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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리옹 여행 한줄평: 난 프랑스에서는 못살겠다!

사실 리옹은 잘못이 없습니다...

by 은달

이번 주 월요일인 6월 9일은 Pentecost Monday 로, 유럽의 많은 국가들에서 공휴일이었다. 공휴일 수가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스위스 (1년에 10일이 안 됨)에서 주어지는 소중한 휴일인지라, 서둘러 계획을 세워 로잔에서 자동차로 3시간 거리인 프랑스 리옹 근교로 차를 렌트해 다녀왔다. 이번 여행은 한국에서 운전연수를 받고 온 나에게 운전 연습 + 5개월간 배운 프랑스어 연습의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는 많은 걸 한다기보다 조용한 곳에서 쉬고 싶었다. 그동안 일이 바쁘기도 했고, 지금 살고 있는 집 바로 앞에 공사판이 한창이라 너무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난 1. 찌그러진 차들과 어두운 밤길


프랑스에 도착한 첫날은 목요일 밤이었다. 리옹 근교 소도시인 Vienne 이라는 곳에 숙소가 있었다. 도착하기까지 꽤나 애를 썼는데, 퇴근 후 출발한지라 출퇴근길의 교통체증을 겪어야 했고 무엇보다 나에게 유럽에서의 첫 운전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마인드가 여유로우니 차들도 여유롭겠지 한 건 나의 착각이었다. 스위스-프랑스 경계를 넘자마자 차들이 쌩쌩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달리는 차들의 상태가 좀 이상하다. 하나같이 다 어딘가가 찌그러져 있다(...). 전형적인 프랑스 사람들이 모는 차라고 남자친구가 익숙하다는 듯이 말한다. 조금만 도로를 달려보니 무슨 소린지 알겠더라. 성한 차를 찾아보기가 정말 힘들었다. 라이트 한쪽이 나간 차량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야간 운전 시 정말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운전할 때 해가 진 상태라 사방이 너무 어두웠고, 고속도로에 가로등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초보운전자인 나로서는 긴장을 잔뜩 한 채로 차를 몰 수밖에 없었다.


고난 2. 숙소에 지속적으로 출몰한 크고 작은 벌레들


소음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우리였기에 숙소를 한적한 시골 동네의 에어비앤비로 잡았다. 다행히 숙소 주인분은 따뜻하고 좋으신 분 같았다. 숙소로 향하는 길도 고즈넉하니 예쁜 느낌이었다. 아, 드디어 좀 편안히 쉴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려는 찰나, 숙소의 문을 열었는데 뭔가 크고 날아다니는 무언가가 천장에 있는 듯했다. 산모기 같았다. 남자친구는 가끔 본 적 있다며 사람을 무는 벌레는 아니라고 했다. 별로 탐탁지는 않았지만 소리를 내거나 나에게 가까이 오지는 않았기에 무시하려 했다. 그런데 이 놈은 그냥 양반이었다. 다음 날 외출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오니 집 구석구석에 다리가 몇십 개 달린 지네 같은 벌레들이 몇 마리씩이나 포진해 있었다. 이건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남자친구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생명체란다. 겨우 처치하고 침대에 누웠는데, 벌레들이 자꾸 내 곁에 다가오는 느낌이 들어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숙소에 머무는 시간이 편안해야 하는데 오히려 불안에 떠는 시간이었다. 결국 마지막 날 근교 도시인 리옹으로 숙소를 옮겼다.



고난 3. 2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 음식


휴식이 테마인 여행이었기에 스파를 하러 숙소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작은 휴양도시에 갔다. 주로 현지인들이 휴가지로 찾는 작은 스파 타운 같은 느낌이었다. 열심히 검색해서 간 스파라 시설은 꽤 괜찮았다. 스파를 즐긴 후 늦은 저녁을 먹으러 시내를 돌아다니는데, 마을에서 지역 축제를 하는지 식당마다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한참을 돌아 겨우 찾은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고 앉아 주문을 했다. 프랑스 사람들이 느리게 일할 것을 고려하여 일부러 메인 요리와 함께 전채요리도 시켰다. 30분 후에 도착한 전채 요리. 거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엄마는 30분 기다린 것도 용하다고 했지만 여긴 유럽이니까...). 그런데 메인 요리가 주문한 지 2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엄청 대단한 걸 시킨 것도 아니었다. 햄버거와 생선구이였는데...항의하니 확인해 보겠다며 주방에 들어갔다 나온 웨이터가 '곧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한 20분이 지난 후 음식이 나왔다. 우리가 항의한 이후 주문한 것이 확실했다. 우리보다 늦게 도착한 테이블이 먼저 음식을 받는 것을 보고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구글에 레스토랑 별점을 테러했는데 답글이 달렸다. 그날 특별히 손님이 많았단다. 자기들은 로봇이 아니니 어쩔 수 없단다. 그래, 이게 바로 프랑스인들의 마인드구나... 결국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스파로 힐링된 몸과 마음을 다시 고행길로 들여놓은 느낌이었다.



이외에도 사소하게 불편한 점은 꽤 많았다. 숙소가 꽤 작았던 점, 수압이 약했던 점, 침대 크기가 작아 불편했던 점, 호텔에서 와인 오프너를 방 안에서 사용할 수 없었던 점 등.... 나중에는 이런 불편함이 어색하게 느껴지지가 않아 웃음이 나왔다. 이 정도면 거의 코미디다, 하면서 이 상황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좋은 점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리옹에서 보냈던 대부분의 시간은 꽤 즐거웠다. 예약해둔 식당에서 즐긴 3코스 저녁식사는 매우 품격 있었고, 고대 로마 유적지와 어우러진 프랑스식 건물들과 구시가지를 거니는 것도 좋았다. 규모가 있는 도시라 쇼핑하기에도 적합했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메리어트 호텔 근처에 있던 큰 공원이었다. 영국풍으로 장식된 꽃들이 곳곳에 흐드러져 있고, 울창한 나무와 잔디밭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공원 가운데는 작은 호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공원 안이 매우 깨끗했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이곳에서 하루종일 머물고 싶은 느낌이었다. 아쉽게도 원하는 만큼 공원 안에 머물지는 못했지만, 리옹에 다시 방문한다면 꼭 다시 가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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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름다웠던 리옹의 Parc de la Tete d'Or





이번 여행을 통해 배운 점이 있다. 우리에게 '너무 한적한 시골' 은 잘 맞지 않는다는 것, 숙소가 호텔이 아닐 경우 고려해야 할 요소가 더 많아진다는 것, 음식이 나오지 않으면 제때 컴플레인을 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이번 여행은 이전에 비해 즐거운 여행은 아니었지만,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 새로운 곳을 처음으로 운전해서(!) 가봤다는 점, 그리고 옮긴 숙소 앞에 정말 멋진 공원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또 경험을 쌓고 여행에 대해 배워가는 거겠지.


앞으로 프랑스 여행은 주의해서 결정하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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