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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 Sep 14. 2018

일기장처럼 쓰는 2017년 회고

이미 2018년이 시작한 지 한참이나 지났지만 (…) 늦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단 나으니 이제라도 2017년 회고를 써보려 한다. 사실 뒤늦게 회고를 쓰게 된 계기가 있는데, 회사에 다니게 된 이후로 조금은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인간이 된 것 같아서 작년을 돌아보니 생각보다 내가 엄청나게 이것저것하고 다녔더라. ‘생각보다 나 열심히 살았구나!’ 하는 생각과 ‘올해도 이걸 보고 뭐라도 좀 해야지’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졸업 후 아무 스케줄도 없이 자유로울 때처럼 많은 걸 하지는 못하겠지만, 능동적인 무언가를 할 동기부여 받을 수 있었다고 할까… 정리하다 보니 항목이 꽤 길어져서, 크게 내가 디자이너로서 공부한 것과 디자이너로서 참여한 것으로 구분했고, 각각 시간순으로 정렬했다.




공부한 것


학교에 다니는 동안은 줄곧 편집/그래픽 디자인 쪽 작업을 해왔고, 졸업할 때 즈음에야 UI/UX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학교에서 그쪽으로 배운 건 없는데 취업은 그쪽으로 하고싶고, 그래서 졸업을 하고 나서야 이곳저곳에서 UI 디자인 강의나 소모임을 찾아보고 지원하기 시작했다.


T 아카데미의 모바일 UI 실무 과정


모바일 UI 강의를 진행하는 사설학원은 많지만 2–30만원이 넘는 강의료가 부담스러웠다. 하여 무료로 강의를 진행하는 T 아카데미의 여러 수업에 강의신청을 했고, 그중에 모바일 UI 실무 과정에 합격하여 4일동안 32시간의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수업은 UI 디자인의 정의와 모바일 해상도의 차이에 대해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간단한 코딩으로 모바일 페이지를 만들어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당시의 나는 UI 디자인의 정말 기본적인 것들도 알지 못했던 상태라 4일간의 밀도 있는 수업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깊지는 않더라도 UI디자인의 처음부터 끝을 대략 경험해볼 수 있었던 게 참 좋았다.



UX Design Study (UDIS) 의 원데이 Sketch 클래스


UDIS는 각종 UI/UX 정보가 올라오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으며, 정기적/비정기적인 스터디모임도 주최하는 커뮤니티다. 당시에 나는 경험을 쌓을 겸 한 스타트업의 모바일 앱을 외주 받아 작업하고 있었는데, 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포토샵이 아닌 스케치로 작업하고 있었다. 혼자 알음알음 공부하며 작업하다 보니 항상 스케치의 기능을 100% 활용하고 있지 못하다고 느꼈고 마침 페이스북에 올라온 원데이 클래스 공지를 보고 빛의 속도로 신청했다. 수업을 통해 symbol의 개념을 처음으로 제대로 이해했고 craft, measure, zeplin을 활용하는 법도 배울 수 있었다. 이전의 외주작업에서는 symbol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수업을 들은 후 거북이 속도로 진행되던 외주작업의 파일을 싹 뜯어고치자 능률이 눈에 띄게 올라갔을 때의 감동이란…



UX Design Study (UDIS) 의 UX Adaptor 과정


스케치 원데이 클래스를 수강한 후에 UDIS에서 디자인 스탭을 모집한다는 글을 보았다. 원데이 클래스에 워낙 만족했던 터라 UDIS가 궁금해지기도 했고, 스탭이 되면 후에 진행되는 정식 클래스에도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는 말에 냉큼 지원했다. 한 번의 면접을 보고 합격한 후엔 UX 분야 입문자를 위한 강의인 UX Adaptor 에서 스탭이자 수강생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강의는 조를 짜서 어떤 분야의 서비스를 개발할 것인지 정하고, 트렌드 분석, 벤치마킹, WOM 분석, 데이터 분석 등의 데스크 리서치 방법론을 배워 실제로 실천해보는 커리큘럼이었다. 나를 제외한 스탭분들은 모두 실무에서 이미 일하고 계신 분들이었기 때문에 매주 진행되는 강의와 조언들이 하나하나 소중했다. 실제로 사용자를 찾아 인터뷰도 해보고, 사진으로만 보던 어피니티 다이어그램도 해보고, 시나리오와 주요기능을 정리해서 앱 페이지의 대략적인 스케치까지 해보는 경험은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경험이었다.



