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에 깻잎은 빼주세요

음식고집

by 차진호

오랜만에 아내가 김밥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평소 아이들이 편하게 먹게 하려고 조미된 김가루로 주먹밥을 만드는 경우는 있었지만, 제대로 속 재료를 넣고 만드는 김밥은 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손맛이 좋은 아내는 햄과 마요네즈에 무친 참치, 어묵, 당근, 오이, 그리고 단무지를 넣고 김밥을 말았습니다. 제가 김밥에 깻잎 들어가는 걸 싫어해서 참치김밥임에도 깻잎을 넣지 않았고, 꼬다리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서 10줄의 김밥에서 꼬다리만 썰어 모아 한 접시 차려주었습니다. 꼬다리는 사랑입니다. 저의 취향을 존중해주는 아내의 마음에 감동하면서 살짝 불안하기도 합니다. ‘무슨 일이 있나…?’ 별일은 없이 그냥 가족을 위해 말아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다행입니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6월이면 콩국수를 시작합니다. 두부 만드는 식당을 하였기에 콩이 주재료인 콩국수는 당연히 해야 하는 메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제가 매우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콩국수를 만드는 여러 단계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콩을 삶는 과정입니다. 잘 삶아진 콩은 그냥 먹어도 훌륭한 맛입니다. 그러나 좀 과하게 삶으면 된장 같은 꾸리한 맛이 나고, 시간이 모자라면 풋내가 나서 국물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습니다. 적당하게라고 하는 건 쉽지 않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콩을 건져서 맛을 보면 콩을 갈아서 국물이 되었을 때 어떤 맛을 낼지 알 수 있습니다. 거칠지 않고 부드럽게, 고우면서도 너무 묽지 않도록, 입안에 약간 콩의 입자를 느낄 수 있게 믹서기로 갈아줍니다. 얼음을 띄우지 않습니다. 너무 차가우면 콩물의 고소함을 제대로 만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콩국수가 손님에게 나갈 때 보통은 참깨 또는 검정깨를 뿌리고 오이나 방울토마토를 고명으로 얹어 줍니다. 저는 그런 고명들을 넣지 않습니다. 특히 깨 뿌리는 것은 절대 못 하게 하였습니다. 콩 국물의 고소함을 깨소금이 방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면과 함께 콩 국물을 마실 때 식감도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금으로 간을 잘 맞춘 콩 국물에 면만 담아서 내어 주었습니다.


요즘 음식 장사에서는 마케팅을 잘 하는 것이 대박집을 만드는 첫 번째 요건이 되었습니다. 맛은 그다음입니다. SNS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식당의 모습을 찍어 올립니다. 맛있는 집보다 멋있는 집을 더 좋아합니다. 물론 멋있는 집이 맛도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좋은 음식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재료를 접목해서 메뉴를 만들기도 하고, 여러 잠재고객에게 어필하기 위해서 예쁘게 사진을 찍어서 온라인 광고를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마케팅을 못하는 식당 또는 기업들은 아무리 음식을 잘하고 열심히 일을 하더라도 고객에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과하게 홍보하는 경우가 왕왕 생깁니다.


김밥에 깻잎이 있는 것, 콩국수에 깨소금을 넣는 것은 모두 본연의 맛을 해친다고 생각합니다. 깻잎의 진한 향이 다른 재료의 맛을 느낄 수 없게 합니다. 고소함을 상징하는 콩이나 깨처럼 비슷한 맛을 같이 넣어서 원래 먹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헷갈리게 만듭니다. 김밥에 처음부터 깻잎을 넣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깻잎을 넣어서 만든 김밥으로 장사를 했고, 너무 잘 되어서 너도나도 깻잎을 넣었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애초에 없는 게 기본이 아니고 넣은 것이 기본값이 되다 보니 김밥 사 먹을 일이 생기면 이야기를 합니다. “깻잎은 빼주세요!”


어찌 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싫어하기도 하고, 그 반대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취향이 아니고 본질에 대한 것입니다. 붕어빵은 팥이 들어간 것이 맛있고, 막국수의 면은 쫄깃하지 않게 뚝뚝 끊기는 메밀로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본질을 말하려고 하다 보니 스스로 고정관념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더 좋은 경험을 하도록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나 혼자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밥에 깻잎을 빼는 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습니다.


운전 중에 라디오를 켰습니다. 때마침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장기하의 목소리로 ‘그건 니 생각이고’라는 가사가 반복해서 제 머리속을 맴돌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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