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보약

청국장

by 차진호

어린 시절 요즘같이 추워지는 계절이면 청국장을 자주 먹었습니다.

어머니가 종종 끓여주신 청국장은 꼬리한 냄새가 너무 싫었지만, 입에서 느껴지는 감칠맛과 구수함은 정말 맛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아침 식사로 청국장을 차려줄 때면 학교에서 친구들의 놀림을 받아야 했기에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청국장을 맛있게 끓이는 재료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넣거나 멸치 육수에 감자와 호박, 양파, 무 같은 야채 만으로 끓이는 청국장찌개도 괜찮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스타일은 맛있게 익은 김장김치를 넣고 고춧가루를 첨가해서 칼칼하게 만든 김치찌개 같은 청국장입니다. 이 경우에는 잘 띄워진 청국장은 당연히 중요하고, 김치의 숙성도가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최고의 한식 밥상을 차리라고 한다면 저는 먼저 제대로 숙성된 신김치를 넣고 끓인 청국장찌개를 준비할 것입니다. 반찬으로는 김장 때 땅속에 묻었던 알타리 김치, 그리고 들기름을 발라서 살짝 구워내고 맛소금으로 간을 맞춘 김구이가 있으면 좋습니다. 여기에 튀기듯이 구워낸 고등어 한 토막과 단짠, 겉바속촉이 조화된 두부조림, 반숙의 계란후라이를 더한다면 어지간한 한정식보다 훌륭한 밥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밥상은 외가댁에 갔을 때 사랑하는 손주를 위해 정성스럽게 차려주신 외할머니표 밥상이기도 합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어쩌면 운명인 것 같습니다. 청국장을 맛있게 먹을 줄만 알았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두부를 만들고 청국장을 직접 띄우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청국장과 두부를 담당하던 직원이 어느날 갑자기 그만두면서 어쩔 수 없이 제가 그 일을 맡게 된 것입니다. 그만둔 사람에 대한 원망보다는 진작에 제대로 배워놓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물어도 보고 책도 찾고 검색도 하면서 청국장에 대해서 알아갔습니다.


청국장 만드는 방법은 수백 가지가 됩니다. 지난 10여 년간 저는 이렇게 청국장을 만들었습니다. 먼저 백태 콩에 간간이 들어있는 돌을 골라내고 깨끗이 씻깁니다. 여름과 겨울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콩 한 포대(35~40kg) 불리는 데 8시간에서 10시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불린 콩은 커다란 가마솥에 넣고 삶아 줍니다. 콩을 삶을 때는 불 조절을 세심하게 해야 하고 틈틈이 콩이 눌러 붙어 타지 않도록 기다란 나무 주걱으로 저어줍니다. 8시간이 지나고 색깔이 발갛게 변한 콩을 한 숟가락 떠서 호호 불어 맛을 봅니다. 고소하고 구수하고 부드럽게 으깨진다면 불을 꺼도 됩니다. 뜸 들이는 동안 흰색 면 보자기로 덮어 준 대나무 바구니를 준비합니다. 뜰채로 삶은 콩을 바구니에 잘 나누어 담고 20분 정도 식혀 줍니다. 이 부분에서 식히지 말고 바로 따뜻한 곳으로 옮기는 게 좋다고 하는 정보도 있었지만, 조금 식혀 주는 게 제 경험엔 더 맛있는 청국장이 되었습니다. 삶은 콩을 나누어 담은 바구니는 방으로 차례차례 옮겨주고 한 뭉치의 볏짚을 바구니 속 콩 사이에 넣어줍니다. 그리고 면 보자기로 한번 더 덮어주고, 얇은 이불과 두꺼운 이불 하나씩 겹쳐서 덮어주면 발효를 위한 준비가 끝이 납니다.


이틀 정도 지나면 냄새가 퍼지기 시작합니다. 고약해서 코를 막게 되지만 냄새를 통해서 발효가 잘되었는지 맛이 좋은지 여부를 짐작할 수 있기에, 청국장 냄새가 강하고 진할수록 오히려 뿌듯해집니다. 콩을 불리기 시작한 지 4일 만에 우리가 알고 있는 청국장이 태어납니다. 짜지 않게 간 맞추기, 나무로 된 절구 방망이로 적당히 빻아주기, 그리고 완전히 식혀서 10킬로씩 담아 놓으면 포장판매, 매장의 메뉴로 나갈 준비가 끝납니다.

단골손님 중에 일본 관광객 가이드를 하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일본에서 신문기자이면서 작가로 활동 중인 사람과 함께 가게를 방문하였습니다. 전 세계의 콩 활용법을 취재하며 책을 쓰고 있었고 우리나라의 청국장 띄우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이불과 볏짚이 있는 청국장 방을 보여 주었는데, 상당히 놀라워했습니다. 일본의 낫또는 단일 균을 접종하여 발효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일본 어디를 가더라도 만드는 방식과 그 맛은 거의 같다고 합니다. 그리고 냄새가 심하지 않아서 그 자체만으로 섭취하기에 어렵지가 않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역마다 다른 환경에서 그들만의 노하우로 청국장을 띄우다 보니 공기 중에 여러 균들이 섞이게 됩니다. 그래서 집집마다 맛도 다르고 먹는 방법도 다양하게 전해져 있습니다. 개성 있고 다이나믹한 대한민국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것 같습니다.


요즘은 집에서 청국장을 거의 끓여 먹지 않습니다. 가게에서 매일 만나고 맛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가끔은 엄마표 청국장찌개가 생각이 납니다. 비결을 물어봐도 특별한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고춧가루와 김치의 맛도 다르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손맛이 다른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면역력 강화에 도움을 주고 장 건강에 좋으며 항암효과도 있어서 우리 몸에는 천연 보약의 음식이라고 합니다. 결핍을 채워주고 치유해 주는 것을 보약의 의미라고 한다면, 청국장은 저에게 보약입니다. 온전하게 탄생 과정을 함께하며 희로애락의 감정을 채워주고 외할머니와 어머니에 대한 추억으로 그리운 마음을 치유해 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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