영화님과 함께한 코딩수업


동기인 친구 J와 함께, 건너 알던 사이인 영화님께 함께 코딩 수업을 들었다. 함께 Ruby랑 X-code도 깔아보고, Github나 Source tree 사용법도 배우고, 우리가 대략적인 웹사이트에 대해 스케치를 해오면 영화님이 함께 코딩을 도와주며 완성해보는 방식이었다. 아는 사람끼리 소규모로 진행되다 보니 그때그때 모르는 부분을 물어보면 세세한 답변을 받을 수 있어 좋았고 코딩에 더 능한 J랑 같이 수업을 들으면서 더 자극도 받을 수 있었다. 다만 내가 가끔 숙제도 빼먹고 정신 놓고 수업을 듣곤 해서 수업의 내용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한 점이 참 아쉽고 죄송하다… 흑흑



정효님과 함께한 코딩수업


페북을 어슬렁거리던 어느 날 정효님이 온오프믹스에 올리신 무료코딩강의 글을 보았다. 단발성 강의도 아닌데 무료로 진행된다는 점이 좋아서 신청했고 다행히 선착순 안에 들어 수업을 수강할 수 있었다. 정효님 또한 디자이너시기에 내가 원하는 코딩수업의 커리큘럼과도 잘 맞았고, 일에 관해 물어보거나 졸업을 앞둔 디자이너로서의 고민도 함께할 수 있어 더욱 좋았다. 또 수업이 끝난 이후에도 정효님이 코딩하는 디자이너로서 작업하는 모습들을 온라인으로 지켜볼 수 있던 것도 번외로 좋았던 점이다. 정효님은 코딩하는 디자이너는 이것도 할 수 있구나, 저런 게 가능하구나를 상기시켜주는 자극제 같은 분.




참여한 것


ADAA (ADOBE DESIGN ACHIEVEMENT AWARDS)


공모전 같은 것에 관심이 없던 나는 졸업하기 직전에야 ADAA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한번 넣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작업 몇 개를 출품했다. 그중에 Two Korea, One Taboo라는 책 작업이 운 좋게도 Semifinalist가 되었다. 호주에서 교환학생일 때 작업한 책인데 제시받은 과제의 주제가 Taboo였다. 남한과 북한은 비교하기 어려운 정도의 경제적/문화적 격차를 가지고 있지만, 알고 보면 후진적이고 보수적인 Taboo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로 풀어냈다.



여성 디자이너는 미녀일 필요가 없다



<디자인 평론>의 ‘미녀 디자이너’를 읽고 이를 비평하는 ‘여성디자이너는 미녀일 필요가 없다’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후에 원 글쓴이분들이 직접 댓글을 남겨주셔서 다음호 <디자인 평론>이 통째로 여성 디자이너 이슈로 꾸려졌고, 해당 글이 실리게 되었다. 홧김에 썼던 글이 갑자기 면서 갓 졸업한 학생으로서 조금 겁도 났었던 게 사실인데,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셔서 뒤늦게라도 글을 쓰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내 글도 이런 영향력을 가질 수 있고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 조금 감격했었다. 작년에 나에게 있었던 일들 중 손에 꼽을 정도로 큰 사건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여성 디자이너 강연 및 네트워킹 파티 WOOWHO



위의 글이 이슈가 되면서, 여성 그래픽 디자이너 정책 연구 모임 WOO측에서 강연 행사인 WOOWHO에 연사로 섭외해주셨다. 당시 졸업하고 아무것도 안하고 있던 상태라 강연자라는 포지션에 굉장히 부담을 느꼈는데 ‘여성 디자이너로서 조금은 더 나대도 되지 않겠나?!’ 싶은 생각에 수락했다. 행사 당일날 굉장히 떨기도 했고 발표 내용도 아쉬움이 많아서 되돌아보면 괴롭지만… WOOWHO 같은 행사에서 존경하는 분들과 함께 연단에 선 것 자체가 참 영광이었고 좋은 경험이었다. 다음에 비슷한 기회가 있다면 정말 더 열심히 준비하고 덜 긴장하리라 마음 먹었던 경험. 강연 내용이 후에 책으로도 묶여 출판되기도 했다.



