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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오세 Nov 26. 2024

그렇게 애써서 마음이 조금 남으면


첫 프로젝트 같았던 두 번째 프로젝트가 정말로 끝이 났다.


지지난 주 목요일, 작업했던 공간에서 손님들을 맞이했다. 누군가에게 내가 꾸린 공간을 보여준다는 것이 참 어렵더라. 내 눈에도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이 보이는데 남들에게는 얼마나 더 그럴까. 간절한 마음으로 매달렸던 것과는 별개로 아직은 내가 너무 부족해서, 더 성장한 다음에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리고 어떤 분들을 초대해야 할지 고민이 많아서 그냥 아무도 초대하지 말까, 하루 종일 공간에서 나 혼자 시간을 보낼까 싶기도 했다. 작업이 다 끝난 후 혼자서 온전히 공간을 느낄 시간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며칠을 골머리를 앓다 그간 나를 응원해 주시고 지켜봐 주신 분들께 초대 연락을 드렸다. 작은 공간이기에 추리고 추려 일곱 분께 연락을 드렸다.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용기 내어 연락드린 마지막 손님까지 그렇게 총 여덟 분을 초대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저의 느린 행보를 부디 지켜봐 주십시오 하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열다섯 분이 공간을 찾아주셨다.


첫 타임의 초대 손님들 앞에 서서 잔뜩 얼었다. 무슨 이야기를 해드려야 할까 양손을 꼭 잡아 모으고 고민했다. 버벅거리며 어떤 생각으로 이 공간을 꾸렸는지 이야기를 시작했다. 인경이 잔뜩 긴장한 나를 지켜보다 시의적절하게 말을 거들어 주었다. 그렇게 인경의 도움을 받아 손님들을 맞이할수록 긴장이 풀려 점차 말이 길어졌다.


어떤 마음으로 랜턴을 구매했는지. 사물에 대한 내 생각이 어떻게 단단해지고 있는지 이야기를 하고. 하고자 했으나 실현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하고. 프로젝트를 하며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마지막까지 초대를 고민했던 '마지막 손님'을 맞이했다. 초대 손님들 중 비교적 친분이 적고 공간과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 그분이 공간에 들어서시는 순간 온몸이 뻣뻣해졌다. 교수님 앞에서 과제를 검사받는 듯한 기분이었다. 마지막 손님은 예쁜 쇼핑백에 담긴 선물을 내 품에 안겨주시고는 구석구석 공간을 살피었다. 모든 가구들을 다 열어보며 꼼꼼하게 공간을 둘러보셨다. 약간의 부끄러움, 약간의 두려움, 약간의 긴장을 안고 그분의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다녔다. 바쁘실 텐데 시간 내어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부족하죠- 아쉬움이 많지만 꼭 들러주셨으면 했는데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주체하지 못할 말들을 쏟아냈다.


쫑쫑거리며 따라다니는 내쪽으로 손님이 빙글 돌아 멈춰 섰다. 그리고 씩 웃으며 말씀하셨다.


-고민 많이 했겠네요.


참 이상하지. 손님이 툭 던지신 그 한마디에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어색하게 웃으며 애써 눈물을 참았다. 그런데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손님의 다음 이야기에 나는 속절없는 눈물을 쏟고 말았다.


-정말 괴롭고 외로웠겠어. 파고들고 또 파고드느라.



의자에 앉아 빈 공간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지난 가을밤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제대로 된 공간 작업으로는 나의 처음이었던 곳. 처음이라는 이름 앞에서 그 작은 공간이 얼마나 거대하게 느껴졌었는지. 나를 의심하고 또 의심하던 참으로 외로운 날들이었다. 최선을 다했다지만 나의 최선은 어찌 이리도 초라한 것인지. 가슴에서 울컥울컥 올라오는 불안이 목구멍 위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꾹꾹 누르며 못을 박고, 집기를 고르고, 카펫을 깔았던 나의 처음. 그렇게 괴로우면서도 조금씩 채워지는 공간을 볼 때면 참 애틋하고 어딘가 간지러운 기분이 들었던 나의 처음. 그 하릴없는 시간들이 순간 나를 덮쳤다.


