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한달 이상 길어지고, 아이들의 학교 개학은 마침내 온라인으로 정해졌습니다. 뉴스는 온통 코로나와 다가온 선거 이야기이고, 긍정적이거나 좋은 소식을 담은 뉴스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좀 지치더라고요.
요즘 여러분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솔직히 고백하면 일주일 전 저는 ‘번아웃’ 상태였습니다. ‘번아웃’은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이라고 하는데요, ‘일’ 이야기를 하며 개개인이 일하는 의미와 재미를 발견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는 사람인 제가 이율배반적으로 ‘일’ 좀 덜하고,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어요.
'번아웃이란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제가 진행하는 1:1 세션에도 일을 좋아하고, 잘하는 분들이 ‘번아웃’을 호소하며 찾아오시는 경우가 많은데요. 일 잘하던 사람에게 갑자기 번아웃이 찾아오는 이유는 뭘까요? 번아웃의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봤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을 하고 그 일들을 ‘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입니다.
번아웃은 성취 지향적이고 일을 잘하려는 사람들에게 많이 발생한다고 하는데요.
몇 주 전 1:1 커리어 세션에 저를 찾아온 A 역시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A는 일하고 있는 회사도 계속해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측면에서 객관적으로 좋은 회사이고, 대표도 팀장도 좋은데, 일이 즐겁지 않고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계속해서 되묻게 되는 상황이 고민이라 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A는 자신의 일을 좋아하며 잘하고 싶어했고, 항상 무엇인가 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퇴근 후에도 집에 곧바로 가는 일 없이, 독서 모임을 간다거나 운동을 간다거나 어학을 배우는 등 늘 바쁘게 지냈죠.
주말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회사에서는 크고 작은 클라이언트 사이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이슈 대응을 A가 맡아 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터지는 다양한 이슈들에 삶과 일 사이의 경계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지 오래였습니다.
관계 중심적인 A는 클라이언트들이 다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이 뭔가를 질문하면 함께 고민하고, 주말이나 밤, 휴가 기간에 오는 문의에도 모두 응대했습니다. A의 회사 동료들이 휴가를 가서는 휴대폰을 보지 말고 제발 쉬라고 할만큼요.
이렇게 일은 점점 더 많아지고 그만큼 쉬지 못하고 일을 하던 A는 요즘에는 주말이면 그냥 멍하게 있거나 누워있는다고 했어요. 늘 뭔가를 하고 있던 자신이 시간을 이렇게 흘려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또 스스로를 괴롭히지만, 일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혼란스럽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A의 이야기에 공감했는데요. 모든 일을 다 잘할 수도, 다 잘할 필요도 없으니 일단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2가지 원칙에 따라 나눠보시라 조언했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같은 증상을 겪고 있다면 먼저, 나의 성장과 회사의 성장을 축으로 매트릭스를 그려 분석해 보세요. 그 다음에는, 내가 꼭 해야 하는 일과 다른 사람이 해도 되는 일을 나눠보는 것이죠. 이렇게 하다 보면, 그만 해야 할 일, 우선 순위를 두고 해야 할 일, 새롭게 할 일 등이 좀 더 명확히 눈에 보이게 됩니다.
그만 해야 할 일, 내가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과감히 그만두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해도 번아웃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그때는 그 곳에서의 그 일을 멈추고, 다른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때인 것이죠.
보다 근본적으로는 “나는 왜 스스로를 탈진시키고 있는가?” “나는 일하면서 어떻게 나 자신을 고갈시키고 녹초가 되게 만드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고 답해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실리콘밸리의 요다, CEO들을 울게 만드는 남자라는 별명을 가진 제리 콜로나는 그의 책 『리부트 Reboot(이수인, 엄윤미 옮김)』 에서 “빨리 움직일 때, 진정으로 내 삶을 채우지 않을 때, 가만히 서있지 않을 때, 진실되지 않을 때,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맞춰 사는 것이 쉬워진다”(117페이지)고 했습니다.