타이포잔치 100 mothers 100 daughters



타이포잔치 프리비엔날레의 워크숍에 참여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 본 전시의 한 섹션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100 mothers 100 daughters는 디지털 시대의 짤방에 대해 다루는 섹션이었는데, 평소에도 워낙 좋아하던 주제라서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었다. 참여자가 굉장히 많아서 다른 참여자의 작업을 보는 재미도 있었는데, 작업하면서 모여서 리뷰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다루는 소재가 비슷한 것이 재미있었다. 우리 세대가 가지는 짤방에 대한 감상이란게 역시 닮은 구석이 있구나 하는 걸 느꼈다. 준비하시는 분들이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도록까지 두껍게 만들어서 무료로 보내주셔서 감동했다.



타이포잔치 토크


위에 참여한 100 mothers 100 daughters 참여자 중 한 명으로서 김규호님, 허민재 선생님과 함께 타이포잔치 전시장에서 토크를 진행하게 되었다. 당시 작업 중에 안 그래도 인터넷이나 짤방을 소재로 한 것들이 많아서 관련된 작업을 주제로 이야기를 진행했다. 평소에 김규호님 작업을 좋아했는데 같이 토크를 할 수 있다는 게 참 기뻤다. WOOWHO 때 보다는 조금 더 수월하게 이야기를 했던 것 같지만… 역시 발표를 하면서 부끄럽지 않으려면 작업이 탄탄해야겠다 = 작업 좀 열심히 해야겠다 는 공식을 사무치게 느꼈다.



여성기획자 컨퍼런스



테크페미에는 코딩을 가르쳐주셨던 영화님의 소개로 들어가게 되었다. 딱히 아는 사람이 없어 매일 슬랙 눈팅만 하던 중, 여성기획자 컨퍼런스 라는 행사를 기획한다고 해서 냅다 디자이너로 자원했다. 사실상 내가 테크페미로서 참여하는 최초의 행사였던 셈이다. 5명 남짓한 인원으로 행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었는데, 실무에서 활약 중인 능력 있는 분들이 일을 착착 진행해나가는 모습을 보고 또 내가 디자인으로 직접적으로 기여를 할 수 있어서 정말 보람찼다. 거의 몇 개월 동안 주기적으로 만나다 보니 테크페미분들과도 물론 가까워질 수 있었고 행사도 대성공으로 끝났다. 과정과 결과와 함께한 사람들이 전부 다 좋았던, 2017년에 참여한 일 중에 가장 뿌듯한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roject 88 참여


Fax 커뮤니티에서 진행하는 88올림픽 디자인 복원 프로젝트의 일부인 Project 88에 참여했다. Project 88은 젊은 디자이너가 서울 88올림픽의 디자인을 자유롭게 재해석하고 이를 책으로 엮는 프로젝트이다. 사실 나는 93년생이고 서울올림픽이란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막연한 일이었기 때문에 어떤 방향으로 작업을 진행할지 막막했다. 결국 제출 마감날 새벽 ‘호돌이는 귀여우니까 꼭 넣어야한다'는 최소한의 전제조건만 놓고 이것저것 작업해보다가 결과물이 나왔다. 그런 식으로 작업한 것 치곤 시각적으로 마음에 든다.



코딩야학 3기


생활코딩의 강의는 예전부터 몇 번 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항상 그게 연속성 있게 이어지질 못하고 하다가 멈춰버리곤 했다. 마침 코딩 야학이라는, 함께 스케줄에 맞추어 코딩 수업 영상을 공부해나가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하여… 사실은 코딩 야학 1기부터 3기까지 모두 다 신청했었다. 1기, 2기는 수업 하나도 못 듣고 끝나버렸지만. 그래서 3기에는 무조건 다 수강한다는 생각으로 마지막 이틀 동안 몰아서 수강을 끝냈다. 한번 밀리기 시작하니 겁먹고 안 듣다가 1, 2기를 끝내버렸는데 막상 들어보니 한 강의당 시간도 짧고 대부분이 아는 내용이라 빠르게 수강할 수 있었다. 깊이 공부한 건 아니지만 나름대로 완주 증서도 받고 두 번이나 미루던 코딩야학을 마친 거라서 괜시리 뿌듯했다.



