고, '새로 산 가방을 처음 받았을 때 불량품이라면?' 같은 걸 상상하면 제품 검수를 더 신경 쓰게 되거든요.
대학교 2학년 때, 인액터스(Enactus: Entrepreneurial. Action. Us. 전 세계 36여 개국 1700여 개 대학과 기업들의 파트너십을 통해 비즈니스 리더를 양성하는 글로벌 대학 연합 단체)에서 함께 활동하던 선배가 꾸린 창업팀에 참여했었어요. 팀 이름은 SIG(Social Impact Group)이고, 안드로이드 영역의 상태 바를 커스터마이징하는 앱을 만들었어요. 예비 창업자를 지원하는 연세대 창업지원센터에도 입주했지만, 생각보다 일이 잘 안 풀렸죠.
처음 겪는 문제들을 잘 해결하지 못한 것 같아요. 좋은 팀원은 어떻게 모집할지, 어떤 방식으로 일할지, 업무 공유는 어떻게 할지, 투자를 받기 위해 어떤 점을 보완할지 등의 문제죠.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앱의 베타 버전만 나온 채 팀원들의 개인 사정으로 해체됐어요. 그때 창업이 힘들다는 걸 알게 됐어요. 동시에 다른 스타트업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궁금해졌어요.
학교 안에서 공지를 보고 신청했어요. 이 프로그램이 저한테 딱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스타트업이란 단어를 모르는 사람이 많았고 저 역시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는 상태였는데, 스타트업을 연결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하니까 ‘바로 이거다’ 싶었던 거죠. 또 언젠가는 창업하고 싶단 마음이 있었으니까, 이 기회에 스타트업을 제대로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사실 윤주님의 첫 창업은 가방 브랜드 '빈트로'가 아닙니다. 인액터스의 선배들과 함께 만든 SIG(Social Impact Group)가 첫 창업 팀이죠. 안드로이드 영역의 상태 바를 커스터마이징하는 앱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비록 잘 안 됐지만, 첫 창업을 해보고 뭔가를 만드는 행위의 즐거움을 알게 됐거든요. 그전에는 바쁘게는 살았지만,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최근에 가방을 만들면서 ‘시작이 반이다’라는 걸 실감하기도 했어요. 두려움 때문에 안 하는 거지, 막상 시작하면 어떻게든 되잖아요. 실제로 해보면, 또 특별히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기도 하고요. 그럼 도전이 더 가벼워지고, 나중에는 더 큰 일을 잘할 수도 있겠죠.
첫 회사는 소셜 댓글 서비스 ’라이브리(LiveRe)‘를 론칭한 스타트업 시지온이었어요. 주 3일 오후에 마케팅 업무를 진행하는 파트타임 인턴으로 3개월 일했어요. 막상 마케팅 일을 해보니, 제가 원하던 일이 마케팅이 아니라 서비스 기획이란 걸 정확히 알게 됐어요.
규모가 큰 기업에선 인턴이라 해도 적극적으로 일할 기회가 있을 것 같아서요. 하지만 생각보다 그렇지 않았어요. 그래서 대표님에게 면담을 요청했어요. 대표님은 함께 고민해주시며 제가 원하는 방향을 맞춰주겠다고 하셨죠. 그 무렵 회사에 콘텐츠 분야에 경험이 풍부한 이사님이 합류했고 제 사수가 되어주셨어요. 저는 이사님께 “지금보다 더 빡세게 일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는 것도 맞겠지만, 새로운 도전이 없으니 힘이 나질 않는다. 그러니 제가 할 수 있는 업무 R&R(Role and Responsibility, 역할과 책임)을 기존 사원들과 명확히 분리해서 이일 저일 많이 시켜달라"고요.