그 역시 늘 바쁘게, 더 많이, 더 빠르게 일을 해내면 될 것이라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의 인정으로부터 나아갈 방향을 얻었던 때가 있다고 고백하면서요. 너무 바빠서 내 삶을 살아갈 시간이 없다면, 가만히 멈추어 서서 지금 내가 왜 이렇게 바쁘게 일하고 있는지, 진짜 이유를 들여다 볼 용기를 내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번아웃의 두 번째 이유는 일하는 방식의 변화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매우 빠른 속도로 우리의 삶에 침투하고 있습니다. 오프라인 미팅이나 강의, 세미나가 다 온라인으로 바뀌게 되니 이동 시간이 줄어들고, 오프라인 회의에서 발생하는 ‘버리는 시간’-예를 들면, 모두가 다 참석할 때까지 기다리고, 명확한 아젠다 없이 시간이 흐르는 일-이 줄어든 부분은 장점인데요.
반대로 줄어든 이동 시간에 일을 더 하고, 온라인 미팅에서는 서로의 안부를 물을 새도 없이 바로 ‘일’ 이야기부터 꺼내게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일’만 하게 되니 업무 생산성은 높아질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점점 소진되게 된 것 입니다.
글로벌 기업의 경우 이 현상은 특히 심해졌는데요. 회사에서 물리적으로 분리되는 ‘퇴근’ 없이 모두가 집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화상 회의와 컨퍼런스 콜이 시차를 고려하지 않고 하루 종일 이어지는 것이죠.
재택근무를 시행한 국내 기업의 직장인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원격으로 일하면 일을 하는지 하지 않는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일을 한 ‘티’를 내기 위해서라도 일을 더 빨리, 많이 하느라 지치고, 슬랙이나 메일도 더 자주 확인하느라 피곤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맞벌이 가정의 경우 아이까지 개학이 연기되며 집에 있으니, 돌아서면 아이 밥을 챙겨줘야 하고, 일은 일대로 하며 피로도가 높아지는 것이죠. 휴식 시간이 줄어들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개인 시간 없이 일하면 ‘번아웃’은 누구에게든 찾아올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데는 짧게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갖거나, ‘나’를 기분 좋게 하는 행동을 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집에서 홈 트레이닝을 한다거나, 맛있는 것을 먹는다거나, 새로운 것을 산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번아웃의 세 번째 이유는 일하면서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아서입니다.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고 온라인으로 ‘일’만 하다 보니 ‘지금 나만 이렇게 일하나? 남들도 다 하잖아. 나보다 더 바쁜 사람들도 많고’라고 생각하며 감정을 누르게 됩니다. 마음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한 지인들도 코로나 때문에 자유롭게 만날 수가 없고요.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해본 분들은 ‘동료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셨을 것 같아요. 회사에서 늘 마주치던 동료와 점심을 뭘 먹을지 소소하게 이야기 하거나, 아이디어에 대해 의견을 묻거나, 일 끝나고 맥주 한잔하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도요.
번아웃은 ‘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일터에서 지지그룹을 만드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요. ‘자신을 지지해주는 내 편’을 일터든, 일터가 아닌 곳에서든 꼭 만드세요. 그리고 솔직히 자신의 상태를 표현해보세요. 저 역시 솔직히 제 상황을 이야기하니 함께 일하는 분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노래를 보내주었는데요. 그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더라고요.
코로나19로 이미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고, 앞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코로나 이후에도 회사 상황은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우리의 ‘일’, 커리어에 대한 고민도 깊어질 수 있죠. 코로나19 이후 시대에 살아 남으려면, 우리는 앞으로 더 바쁘게 움직여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바쁨이 다가오기 전, 지쳐버린 여러분의 일상이 다시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을 가득 담아, 글을 마칩니다.
- 글 : 김나이 커리어 엑셀러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