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행복한 가정에서 지내는 애가
한국에서 몇 프로나 될까?
중학교 2학년 때 즈음, 친구와 위와 같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당시 우리 반에는 나를 포함하여 부모가 이혼한 가정의 비율이 어림잡아 10%는 넘었던 것 같다. 그 외에도 너무나도 엄한, 혹은 반대로 자기에게 너무나도 관심이 없는 부모님 때문에 힘들어하거나 오빠나 언니와 정말 죽일 듯이 소리 지르고 싸우느라 앙숙지간인 친구들도 많았다. 그 나이대 우리들의 대부분은 집에서 가족들과 있는 시간을 숨이 막혀 했고, 밖에서 친구와 노는 시간에 자유를 느꼈다. 영화 속 은희의 대사와 같은 의문을, 어쩌면 대부분의 친구들이 가슴에 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집은 왜 이렇게 콩가루야?'
<벌새>를 보다 보면, 비슷한 영화로 10대 소녀의 고민과 갈등을 자전적으로 풀어낸 <레이디 버드>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엄마의 애정을 바라며 '나를 사랑하는 건 알지만, 그와 별개로 나를 좋아하느냐'고 묻는 크리스틴의 모습은, 아파트 단지에서 엄마를 애타게 부르는 은희의 모습과 닮아있다. 그러나 비슷한 소재를 다뤘음에도 크리스틴보다 은희의 이야기가 더 와 닿았던 이유는, 내가 <레이드 버드>를 보고 나오면서 내뱉은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재밌고 공감은 되는데... 그래도 쟤는 캘리포니아 살잖아!"
영화 <벌새>는 1994년을 배경으로 중학교 2학년생인 은희의 이야기를 다룬다. 내가 90년대 초반에 태어난 나보다 은희는 열댓 살이 더 많고, 그래서 내가 겪은 10대의 시간대와 은희의 시간대는 완벽히 일치하지 않는다. 게다가 강남 대치동 한복판에서 살았던 은희와 달리 나는 논밭이 즐비한 경기도 소도시에서 자랐다. 그럼에도 은희의 이야기가 마치 내 이야기인 것처럼 다가왔던 것은,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여성들이 가지는 어떤 보편적인 경험과 정서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부장적인 아버지, 폭력과 짜증과 화풀이가 일상처럼 흐르는 가정, 온전히 나만을 위한 방은 존재하지 않는 집이란 공간, 누구보다 나를 깎아내리고, 힘들게 하고, 사랑하고, 나를 위해서 울기도 하는, 지긋지긋하게 벗어나고 싶고 그럼에도 사랑하는 가족이란 존재. 나를 아이가 아닌 인격체로 대해주며 세상에 대해 알려주었던 몇몇 어른들. 집 밖에서 은밀하게 차근차근 만들어나갔던 나만의 세계까지. 영화 <벌새>는 한국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대부분 겪었을 어린 시절의 기억을 끄집어내고, 그동안 다른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10대 소녀의 이야기를 영화의 중심 주제로 풀어낸다.
은희네 가정은 겉에서 보기엔 그럭저럭 괜찮아 보인다. 부모님께서 하시는 떡집은 장사가 잘되어 주말이면 다 같이 모여 돈다발을 센다. 그 덕에 대치동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고, 오빠는 상위권 대학을 노릴 정도로 공부를 잘한다. 하지만 그 속을 조금 더 세밀히 들여다보면 다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빠는 춤바람이 나서 다른 여자를 만나러 다니고, 자기가 오기 전까지는 식탁에서 숟가락도 들지 못하게 할 정도로 엄하다. 그런 아빠와 엄마는 자주 격한 부부싸움을 하고, 가끔 알 수 없는 얼굴을 한다. 공부를 잘하는 오빠는 동생이 조금만 맘에 안 들면 주먹을 휘두르고, 언니는 밤마다 몰래 애인을 방에 데려오다가 아버지한테 맞기 일쑤다.
시선을 조금 더 멀리 두면 은희네 집 밖의 사람들 또한 비슷한 사정임을 알 수 있다. 은희의 친구는 오빠한테 맞아 얼굴에 피멍이 든 채 엄마·아빠가 이혼한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운동권인 영지 선생님은 이런저런 일을 겪고 오랜 시간 학교를 휴학 중이다. 철거 위기에 놓인 판자촌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투쟁 중이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고 살았지만 돌아보면 90년대는 가정도, 학교도, 국가도 폭력적이고 강압적이었던 시절이었다. 거기에 더해 IMF,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와 같은 사건들은 개인적으로나 국민적으로나 사람들의 마음 속에 큰 트라우마를 남겼다.
날라리로 반에서 찍혀 받는 놀림과 따돌림, 오빠에게 일상적으로 당하는 폭력, 반복되는 부모님의 다툼, 일상적으로 느끼는 부모님의 무심함은 당연한 듯 당연하지 않게 은희의 주변을 맴돈다. 성수대교 붕괴라는 사회적인 사건은 영지 선생님의 사망이라는 개인적인 사건으로 치환되어 은희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다. 그리고 뒤늦게 소파 아래서 발견한 깨어진 전등 갓의 유리처럼, 금방 사라진 줄 알았던 상처의 조각들은 은희의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 남는다.
김보라 감독 또한 '잊을 수 없는 상처가 됐던 말들과 기억들의 조각'이 시나리오가 된 것이 <벌새>이며, 영지 선생님이 은희에게 건네는 대사가 '어른이 된 자신이 10대인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옮겨놓은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지만 은희에게 너무 몰입하거나 연민을 보내기보다는 일부러 거리를 두고 묘사하려고 했으며, 실제로 영화를 찍으며 가족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화해를 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누구나 성인이 되어 과거의 자신과 환경을 원망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조금 더 밝고 대화가 많은 가정에서 자랐다면, 가족이 내가 무엇을 하든 타박하는 게 아니라 응원해주었다면, 학교에서 그 애들이 나를 악의적으로 괴롭히지 않았다면, 나도 저 친구처럼 밝고 사람을 믿고 외향적인 사람이 되었을 텐데 하는 원망 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과거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지 않아도, 지금부터의 나를 내가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사실에 좀 더 집중하게 된다. 20대 후반이 되면서 부모님 세대가 어떻게 살아왔을지,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조금 더 이해하게 되기도 하고.
나에게는 영화 <벌새>가 이런 공통의 아픈 기억을 현실적으로 그려내는, 그리고 그 기억이 자신에게 남긴 상처를 이제는 거리를 두고 인정할 수 있게 된 은희의 성장 이야기였다. 은희의 자리에 나 자신을 두어도 어색함이 없을 정도로 동질감을 느꼈고, 그렇기에 이 영화가 오래오래 머릿속에 남았다. 김보라 감독이 영지 선생님을 만들어 과거의 은희에게 위로를 건넸듯 나도 가능하다면 과거의 이렇게 전해주고 싶다.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이 느껴졌던 일들도 돌아보면 인생의 작은 한 부분이 된다고. 세상은 여태껏 겪은 것보다 훨씬 더 넓고, 그 너머에 너를 존중하고 진심으로 대해줄 사람은 사실 아주 많다고. 그리고 영지 선생님의 편지처럼,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