그 뒤로는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해봤어요. 이사님을 따라 광고 수주 미팅도 많이 다녔고 ’뭐든지 해보는 랩(이하 뭐랩)‘란 컨셉의 커머스 콘텐츠 기획에도 참여했어요. 그때 아이디어를 낸 게 ‘덕후실험실’이에요. 뭐랩 플랫폼 구독자가 주로 덕후라는 데에서 착안했죠. 이사님을 비롯해 PD님과 작가님들께 말씀드려 브랜딩을 바꿔보자고 제안했어요. 그리고 ‘덕후들이 티켓팅하는 법’, ‘덕후들 응원봉’처럼 덕후를 위한 콘텐츠를 같이 만들었어요. 다들 밤 11시가 되도록 열심히 일했어요. 그렇게 고생해서 만든 콘텐츠가 제법 조회수를 올렸죠. 1회 때 80만 뷰 정도 기록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이때 팀 안에서 사람 간의 관계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배웠어요. 저에게 좋은 의견이 있어도, 이걸 구현하려면 결국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수긍하고 도와줘야 가능하잖아요.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사람들과 관계가 좋아야 하고요.
저는 학교 공부보다 현장 일이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2017년 초에 교환학생으로 중국을 다녀오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는데 좀 심심하더라고요. 일상에 권태가 찾아올 무렵(웃음), 연세대 커리어넷을 뒤지다 자동차 애프터마켓 플랫폼인 카닥에서 인턴을 뽑는다는 공지를 봤어요. 얼른 지원했고, 휴학한 후에 2018년 1월부터 카닥에서 6개월 동안 일했어요.
카닥은 차주가 자동차의 파손 부위를 사진으로 찍어 올리면 수리업체들이 견적을 실시간으로 올리는 모바일 서비스예요. 차주는 제공업체들의 견적을 비교하고 채팅 상담을 통해 원하는 곳을 선택하면 돼요. 차량의 수리 여부나 수리 비용과 상관없이 고객의 수리 견적 요청에 답한 수리업체가 수수료를 내고요. 차종과 제조사(수입차인지 국산차인지), 지역에 따라 차등을 둬서 견적 건당 가격을 책정하는 비즈니스 모델인데, 무척 새롭게 느껴졌어요. 처음 창업할 때 아쉬웠던 점이 비즈니스 모델이 없다는 거였거든요. 비즈니스 모델에 관해 배우고, 새로운 업계에도 도전해보자며 지원했죠.
카닥에서 배운 것은 ‘원하는 롤을 명확하게 커뮤니케이션 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초반에 직무에 관한 커뮤니케이션에 오해가 있었거든요. 저는 서비스 기획을 원했는데, 대표님은 제가 마케팅 업무를 원한 줄 알고 계셨어요. 그 후 직무를 바꿔 앱 개편 기획을 맡았지만, 회사의 사정으로 일정이 계속 지연됐고 4개월이나 지나고 나서야 제품 기획을 맡게 됐죠.
당시 카닥은 자동차용 에어컨 필터인 캐빈 필터 개발과 중국 시장 진출을 계획 중이었어요. 대표님은 제게 중국의 앱 개편 방향부터 중국 차량 서비스, 가격이나 유통망 등을 전부 알아보고 결정하는 중국 총괄을 맡겨주셨어요. 대표님이 빠르게 피드백을 주며 제 롤을 바꿔주셨고, 그 덕에 제품 기획이라는 전혀 새로운 일을 해볼 수 있어서 좋았죠. 그럼에도 날려버린 4개월이 조금 아쉬워요. 제가 원하는 롤을 더 명확히, 더 빠르게 커뮤니케이션했더라면 더 깊이 있게 일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죠.
네 번째 회사였던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컨설팅 RA(Research Assistant)로 일할 무렵 장 대표님과 이코노미조선에서 개최하는 컨퍼런스에 갔었어요. 대표님, 기억하세요? 저는 손태장 미슬토(Mistletoe) 회장이 공유자동차 시대에 일어날 변화에 대해 이야기한 게 인상 깊었어요. 도심 주차장이 줄고, 도시 개발 방향도 지금과 달라진다고요. 자동차 산업의 변화가 도시에 큰 변화를 가져올 거란 사실이 무척 흥미로웠어요. 앞으로 완성차 업체들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어떻게 경쟁력을 가질지 궁금해졌죠. 카닥에서 일하며 자동차와 좀 친해진 터라(웃음), 현대자동차에 인턴을 지원했어요.
