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코끼리는 크고 쥐는 작다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코끼리를 공룡과 비교해도 코끼리가 크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쥐를 메뚜기와 비교해도 쥐가 작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코끼리는 크지도 작지도 않다. 비교대상에 따라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늘 코끼리는 크다고 말할까? 항상 사람의 기준으로 봤기 때문이다. 코끼리는 사람보다 크고 쥐는 사람보다 작으니까.
이처럼 한 가지 관점으로 사물을 보면, 우리는 편견을 갖게 된다. 편견이 생기면 사물의 전체모습을 보지 못하고 특정 관점에서 드러나는 특성만 보게 된다.
나도 어린 시절부터 생긴 편견이 있다. 편견이 생기니 사물을 우월한 것과 열등한 것으로 나누어서 봤고, 우월해 보이려고 노력했다. 열등하다 무시받는 게 무서웠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내가 가졌던 편견과 그로 인해 어떤 부작용이 있었는지 얘기해 보려고 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사이가 좋지 않으셨다. 그 시대 어머니들이 그렇듯 어머니도 우리 형제에게 아버지 욕을 하셨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못난 점을 비난하셨다. 나는 아버지처럼 못나면 비난받고 미움받게 된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비난하셨던 아버지의 특성들.
1. 아버지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했다. 약자를 핍박하고 착취했다는 게 아니다. 그저 강자에게는 화내지 않으셨지만 약자에게는 쉽게 화내셨다. 아버지에게 어머니와 우리 형제는 약자였다.
아버지는 표정에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분이셨다. 표정이 좋지 않으면 밖에서 안 좋은 일이 있던 날이었고, 그런 날은 종종 어머니와 다투셨다. 밖에서 화났다고 어머니께 화풀이하시진 않았지만, 작은 일에 크게 화를 내서 싸움이 되는 식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나약함을 싫어하셨다. 남자가 사회에서 밀리는 능력부족, 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집에서 화내는 정신적 미 성숙함, 여자를 상대로 거칠게 대하는 비겁함,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비굴함. 어머니는 아버지의 이 모든 약함을 싫어하셨다.
2. 아버지는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분이었다. 쉽게 화났고, 흥분했고 거칠어졌다. 반대로 화났다가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어머니는 그게 싫으셨던 것 같다. 화난다고 기분대로 행동하는 것도 싫고, 갑자기 나빠지고 좋아지는 기분 변화도 싫어하셨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급격한 기분변화가 정신병 같다며 질색하셨다.
3. 어머니 기준에서 아버지는 늘 싸움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가족끼리 이해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작은 일에도 화내고 가족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이게 집안 특성이라며 외가는 화목하지 않느냐, 친가는 만나면 맨날 싸우지 않느냐 이게 너네 집안 내력이라고 하셨다.
어머니의 비난을 듣고 생긴 편견들
1. 어머니는 아버지의 나약함을 비난하면서 말씀하셨다. 남자는 강해야 돼. 남자는 어떤 위험도 이겨 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남자가 자신감이 있어야 가족들을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는 거야. 우리 집이 화목하지 못한 건 전부 너네 아빠 탓이야.
남자는 사회에서 눌리지 않는 능력과 배짱이 있어야 하고, 남자는 스트레스를 잘 견디고 겉으로는 언제나 다정하고, 여유로울 수 있게 정신적으로 성숙해야 하고, 약자에게 친절하고 강자에게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는 돼야 평범한 남자다. 이 정도도 못하면 남자도 아니다. 비 현실적인 남성성이 생겼다.
2. 감정조절을 못하는 남자는 제대로 된 남자가 아니다. 아버지는 세상살이가 항상 버거워 보였고, 힘들어하셨고, 늘 부정적인 감정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세상을 버거워하는 것도, 그리고 그걸 티 내는 것도 남자답지 못한 거라고 생각했다. 제대로 된 남자라면 많이 힘들어하지도, 그걸 밖으로 티 내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3. 가족끼리 화합하지 못하고 반목하는 게 집안 내력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형과 나도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형과 나는 꽤 자주 싸웠는데 어머니는 그럴 때마다 말씀하셨다. 외갓집을 생각해 봐 언제 싸우는 걸 봤니? 왜 가족끼리 사랑하지 못하고 서로 미워하고 싸워? 너네 아빠 닮아서 그래?
그렇게 혼나고 나면 나는 너무 화가 났다. 왜냐하면 둘을 같이 혼냈지만 사실 비난의 대상은 나였기 때문이다. 싸움을 시작한 건 나였다.
내가 왜 형에게 화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식으로서 모든 의무는 내가 해야 할 일이었고, 혜택은 형이 누리는 걸 이해해야 했다. 그걸 이해 못 하고 화내면 어머니는 나를 비난하셨다. 너는 왜 이렇게 애가 이기적이냐, 너는 왜 너밖에 모르냐 하시며
지금 생각해 보면 누구라도 내 입장이 되면 억울한 상황이었지만 나는 이해를 강요받았었다. 이해 못 하고 형과 싸우면 어머니께 혼나고 비난받았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내가 이기적이라 이해를 못 하는 건가? 내가 나쁜 건가? 다른 사람 같으면 이해하는 데 나만 이기적이고 나빠서 이해를 못 하는 건가? 내가 아버지를 닮아 다른 사람의 처지를 이해 못 해서 문제를 만든다고 생각했다. 내 감정이 이기적이라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면 배척받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편견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
1. 비현실적인 남성관이 생겨버렸다. 진짜남자는 배포 있고, 자신감을 느끼고, 자상하고, 감정조절도 잘하고, 당당하다고 배웠는데 나는 대체로 그렇지 못했다. 나는 늘 잘할 수 있을까 불안했다. 위축됐고, 여유가 없었다. 나에게선 자신감도 당당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이거봐 나는 자신감이 안 느껴지잖아. 나는 강하지 않아. 생각하면서도 그 속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 봐 겉으로는 자신 있는 척했다. 거칠고 체격 좋은 사람들에게도 쫄지 않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늘 두려웠다. 그들이 거칠게 나왔을 때 맞받아치지 못하고 쫄아있을까 봐. 그래서 내가 겁쟁이라는 게 세상에 드러날까 봐 두려웠다.
