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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고래 Nov 01. 2021

육아우울증, 엄마가 너무 어렵다

세 쌍둥이 받아주는 어린이집 찾습니다

어느 늦은 봄, 쓰레기를 버리고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낯그녀와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아주 소스라치게 놀랐다.

"누구시더라...? 분명 낯이 익은데..."

그녀의 머리는 미용실을 언제 다녀왔는지도 모르게 염색이 빠져 얼룩덜룩했고, 눈은 쾡했으며, 피부도 까칠하니 초췌해 보였다. 그렇게 한 참을 보다가 한 번 더 크게 놀랐다. 이런, 저 여자 나구나?

 

  집으로 돌아와 창 밖을 바라보는데, 햇살이 너무 좋고, 바람도 너무 좋았다. 그런데 나만 슬펐다. 살기 싫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살기 싫다는 생각까지 미쳤다. 뛰어내려버릴까? 나 죽으면 아이들은 어쩌지? 같이 죽어야 하나? 이런 마음까지 생겨 나는 결심했다. 나가야겠다. 살아야겠다. 창문을 열면 행동에 옮길까 봐 철사로 방충망을 묶어버렸다. 열리지 않도록... 지금 돌이켜보니 산후/육아 우울증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나를 가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늘 풀셋팅을 추구했고, 옷을 너무 좋아해 부업으로 옷가게도 했었다. 일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1년 365일 중 360일을 일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거울 속 그녀는 내가 아니었다. 정말 보기 안쓰럽게 말라있었고, 초라해 보였다. 엄마로서 살다 보니 자신을 잃은 그녀가 안타까웠다.

 

  불현듯 넣어놨던 수업자료를 찾아 꺼내어 붙잡고 울었다. 눈물이 났다. 그냥 갑자기 내가 보고 싶었다. 2012년 4월부터 시험관을 시작하여, 8월에 아이들이 생겨 낳고 키우며 정신을 차리니 2014년 6월이 되어있었다. 이렇게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니 정말 정신 놓고 살았나 보다. 오롯이 엄마로서 살기엔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다. 자기애가 너무 강한 사람이었다.


 짝꿍이 와 아이들 24개월이 되는 2015년 3월부터 어린이집을 보내고 나도 일을 하러 간다고 구두로 약속을 했었다. 나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미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내가 살아야 아이들이 살 수 있기에 어린이집을 보내고 나를 위한 시간을 갖는다고 말했다.


"여보, 애기들 어린이집 보낼 거야. 더 이상 집에만 있으면 안 될 거 같아"

"벌써? 24개월 돼서 보내면 안 돼? 그러기로 했잖아?"

"응 그럼 좋겠지만, 안될 거 같다. 사실 나 오늘 죽고 싶었어. 뛰어내리고 싶었다."

"..............."

"그래서 창문 묶어버렸어."

"하...."

"나 나갈래. 나 좀 살자. 짝꿍아! 나 좀 살아야겠어!"


 그 무렵 셋째 아이 산후우울증으로 아이들과 동반 자살한 기사가 났었고, 평소 행동이 빠른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짝꿍이는 너무 놀라며, 그러라고 했다. 알겠다고 했다. 괜찮냐고 물었더랬다. 네가 진짜 그렇게 힘들어하는 줄은 몰랐다고 하는 눈으로 눈물을 글썽였다. 이해해줬다. 그 마음이 닿아 나는 또 목놓아 울었다. 마음을 알아줘서 고마웠다.


 이제 어린이집을 알아보면 되는데, 정말 대학입시도 이것보다는 쉬울 것이다. 지금은 그래도 대기를 걸어놓고 순서대로 들어가지만 그때만 해도 연줄이 있음 더 잘 들어갈 수 있었다. 어린이집부터 백이 필요하다니 충격적이었다. 사실, 육아도우미를 쓰려고 했는데 우리 집은 모두 거절을 하셔서-세 쌍둥이라  힘들어서-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린이집을 알아보게 되었다.


 동네를 다 뒤져도 우리 아기들이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이미 다 찼단다. 셋이 함께 갈 수 있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 아이들 고모가 어린이집 선생님이라 여기저기 알아봐 주었지만 셋이 같이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던 것이다. 진짜 절망적이었다.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나 보다. 미친 듯이 지역 카페를 뒤지다 개원한 지 얼마 안 된 어린이집을 찾았다. 바로 전화를 걸었다. 정말 나를 위해 천사를 보내주신 줄 알았다. 원장님이 쌍둥이시란다. 오빠 분과 함께 시작하신다고 보내라고 하신다. 한 반 만들어 주신단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 저절로 나왔다. 감사합니다를 100번은 외친 거 같다.


2014. 07.08

드디어 첫 등원!

밤새 고민에 또 고민을 했다. 어린이집 보내본 엄마들은 알 것이다. 무언가 아이에게 죄짓는 듯한 불편한 마음과  빨리 해방되고 싶다는 마음이 싸운다는 것을. 밤새도록 잘하는 일인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지금이라도 안 보낸다고 말할까, 내가 너무 이기적인가? 말도 잘 못하는 아가들 보내서 무슨 일 생기면 어쩌지? 밤을 하얗게 지새웠고, 등원 차량에 태우고 뒤돌아 서며 소리를 질렀다! 야호!!!!!!!!!!!!

첫 등원하던 날 아침

등원하고 일주일에서 이주는 적응기간으로 점심을 먹고 하원을 한다. 하지만 울 꼬맹이 들은 적응 완료로 오후까지 '슬기로운 얼집생활'을 하시고 돌아오셨다. 대견했다. 마루만 엄마 찾아 삼만리 돌아다니고 아랑 누리는 신이 나서 놀았다고 했다. 어딘가 섭섭하지만 뿌듯했다. 원장 선생님과 차량 선생님 두 분이 어찌나 잘 봐주시는지 사실 나보다 낫다고 생각한 적 많다. 아이들 어린이집은 이름부터 상큼하고 신선한 "새 풀잎 어린이집"으로 전원주택에 시설을 만들어 환경이 너무 좋았다.


 시골도 찐 시골 출신인 나로서는 아이들도 흙을 밟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유아기 때 접한 자연이 인성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전원주택에서 키우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자연 속 어린이집, 유치원을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무튼  우리는 또 한 고비를 넘어갔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복 많은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구세주 같이 좋은 선생님을 또 만났다.

천방지축 세 쌍둥아! 언제나 행복이 가득하길... 이기적인 엄마지만 그래도 나한테 0번은 너희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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