현대차에서는 인턴에게 실무 대신 개인 과제를 줬어요. 3주 동안 과제를 발전시켜 최종 발표를 해요. 과제 결과와 평소 업무 태도, 조직 적응도 등으로 최종 평가를 하는 식이에요. 처음엔 조금 겁을 먹었어요. 주변 사람들이 “군대 뒤에 현대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도 해서요(웃음). 다행히 팀 분위기가 좋았고, 좋은 분들을 만났어요.
제 과제는 중국 시장과 관련된 거였어요. 제가 가진 중국에 대한 경험들을 반영할 수 있었어요. 어려운 점은 자동차 흡기통이나, 배기량, 마력 같은 자동차 구조와 기능을 잘 모른다는 거였는데, 현업에 계신 분들을 끊임없이 쫓아다니며 질문하고 공부했어요. 바쁜 분들을 너무 괴롭혔단 생각도 드는데(웃음), 그래도 흔쾌히 대답해주셨어요. 덕분에 도움을 많이 받고 발표도 잘 마쳤어요.
공식 피드백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제 발표 내용이 특별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오히려 제가 기획하면서 느낀 것은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였어요. 실제로 참신하다고 생각한 의견을 발표하면 대부분 실무에 계신 분들이 이미 고민하거나 실행했던 것들이 많았어요. 그러니 아무리 새롭고 좋은 의견을 내도 핵심은 실행에 있는 것 같아요. 타임 라인에 맞춰서 얼마나 면밀하고 주도적으로 실행했느냐 같은 것들이요.
제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면 함께 일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실제로 현대차에서 제가 많이 받은 피드백은 “네가 있어서 팀이 살았다” 같은 거였어요. 결국, 일의 기본은 사람 관계라고 생각해요. 좋은 태도는 업무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만들고 실행에 힘을 더해주잖아요. 저는 여러 번의 인턴을 겪으면서 이런 태도를 갖추는 게 익숙해진 것 같아요.
스타트업에서 시작해 대기업까지 경험해보니 어떤 점이 다른지 명확히 눈에 보였어요. 증명해 보이고 싶은 마음도 사실 있었어요. 스타트업에서 일했다는 이유만으로 대기업에 못 갈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거든요. 출발을 어디서 했는지가 중요하다면서요. 스타트업이든 대기업이든, 온전히 내 선택에 의한 결과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사실 저는 평탄한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해요. 인생에 큰 굴곡 없이, 평범한 가정에서 별다른 시련 없이요. 물론 그럼에도 스스로 실패라고 느꼈던 경험이 있는데, 되도록 빨리 잊어버리고 다른 일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더 좋은 기회가 있겠지’라고 생각해요.
중학교 때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하던 아이였어요. 그 때는 공부가 재미있었거든요. 하지만 고등학교에 가보니 저보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정말 많은 거예요. 저 친구들과 공부로 경쟁해서 이기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공부보다 다양할 활동을 하는 게 더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시간과 열정을 적당히 분배하기로 했어요. 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성적의 기준을 정해 두고, 그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렇게 해서 아낀 시간을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사용했어요. 더 좋은 성적을 얻지 못했으니 누군가는 이걸 실패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제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도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기 위해 도전하는 중이라고 생각해요. 요즘에는 자동차가 ‘종합 예술’에 해당한다는 것을 몸소 깨달으며 재밌게 배우고 있어요. 제가 잘 알지 못하는 새로운 분야를 배워가는 것은 정말 설레고 신나는 일 같아요.
