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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나가면 한국인 조심해야 하는 이유?

갑자기 마주친 엄청난 꼰대에 당황했습니다

by 은달

해외생활을 하다 보면, 현지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과 교류할 기회가 종종 생긴다. 스위스는 연방 공대가 두 개나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한인 과학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처음 스위스에 왔을 땐 특별히 한국인들과 친하게 지내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유학생활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유학 초반기에는 한국인보다는 외국인 친구들을 많이 사귀려고 노력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아무래도 돈과 시간을 들여 온 유학이니만큼 현지에서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만나며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자 하는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과의 문화 차이가 어쩔 수 없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현지에 머무르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한인 사회를 찾을 가능성은 높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람은 결국 익숙한 것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내 경우 석사 시절에는 사실 같은 처지의 한국인을 만나기도 쉽지 않았지만(석사생은 거의 없고 박사과정생이 많았다), 다행히 마음 맞는 좋은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서 무난하게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현지에 취업을 하고 새로운 도시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부터 직장인 신분으로는 친구를 사귀기가 아주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타트업이라 직장 동료가 많지도 않고 그들과의 사이에 문제는 없지만 딱히 동료애가 끈끈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을 통해 친구를 사귀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현지 네트워킹 모임도 용기내어 한두 번 나가 봤다.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는 없었지만 뭔가 맞지 않는 부분이 존재했다. 사람들의 관심사는 너무도 다양했고, 같은 한국인끼리도 사실 관심사가 무척 다른데 유럽인들의 관심사는 내가 생각한 것 그 이상으로 다양했다. 그들의 관심사는 주로 운동이나 정치, 혹은 다른 특별한 취미에 대한 것들이었다. 내 경우 취미를 물어본다면 대답은 할 수 있었지만 그들만큼 진심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한국 문학 책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도 없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온 적이 많았다.


그즈음 스위스 한인 사회가 커지면서 관련 네트워킹 모임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학생 때 공부하느라 바빠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모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새 도시로 이사를 온 만큼 같은 도시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을 알고 지내면 좋을 것 같았다. 마음 맞는 사람들도 어쩌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간 스위스에 살면서 친하게 지냈던 얼마 안 되는 한국인 친구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기에, 나름의 기대와 희망을 품고 네트워킹 모임에 참여 신청을 했다.





행사 당일, 알고 지내던 다른 한인 친구와 함께 모임 장소로 향했다. 모임 당일 강연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그 전에 점심식사를 하며 네트워킹하는 일정이 먼저 예정되어 있었다. 준비된 음식을 받아 들고 빈 테이블에 가서 식사를 막 하려던 참이었다. 갑자기 중년 남성으로 보이는 두 분이 오시더니 빈 자리에 앉아도 되겠냐고 물어보셨다. 당연히 문제 없다고 했다. 한국이었으면 그분의 나이대만으로 어느 정도의 꼰대스러움이 예상 가능했겠지만(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런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것.), 이곳에서 가끔 마주쳤던 중년의 한인 과학자분들을 뵈었을 때 그런 점을 느낀 적은 없었기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두 분 중 나이가 더 많아 보이는 분이 입을 여시는데 하시는 말씀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전형적인 꼰대였던 것이다. "스위스 생활 힘들죠? 음식도 잘 안 맞고... 그래도 열심히 해야 돼요. 그리고 차갑게들 굴지 말고 서로 좀 따뜻하게 대해야 돼요. 요즘 세상은 차갑잖아요 그쵸? " 뭐, 듣기 편한 말은 아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딱히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아, 이런 꼰대식 대화 오랜만이네' 정도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해외에 오래 살면 이런 대화를 듣는 것이 사실 흔한 일은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방심한 게 문제였을까. 그분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면서(행사 참여자들은 모두 상체에 네임태그 스티커가 붙여져 있었다) 무슨 일을 하는지, 스위스에 온 지는 얼마나 됐는지 등에 대해 물으셨다. 그 자리에는 나보다 꽤나 어린 친구들도 있었는데, 그 분 바로 옆자리에 앉은 한 친구는 핸드폰을 책상에 올려놓고 있었다. 갑자기 그 분이 그 친구의 핸드폰을 쓱 가져가서 뒷면을 유심히 살펴보는 게 아닌가! 그것을 보고서는 방금 내가 뭘 본 것인지 믿을 수 없었다. 어쩜 이렇게 무례할 수 있지? 예의라는 게 없는 사람인가? 열심히 살라는 조언은 계속하시면서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이 참 어이없었다.


