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터에서

위로의 공간

by 차진호

“파마했어?”

“네…? 네!”

늘 혼자 오시는 단골손님이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며 물었습니다.

순간 당황했습니다. 사실 펌을 한 지 몇 달이 지나긴 했습니다. 그럼에도 손님이 파마를 했는지 물어 봐주신 것은 너무나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손님은 일주일에 서너 번 혼자 점심을 드시러 오는 분입니다. 그렇게 자주 오시지만 인사해도 대답 하지 않고 무뚝뚝한 표정을 하고 있어서 항상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럼에도 일부러 아는 척을 하려고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드시던 걸로 드릴까요?”라며 한마디라도 더 붙이면서 그분의 얼굴을 살핍니다. 그래도 대답이 없습니다. 그러던 분이 느닷없이 말을 건넸으니, 저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생각에 그저 감사했고 뭉클하기까지 했습니다.


한번은 나물 반찬에서 한 올의 머리카락이 나왔습니다. 머리에 위생 모자를 쓰고 남다른 신경을 쓰는데도 불구하고 음식에 나타나서 손님을 불쾌하게 만들었습니다. 손님은 직원을 불러서 타박을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얼른 달려가서 정말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지만, 짜증 난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때로는 음식이 너무 늦거나 주문과 다른 메뉴가 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카운터에서 긴장이 되기 시작합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할 때 불쾌함이나 불친절함을 겪은 손님의 마음을 풀어드리기 위해 어떤 말이 진정성 있는 사과로 받아들일지 고민하게 됩니다. 이해해주시기도 하지만 심하게 질책하는 분도 계십니다.


긴장되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겉절이가 너무 맛있다며 감탄을 쏟아내거나, 이 동네에서 제일 맛있다며 다소 과장된 칭찬을 해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 명이 같이 와서 서로 계산을 하겠다고 카운터 앞에서 한참을 실랑이하다가 카운터 위에 있던 꽃병을 떨어뜨린 경우도 있었습니다. 계산을 하지 않고 먼저 나서는 남편을 보며 은근슬쩍 흉을 보는 아내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특별한 반응보다는 미소로 답을 해 드립니다. 아들이 군대에서 휴가 나왔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하고, 자식이 미국에서 대학교수를 하고 있다고 자랑하는 분도 계십니다. 함께 찾아주시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안타까운 사정을 전하기도 합니다. 3년 전 가게 이전을 앞두고는 단골손님이 너무 아쉬워하며 3만 원을 제 손에 쥐어 주셨습니다. 어딜 가도 잘될 거라며 응원의 말도 해 주셨는데, 그분의 따뜻함에 마음속에 있던 많은 고민이 녹아내리는 경험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카운터에 대한 강렬한 기억이 있습니다. 스무 살이던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동네 편의점에서 일하는 알바생을 보고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방학 내내 들렀던 편의점 카운터는 늘 같은 식혜 음료를 올려놓고 가까운 거리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그녀를 볼 수 있는 행복한 곳이었습니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 카운터에 고백 쪽지를 올려놓고 도망치듯 나왔는데, 며칠 후 그곳은 건장한 남자로 알바생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찌질과 궁상의 시절, 제게 편의점 카운터는 가슴 떨리는 공간이었습니다.


5년 전 코로나바이러스가 세상을 뒤덮으면서 우리의 일상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회식문화가 줄면서 가게의 영업시간도 함께 줄어들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최대한 접촉을 줄이기 위한 장치들도 많이 생겨났습니다. 특히 키오스크는 그 이전에도 있긴 했지만, 주문과 결제를 한꺼번에 해결해 주는 편리함 때문에 많은 곳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ai의 발전으로 인해 대부분의 일에서 사람이 AI로 대체될 것이라고 합니다. 카운터 역시 언젠가는 인공지능 로봇이 있는 공간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저에게 카운터는 상품의 가격을 안내하고 돈을 받고 인사를 하는 정도의 단순한 공간이 아닙니다. 불만을 쏟아내거나 불쾌한 감정을 해소하기도 하고, 기쁘거나 안타까운 소식을 들으며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위로의 공간입니다. 짝사랑의 추억이 있는 가슴 떨리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세상이 변한다고 해도 최대한 느리게 변화를 따라가려 합니다. 자주 오시는 분에게는 안부를 묻고, 새로운 분에게는 짧은 순간이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그래서 카운터에 서 있는 오늘도 누군가에게 좋은 공간으로 기억되기 위해 큰 소리로 인사하며 손님을 맞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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