가보지 않은 길에 관한 궁금증이 많아요. 호기심은 제 도전의 원동력이에요. 부모님은 저더러 “뭘 믿고 그렇게 긍정적으로 사냐”고 하세요. 미래에 어떤 일을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중학교 때 팔토시 끼고 공부만 하던 시절의 저는, 제가 잘난 줄 알고 살았어요.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얼마 전까지도 조금 그랬던 것 같아요. 하지만 요즘엔 누군가를 못났다고 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제가 자신감이 충만할 때는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다'는 말을 잘 공감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그 말에 정말 공감해요. 모든 사람에게 조금 더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서로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하면 가장 좋고요.
사람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일하면서 새롭게 배우는 게 정말 많아요. 최근엔 창의력에 대해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어요. 창의력이 전에 없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게 아니라고요.
20대 초반엔 새로운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사람이었어요. ‘아이디어 뱅크’란 말을 듣기도 했어요. 그런데 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창의력이 새로운 아이디어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창의력은 내가 본질에 가장 집중할 수 있는 능력 같아요. 주어진 상황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내게 필요한 능력을 자각하고 실행하는 거죠. 예를 들어 마케팅 분야라면, 마케터가 문구를 신박하게 쓰는 것도 창의력이겠지만, 스스로 가진 능력을 정확히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는 것, 그게 창의력 같아요. 핵심을 꿰뚫어서 필요한 것을 콘텐츠로 만들어내는 능력이요.
< 장영화의 노트 >
저는 학력고사 세대입니다. 학력고사 한 방이면 인생역전을 할 수 있는 시대였죠. 학교 공부에 잠시 소홀했더라도 1년 마음 잡고 공부하면 수습할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밀레니얼의 학창 시절은 너무나 바쁩니다. 중학교 3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 좋은 고등학교를 들어가야 하고, 다시 고등학교 3년 동안 한 눈 팔지 않고 공부에 매달려 명문대에 입학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밀레니얼들에게 이것저것 마음 가는 대로 해보며 나를 찾는 시간을 갖으라고 조언하는 것은 사치가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학창 시절을 인내와 열심으로 보내고 마주하게 된 현실은 예상과 너무 달랐습니다. 좋은 성적과 졸업장을 얻기 위해 애를 썼는데, 내 일을 만나기 어려워진 거죠. 열심히 공부하지 말라거나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핵심은 ’균형감‘ 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맞춰, 균형 있게 내 열정을 배분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윤주님은 균형감이 뛰어난 인재입니다. 그는 “학창시절 학교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학교 공부를 좋아하지는 않았다”고 말합니다. 나보다 공부를 잘 하는 친구들도 많으니, 공부를 잘 해서 성공하는 방법은 본인에게 맞지 않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다운 전략으로 현실을 돌파해 갔습니다.
학교 공부에 쏟는 시간과 열정은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유지할 수 있는 정도로 하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경험을 쌓는데 투자했습니다. 대학 시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공부보다 일이 더 재미있다”며 스타트업부터 대기업까지, 인턴을 5번이나 경험하고 창업 세계도 경험합니다. 이 모든 경험을 통해 윤주님은 스스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기 자신을 객관화에서 바라보는 것은 단숨에 이루어 내기 어렵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켜켜이 쌓아 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 일을 만나고 싶다면, 사람들과 부딪혀 일하는 ’현장‘을 경험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점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윤주님이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25세 젊은이로 보이겠지만, 제 눈에는 내 일을 만나기 위한 전략을 짜서 현실을 돌파해 나가고 있는 전략가로 보이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고용되는 삶 대신 어떤 상황에서든 스스로 고용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역동적이고 글로벌한 경제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생 기술(life skill)로 앙트십(entrepreneurship 기업가정신)이 주목 받는 이유입니다.
스타트업 OEC의 장영화 대표가 만난, 앙트십을 가지고 자신의 일을 찾아가고 있는 10명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https://www.folin.co/storybook/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