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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y Jun 18. 2020

아스날

내가 좋아하는 축구팀 

 나는 아스날이라는 축구팀을 좋아한다. 아스날은 잉글랜드의 프리미어 리그라는 가장 최상위 리그에 속해 있는 팀이다. 객관적으로 이 팀이 이 리그에서 최고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내가 이 팀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자연스레 인생은 성적순이 아니다는 고루한 격언을 떠올리게 된다.  

 내가 이 팀에 조금 특별한 감정을 가진 것은 아마 10년쯤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니 굉장히 골수팬 같은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나는 영국의 진성 축구팬들처럼 열정적인 팬은 아니다. 그저 경기 결과를 항상 확인하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기분이 다운된다. 그리고 결과가 좋은 날엔 마치 내가 아침에 이불이라도 갠 것 같이 깔끔한 기분이 든다. 기분이 나쁘거나, 좋거나 하는 비율은 50퍼센트 정도 되는 것 같다. 요즘은 리그에서 만만한 팀이 거의 없어져서, 이기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약 5년 전까지만 해도 아스날이 이기는 일은 대한민국 대표팀이 아시아권 팀들과 경기를 해서 이기는 일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리 어렵거나 해낸다고 해서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요즘은 마치 한국 대표팀이 유럽 대표팀들과 경기를 치르듯 한 경기 한 경기 승리를 따내는 일이 마치 높은 담장을 넘어가듯 기를 써서 해내는 일이 되어버렸다. 나에게는 애석한 일이지만, 리그 수준이 전체적으로 올라가서 평균적인 축구팬들의 즐거움은 아마 향상되었을 것이다. 

 이 팀과 함께한 시간들이 벌써 오래다 보니 추억들도 켜켜이 쌓여있다. 어째서 좋지 않은 기억들이 대부분인지는 모르겠다. 챔피언스리그에서 바르셀로나에게 두드려 맞은 기억(특히 메시), 리그에서 맨시티나 맨유에게 두드려 맞은 기억들이 잔뜩 떠오른다. 하지만 반 페르시의 환상적인 골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기억도 떠오르고, 우승 시즌의 레스터 시티를 상대로 더블을 기록한 기억도 있다. 지금은 그런 색깔이 옅어졌지만 전임 감독인 벵거 감독이 있을 때의 아스날은 강팀을 만나도 수비 전술을 잘 사용하지 않고 맞불을 놓곤 했다. 그러다 수비가 박살 나며 두드려 맞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지만, 나름의 아름다운 패스 플레이로 골문을 노리는 모습이 어딘가 짠하면서도 응원하게 되는 맛이 있었다. 팀으로서의 아스날은 최근 10년간 최고 수준이라고 보기엔 부족했지만, 신기하게도 항상 스타플레이어는 있어서 그 선수들이 멱살잡이를 하고 팀을 끌고 가는 것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물론 그 선수들이 결국 팬들의 통수를 후려치고 다른 팀으로 떠날 때는 재미가 없었지만 말이다. 

 반 페르시, 나스리, 산체스, 코시엘니 등 아스날 팬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다른 팀으로 떠나간 선수들의 얼굴이 스쳐간다. 이 선수들이 원망스럽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 원망의 감정이 오히려 아스날에 대한 미련을 강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저 사람들은 떠나가지만, 나라도 이 팀을 계속 좋아해 주어야겠다 라는 느낌이랄까. 아스날에 대한 감정은 이처럼 조금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만이 내 세상!'인 가족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다. 

 아스날 팬들 중 나와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팬들이 분노하는 건, 아스날 구단이 비싼 티켓 요금을 받고, 구단주도 돈이 없는 것 같지 않은데 구단이 성장을 위해 투자할 마음이 없는 것 같을 때이다. 마치 힘든 것 같은 친구와 의리로 함께 했는데, 알고 보니 그 친구가 돈이 많고 그 사실을 나에게 숨기는 것 같을 때와 비슷한 것 같다. 하지만 요즘에는 진짜로 돈이 없는 것 같기도 해서, 그런 분노도 사실 잠잠하다. 

 최근 몇 년간은 아스날이 챔피언스리그에도 나가지 못했다. 그래서 언젠가 아스날이 챔스에 복귀해서 결승에 오르는 장면을 본다면, 우승컵을 드는 모습을 본다면 정말 가슴이 벅찰 것 같다. 살아생전 그 모습을 한 번쯤은 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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