이런 성향은 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 능력에 비해 일이 너무 어렵다고 느껴지면 쉽게 위축되고 불안했다. 쉬운 일을 할 때는 재밌고 좋았지만 내가 일을 완벽하게 하지 못할 땐 과도하게 불안했다.
불안감 때문에 쉴 수 없었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무시당하고, 사람들에게 짓밟힐 것 같았다. 그래서 늘 단련했다. 운동해서 힘을 기르고, 공부해서 능력을 길렀다. 내가 상대보다 강해야만 불안하지 않았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더 강해져야 돼. 넌 너무 부족해. 휴식을 갖지 못했다.
그렇게 노력해도 쉬운 일보다 어려운 일이 점점 더 많아졌다. 나는 매일 최선을 다 하는데 불안감과 두려움은 줄어들지 않았다. 가장이기 때문에 수입에 더 부담을 느끼게 되고, 가족을 돌보는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느라 회복할 시간이 없이 다시 일하러 갔다. 일은 벅찼고 사람들은 더 벅찼다. 사람들에게 괜찮은 남자로 보이는 게 점점 더 어려워져 갔다.
매일이 긴장됐고, 불안했고, 힘들었다. 결국 몸이 망가져 휴직하게 됐다.
2. 감정표현을 억누르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내 마음에 불안은 가득했고, 감정의 기복도 컸다. 내 감정이 널뛰는 것도, 그게 티가 나는 것도 남들에게 보여선 안 되는 특징인 줄 알았다. 그래서 겉으로 표현하지 않게 됐다. 그걸 감정을 누르는 게 감정조절을 잘하는 거라 생각했다.
감정표현을 억누르니 마음속이 늘 엉망이었다. 겉으로는 이성적 인척 했지만 마음속은 늘 시끄러웠다. 겉과 속이 다르니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졌다. 나는 그렇게 뭔가 불편한 사람이 돼버렸다.
3. 갈등을 풀어 나가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갈등은 언제나 생기는 거고, 갈등이 생기는 거 자체는 문제가 아닌데 갈등이 드러나는 것 자체를 문제 삼게 돼버렸다. 누군가와 갈등이 생기면 전부 내 탓 같았다. 상대가 아주 조금만 불쾌해해도 하루 종일 그 장면이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갈등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상대에 대한 불만을 얘기 안 하고 속으로 꾹꾹 눌렀고, 참다 참다 터져 나올 때는 내 안에서 썩어 독성을 갖게 됐다. 날카롭게 말이 나갔다. 상대방 입장에서는 갑작스럽고 이상하게 느껴졌다.
관계를 혼자 했다. 혼자 속 썩고, 혼자 시비를 가려보고, 혼자 결정하고, 혼자 삭히고. 화가 나면 상대와 거리를 두고 혼자 화를 삭였다. 화가 가라앉으면 다시 상대를 만났다. 관계는 같이 해야 하는 건데 관계를 혼자 하고 있었다. 내가 상대에게 보여줄 수 있는 부분도, 내가 상대방을 수용할 수 있는 부분도 아주 적었다. 관계를 깊게 갖지 못하고 표면적으로 관계를 맺게 됐다.
내가 하고 싶은 말.
지금까지 좋아 보이는 면만 보여야 하고, 나빠 보이는 면은 숨겨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걸 지키려고 평생을 노력했다. 늘 이 기준을 염두에 두고 움직였고, 내가 어떻게 보였는지 생각했다. 내가 이 기준을 잘 지키면 지킬수록 나는 더 좋아 보이고 나아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강박적으로 안 좋은 면을 숨기려는 태도는 음흉해 보였고, 과도하게 좋아 보이려 한 것은 부자연스럽고, 억지스러웠다. 나쁜 면을 안 보이면, 좋아 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나쁜 면이 안 보이는 거지 좋아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나쁜 면을 숨기며 살아야 하니 내 감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겁먹고 위축된 감정을 느끼는 것도,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끼는 것도, 불만이 생기고 짜증 나는 감정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모두 다 내가 약해서 생기는 감정 같았다. 이 감정을 느끼는 걸 인정하면, 이런 나도 괜찮다고 수용하면 나는 어머니가 싫어했던 아버지처럼 될 것 같았다.
사람들에게 배척당한다고 느끼면 나는 내 나쁜 면을 더욱 깊이 숨기려고 했다. 내가 안 좋아 보여서 사람들이 나를 밀어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점점 내가 수용할 수 있는 나는 줄어들었다.
나는 나를 좋게 만드는 게 아니라 파괴하고 있었다. 내가 매일 열등한 나는 죽고 강하게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서일까. 내 건강은 무너졌다. 내 바람대로 나를 죽이고 있었다. 나는 나를 강하게 하려고 했지만 사실 약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제라도 열등한 나를 없애고 숨기는 건 그만두려고 한다. 지금도 열등한 나를 수용하려고 하면 그냥 열등한 놈이 되는 것 같아 크게 거부감 들지만 내 한계를 인정하려고 한다. 더 이상 내가 못하는 것에 집중하고 싶지 않다. 못하지 않는 척하고 싶지 않다. 어 못해. 하고 넘겨버리고 싶다.
속으로는 내가 잘하는 것도 못하는 것만큼 많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