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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오세 Dec 16. 2024

[0] 우리 멋지게 해내보자고요


*실측 전날의 기록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았다. 아주 작은 오두막을 짓는다.


소영님과 북덕방에서 글을 쓰고 있을 때 확정 연락을 받았다. 기쁨과 걱정이 동시에 밀려왔다. 하지만 우선 기쁨을 만끽했다. 소영님은 내가 새 일을 맡게 된 것이 자신의 일인 양 기뻐해 주었다. 


사실 이미 기획 회의는 진행되었었다. Y님을 만나 함께 기획안을 만들었다. 11월 22일 기획회의를 하고, 25일에는 I 목수님을 만나 뵈러 동두천에도 다녀왔었다. 목수님의 차를 타고 동두천에 있는 오두막같이 생긴 친구들은 다 둘러봤던 것 같다. 



Y 님은 혹여 프로젝트가 진행되지 않더라도 기획에 참여했던 부분에 대한 사례는 반드시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진행되지 않더라도 괜찮다, 이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었다, 사례하신다잖아! 돈 벌잖아! 하고 생각했지만 확정 연락을 받기까지 도통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다. 


기획 회의 때 제안한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나, 이게 실현이 가능한가. 몇 날 며칠은 그 생각뿐이었다. 기회가 온다면 정말 최선을 다해야지. 얼굴 모를 누군가에게 작은 쉼을 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지. 무지하게 상업적인 공간이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진심이라는 것은 전해지니까. 그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또다시 해보지 않은 것을 하게 될 테니 겁도 났지만 그래도 꼭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기를 바랐다. 종교는 없지만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빌었다. 다짐하고 기도하며 긴 주말을 보냈다. 


26일 오후 북덕방, 소영님의 곁에서 Y님의 전화를 받았다. 언제나 기분 좋은 그녀의 목소리가 기분 좋은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녀는 나에게 전반적인 이야기를 전하고는 '우리 멋지게 해내보자고요.'라고 말했다. 그 말이 참 좋았다. 나에게 일을 '줘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곁에서 우리의 일을 당신과 함께 하겠다.'라는 말 같아서. 팀이 없는 나는 일을 하는 동안 곧잘 막막함을 마주하게 될 텐데. 그녀가 있기에 헤매다가도 또다시 길을 찾을 수 있겠구나 싶어서.  


 I 목수님께 바로 전화를 걸어 기쁜 소식을 전해드렸다. 

'잘 됐다. 정말 열심히 잘해봐라. 잘할 수 있을 거야. 도와줄게.' 

익존이에게도, 인경에게도 소식을 전했다. 모두가 기뻐했다. 


누군가의 기쁜 일에 함께 기뻐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감히 이렇게 대단한 사랑을 받고 있다. 



/



팝업이 진행될 곳의 사정상 12월 6일에는 목공 작업이 끝나야만 했다. 기쁨도 잠시, 27일부터 유튜브를 보며 더듬더듬 스케치업으로 도안을 만들고, 곧바로 인테리어 목수님 섭외를 시작했다. 이틀간 20여 군데에서 견적 상담을 받았다. 금액도 일정도 천차만별이었다. 비용이 더 들더라도 안전이 최우선이었기에 꼼꼼하게 상담을 받았다. 하지만 일정과 비용, 신뢰가 가는 태도. 이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목수님은 없었다. 다시 I 목수님께 전화를 걸었다. I 목수님께서 그렇지 않아도 수소문하고 있다며 기다려 보라고 하셨다. 곧 목수님께 전화가 왔다. 목수님 지인의 후배이신 P 실장님을 소개해 주셨다. 연락처를 받아 30일 토요일에 미팅을 했다. 




P 실장님은 자신이 공사에 참여하면 인건비가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공사 전반에 대한 설명만 해주고 팝업 장소 근처의 목수님을 소개해 주시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자재부터 시공 순서, 어려움이 예상되는 부분들까지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밀착 과외를 해주셨다. 그 값은 단지 아메리카노 한 잔이었다. 선배님의 부탁이라 고민하다가 동두천에서 서울까지 오셨다고 했다. 연신 꾸벅거리고 감사하다 인사했다. 



말씀을 들어보니 내가 생각한 대로 오두막을 짓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더라(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심지어 내가 직접 오두막을 지으려 했었다니). 명쾌하고 솔직하게 그리고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는 실장님을 보며 이분을 현장에 하루 모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을 지시하는 방법, 일의 순서를 짜고 해결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 같았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P 실장님을 시공일 첫날 스승님(감독)으로 모셨다. 제가 이렇게 머릿속에 있는 무언가를 짓는 것은 처음이라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부디 제가 아직 보지 못하는 것을 봐주시고 저를 가르쳐 주세요, 하는 마음이었다. 

실장님께서 수락하시고 자재 주문과 시공 계획을 함께해 주셨다. 


오두막이라니, 내가 생각하고도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조금씩 윤곽이 잡혀갔다. 파벽돌 하나를 주문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실장님을 계속 귀찮게 하면서 조금씩 해결해 갔다. 


/


이 글을 쓰다 만 것이 벌써 2주 전이다. 

이제는 마감일을 앞두고 있다. 

고마운 얼굴들이 흐려지고 뜨거운 감각들이 잊히기 전에 어서 글을 적고 가슴에 오래 새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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