그렇게 그 자리가 불편해지고 있는데, 그분은 이제 내 이름을 부르셨다. 스위스에서 일한다고 하니 '오, 되게 열심히 했나 보네? 엄청 출중했나 보다 그죠? 여러분도 스위스에 살고 싶으면 이 언니처럼 해야 돼요~' 이러시는데 내가 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불편해서 참기가 힘들었다. 분명 나에 대한 칭찬이었지만 굉장히 듣기 거북한 말이었다. 내가 유학생활의 모범이 아닐뿐더러 나와 다른 타인에게 내 삶을 강요하고 싶지도 않고, 다들 저마다의 삶의 방식이 있는데 이런 식의 말을 듣는 것이 상당히 불편했다. 그러나 사실 제일 충격적인 말은 바로 그 다음에 들은 말이었다.


뭐, 유학생활도 잘 마치고, 취업도 했고, 이제 결혼만 하면 되겠네~




방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점점 사라져가는 입맛이 아예 소멸되어 버렸다. 먹은 게 올라올 지경이었다. 도대체 내가 왜 방금 처음 만난 사람한테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거지? 이 사람은 내 아버지도, 내 상사도, 그 무엇도 아닌데. 아버지한테 들었다고 해도 기분 좋은 소리는 아니었을 거다. 그런데 나에 대해 전혀 모르는 초면인 사람이 나를 무슨 시집보내야 하는 딸자식마냥 이야기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제발 남의 사생활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지 마세요.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해 침묵을 유지했다. 당연히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그분의 꼰대스러움에 경악을 금치 못했고, 나중에 우리끼리 이야기할 때 '너무나도 전형적인 꼰대 패턴이어서 놀랍지도 않더라' 는 이야기를 했다.


집에 돌아와서 다시 생각해 봤다. 다시 생각해 봐도 기분이 나빴다. 동시에 내가 꼰대 문화를 제대로 경험한 적이 별로 없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한국 회사에 잠깐 다닌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당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좋은 기억이 많았다. 요즘에는 다들 조심하는 분위기라는 친구들 말도 많이 들었던 터라 꼰대에 대해 크게 스트레스받은 적이 살면서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방심하는 사이에 갑자기 얻어터진 것이다.


누군가는 '뭐 그 정도 가지고, 난 이런 말 매일 들어' 할 수도 있겠다. 사실 한국 사회와 동떨어져 지낸 지 나름 오래되어서 잘 모른다. 꼰대 문화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점점 나아지고 있는지. 해외생활도 힘든 점을 꼽으라면 셀 수 없지만, 그래도 한 가지 견딜 만한 것은 꼰대가 없다는 거다. 적어도 나이를 이유로 젊은이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잊었던 것 같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걸. 사실 내가 떠나온 나라에는 아직 아주 많을 수도 있다는 걸. 아니길 바라지만.


웃긴 점은, 그 사람의 언행으로 인해 지금 나의 삶에 새삼 감사하게 됐다는 거다. 이런 사람을 상사로 두지 않고 있다는 것에 대한 깊고도 깊은 감사. 이런 사람이 회사에 한 명도 없다는 것에 대한 애절한 감사. 어쩌면 그 사람만큼이나 꼰대일 수도 있는 우리 아빠와 멀리 떨어져 사는 바람에 불편한 말을 덜 들어도 되는 것에 대한 감사. 아빠는 가족이니 내 삶에 대해 참견할 권리가 조금은 있다고 치자. 그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하다. 제발 다시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만 한 가지 슬픈 것은, 이 사람 때문에 한인 네트워크에 쉽게 참여하기 망설여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해외 나가면 한국인 조심하라' 는 말은 항상 들어왔고, 나는 그 말에 반박하고 싶었다. 내 터키인 직장 동료들에게 이것에 대해 얘기하면 깜짝 놀란다. 그들은 그들끼리 정말 끈끈하다. 중국인들도 자기들끼리 똘똘 뭉친다. '현지 생활에 적응하려면 현지인 친구들을 사귀어야지'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해외생활을 하다 보면 현지인 친구들만 사귀어서 해결되지 않는 부분도 많다. 모국어를 쓸 수 있는 유일한 소통 창구가 같은 국적의 사람들끼리의 모임이다. 나도 내 직장 동료들처럼 좋은 한국인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함께 헤쳐나갈 수 있는 모임을 꿈꿨다.


물론 좋은 한국인들도 많다. 절대 이 사람을 기준으로 모두를 일반화하고 싶지는 않다. 마음 맞는 한인들과의 교류에 대한 관심은 항상 있다. 그저 경계심을 다시금 높이게 되었을 뿐이다. 다행히 난 그 사람과 아무 연관이 없기에 다시 마주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가 각자의 삶을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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