멈추지 않는 눈물을 티슈로 부지런히 찍어 눌렀다. 벌게진 얼굴로 손님과 인경 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지막 손님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주셨다. 일본에서는 빈티지 기물들로 공간을 꾸릴 때에는 물건을 찾고, 고르고, 기다리는 시간까지 작업의 일부로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프로젝트 기간을 1년 이상으로 잡는다는 이야기. 학교는 현장과 가장 먼 이야기를 논한다는 이야기. 그래서 결국 우리는 현장에서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와 인경에게 너무나 귀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한참 말씀을 듣다,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부분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프로젝트 마감일이 지나면 내 손을 떠나 보내야 하는, 공간을 대하는 마음에 대해서. 어디까지 파고 들어가야 할지, 그 보이지 않는 선에 대해서. 내가 공간에서 마음과 손을 떼야하는 그 시점에 대해서. 마지막 손님은 가만히 이야기를 들으시다가 말씀하셨다.


-어디에서 내려놓을 것인가 하는 것이 가장 어렵죠. 그건 최고의 자해지.


아 그러게. 그 괴로운 순간들은 자해에 가까웠구나. 그래, 정말 적절한 비유다. 나는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인경의 눈물보가 터졌다. 인경은 그간 나의 괴로움이 자해에 가까운 것인지 알아채지 못해서, 함께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참 착한 사람이네, 하고 생각했다. 나는 인경이 없었다면 이 일을 온전히 끝내지 못했을 것이다. 인경은 선배로서, 동료로서, 친구로서 불안에 떠는 내 곁을 지켜주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더라도, 나를 믿어주는 누군가에게 기대어 어떤 시간을 버틸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나의 괴로움을 나누지 못해서 미안하다니. 착한 그녀가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것을 보고는 내 눈물이 쏙 들어갔다. 그녀가 울어서 일면 다행이기도 했다. 그러지 않았으면 손님을 모셔두고 우리 둘이 계속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을 테니.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한동안은 마지막 손님과의 대화를 곱씹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찼다. 누군가는 뭐 대단한 일 했다고 이렇게까지 감성에 젖느냐고 이기죽거릴지도 모르겠다. 길을 걸을 때면. 지하철을 탈 때면. 틈이 날 때면 그때 왜 그리 눈물이 났을까 생각했다. 인정받은 것 같아서일 수도 있겠다. 누군가가 내가 고생한 것을 알아주어서일 수도 있고. 처음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호들갑을 떨었던 기억이 미화되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었지만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을, 손님의 입을 빌려 비로소 나에게 전했기 때문이겠지. 내가 미처 안아주지 못했던 지난날들의 나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겠지. 남에게는 하지 못할 가혹한 말들을 나에게는 참 쉽게 했더랬다. 나는 나를 상처 입히는 데 아주 도가 튼 사람이었다.


작업을 하는 매일 밤, 내일은 더 나은 무언가를 할 수 있길 바라며 간신히 잠을 청했다. 하지만 다음 날도 나는 여전히 최선이 초라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나는 매일매일 초라한 사람이었다. 잘 해내고 싶은 거창한 마음을 가진 참 초라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매일밤 꾸깃하게 접힌 마음은 아침이 되어도 잘 펴지지 않아 퍽 나를 힘겹게 했다. 꺼끌 거리는 입으로 아침밥을 씹었다. 나는 왜 그 수많은 순간들 속에서 나에게 아주 사소한 따뜻함조차 건네지 못했을까. 스스로에게 조금은 더 친절해도 됐지 않았을까. 마지막 손님을 만난 목요일에도, 그날 이후에도 울컥 차오르는 눈물에는 이리도 구질하고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시작도 하기 전인데 이 일이 끝나면 다음에 또 일이 있을까? 걱정한다. 걱정을 사서 하는 성격이라는 걸 알기는 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이 정도면 병이다, 병. 그 와중에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번 일은 주어진 시간이 매우 짧아서 걱정할 틈도 없을 예정이다. 혼이 빠질 정도로 바빠야만 스스로 상처 입히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참 우습지만. 이번에는 불안함을, 막막함을, 초라함을 벗 삼아볼까. 그 쉽지 않은 걸 한번 해보도록 할까. 그렇게 애써서 마음이 조금 남으면 그 마음을 나한테 줘볼까. 괜찮을 거야, 할 수 있을 거야, 어떻게든 해낼 수 있을 거야. 이렇게 온갖 말랑하고 보드라운 말을 그러모아 나에게 안겨주는 것부터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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