WEB1 참여


생활코딩에서 WEB1이란 이름으로 수업을 개편하는데, 거기에 일러스트가 필요하다고 하여 작가들을 모집했다. 평소에 좋아하던 생활코딩이고, 재능기부가 아니라 일러스트에 대한 비용도 제대로 지급한다고 해서 지원했다. 일러스트 자체는 단순한 라인 드로잉이었지만 항상 보기만 하던 생활코딩의 프로젝트에 내가 작업자의 일부로서 참여한다는 게 감회가 새로웠다.



연하장 제작



몇 년 동안 한다고 말만 했던 신년연하장을 만들었다. 그것도 제작이 늦어져서 1월 말이 되어서야 발송을 하긴 했지만… 하는 김에 리소프린트도 하고 사비 들여서 주변 사람들에게 우편까지 부쳤다. 계속 별러왔던 일이라 그런지 온갖 주변인들에게 뿌리고 다녔는데, 디자인하고 인쇄하는 과정보다 오히려 주소 라벨지 뽑고 우체국에 왔다갔다하는 과정이 힘들었다. 그래도 자주 연락하지 못했던 친구들과 교환학생 때 만났던 외국 친구들한테 안부를 물을 수 있어서 좋았다. 몇몇 친구들은 인증샷까지 sns에 올려주었는데 그런 과정들까지 재미있었다.




반성할 점


영화님/정효님과의 코딩수업 때 나는 화면에 튜터분들이 보여주시는 코드를 키보드로 따라치기 바빴고 그래서 수업이 끝나면 머릿속에는 남은 게 별로 없었다. 여쭈어보면 언제나 ‘결국 혼자 만들고 싶은 무언가를 코딩으로 만들어봐야 실력이 는다’는 답변을 들었지만 계속해서 독학이나 개인 작업은 미루고 수업만 듣고 놔버리기 일쑤였다. 그 결과 지금도 코딩을 아는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닌 상태가 되었다…


취업준비 기간에 그래픽디자인과 UI 디자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이도저도 아닌 포폴을 만들어버렸다. UI 디자인 회사라면 내 편집작업물을 보고싶어하지 않을거라고 단정하고 재밌게 작업했던 것들을 다 빼버렸는데, 왜 그랬었는지 돌아보면 후회된다. 당시에 교수님이 ‘회사가 네가 급하게 만든 앱디자인 작업물을 보고 싶어 하겠냐, 원래 하던 진짜 작업물을 보고 싶어 하겠냐’고 말씀하셨는데도 고집부리면서 포트폴리오를 고치지 않았다. 아마 학부생 시절에 제대로 UI 디자인 작업을 해본 적 없다는 점에 스스로 콤플렉스를 느껴서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


몇 번의 외주를 진행했는데 내내 말하고 싶은 바를 잘 내세우지 못해서 클라이언트의 의견에 끌려다녔다. 결과적으로 내 작업물인데도 별로 보여주고 싶지 않은 디자인이 나온 경우가 많았다. 못생긴 디자인인 걸 알면서도 왜 소신 있게 말을 못 했니! 회사에 1년 정도 다닌 지금은, 그때보단 훨씬 더 내가 원하는 디자인을 밀어붙일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외주든 행사든 내 특유의 미루는 습관으로 인해서 마감일에 다다라서야 작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독촉을 듣고 나서야 파일을 전달하거나 말없이 하루 늦게 메일을 보내는 경우도 있었고.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모습이란 걸 알면서도 잘 고치지 못해서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올해는 꼭 제시간에 일을 끝내고 전달까지 완료하는 사람이 되리라. 


작년에는 시간이 많아서 그랬던 건지 모르겠는데 올해에는 정말 정말 무기력함을 떨쳐내기가 어렵다. 무리는 안 하더라도 재밌는 일 한 두개씩 꾸준히 벌리면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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