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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심 Sep 16. 2021

빨대로 풀린 오해

내가 근무하는 시설에 지연(가명) 씨가 살고 있다. 그녀는 뇌병변장애와 지적장애 중복장애를 가지고 있다. 중증장애인이지만 전동 휠체어를 자유롭게 타고 다니며 다른 장애인보다 인지능력이 뛰어나다. 태어날 때부터 시설에서 자란 그녀의 마음속에는 응어리가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주변 사람들이 별 생각 없이 한 말과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조그마한 일에도 상처를 잘 받는다. 그러한 특성을 잘 알기에 시설에 근무하는 선생님들은 다른 장애인들을 대할 때보다 더 촉각을 세우고 병*씨가 원하는 건 대부분을 들어주고자 애쓰는 편이다.   

  

그러한 선생님들의 노력은 지연 씨에게는 시설장애인으로서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이며, 사회복지사인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하는 역할이다. 그러기에 그녀는 자신이 받는 모든 서비스에 대해 고마워하지 않으며, 그럴 필요성조차 느끼지 않는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리도 인간인지라 때로는 섭섭하기도 하다. 일로 만난 사이라고 해도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였으면 하는 나의 바람이 어쩌면 지나친 이상이었는지 모르겠다.     


 한번은 지연 씨가 뮤지컬을 보고 싶다고 했다. 운전이 서툰 나는 남자인 김선생님에게 운전을 부탁드렸다. 나도 따라가기로 했다. 화장실 문제도 있지만, 지연 씨는 이성에게 도움 받는 것을 꺼린다. 서로 간에 충분한 신뢰가 쌓였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지연 씨가 처음부터 이성의 도움을 거부했던 것은 아니다. 몇 년 전 시설에서 캠프를 갔을 때의 일이다. 지연 씨의 도우미로 공익 요원이 배치되었다. 바닷가 모래사장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어 공익 요원이 지연 씨를 업고 갔다. 너무 힘들었는지 그는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돼지 같은 게 무겁기만 하다’고. 

그 말에 충격 받은 지연 씨는 한동안 다이어트를 했다. 참고로 그녀의 몸무게는 39킬로그램이다. 공익 요원이 왜 그런 무례한 말을 했는지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했지만, 지연 씨의 마음에는 상처가 깊게 남았다. 지연 씨는 그 뒤로 이성의 도움을 거부했고, 장거리 여행을 갈 때면 물도 잘 마시지 않았다. 화장실을 자주 가서 도우미 선생님을 힘들게 할지도 모른다는 이유였다.      


뮤지컬이 끝나자 밤 10시가 다 되었다. 지연 씨는 갑자기 대형마트에 가고 싶다고 했다. 예정에 없는 일정이었다. 마트까지 들렀다가 시설로 돌아가면 자정이 넘을 게 뻔했다. 늦은 밤까지 운전하고 다음 날 출근해야 하는 김선생님을 생각해 내 선에서 그녀의 요구를 거절했다. 김선생님은 이왕 나왔으니 들렀다 가자며 대형마트로 향했다. 

지연 씨는 원에 돌아가서 먹을 간식들을 골랐다. 음료수와 과자, 과일로 장바구니가 가득 찼지만, 자신의 부탁을 들어준 김선생님에게 음료수 한 병 건네지 않았다. 나는 지연 씨의 그런 태도가 내심 야속했다. 마음대로 일정을 바꾸고 김선생님의 호의를 당연시하는 지연 씨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차를 타고 시설로 돌아가는 내내 불편한 심정이었다.           


“지연 씨가 선생님의 수고를 알아주는 것 같지 않아서 제가 다 속상하더라구요.”

퇴근 전에 김선생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늦게까지 고생하고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한 선생님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였다. 조금씩 쌓인 지연 씨에 대한 원망스러운 감정을 토로하고 싶었던 것도 같다. 

그간의 이야기를 들은 김선생님이 내게 해준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내가 마트에 데려다주겠다고 호의를 베푼 것이 나의 선택이었듯이 지연 씨도 나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을 선택할 수 있어요. 그게 지연 씨 권리니까 존중해줘야죠.”

그 말은 듣는 순간 낯이 뜨거워졌다. 내가 그동안 지연 씨와 나의 관계를 동등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비스를 받는 이와 주는 이. 나는 지연 씨와 나를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그 안에서 지연 씨는 언제나 받는 것에 고마워해야 하는 사람이고, 받는 것에 고마워하지 않으면 괘씸한 사람이 된다. 당연한 권리를 행사함에도 까다롭다는 눈총을 받아야 한다. 

나 또한 장애인으로 살아오면서 수없이 경험한 일이다. 자신이 크게 ‘베푼다’는 듯이 행동하는 사람들, 거기에 토를 달지 않고 따르며 그저 감사해야 하는 것이 장애인의 의무이자 도리인 것처럼 생각하는 일부 비장애인의 태도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던가. 그럼에도 나는 시설에서 만난 지연 씨를 사람 대 사람이 아닌 시혜자와 수혜자로 대했던 것이 아닐까.      


어느 날 사무실로 지연 씨가 나를 찾아왔다. 그녀는 낑낑대며 휠체어 뒷주머니에서 검은 비닐봉지를 꺼냈다. 봉지를 열어보니 빨대 한 뭉치가 들어 있었다. 음료수를 먹고 싶으니 빨대를 까달라는 의미인 줄 알았다. 그녀가 타고 있는 휠체어를 살폈지만 어디에도 음료수가 없었다. 

“왜 빨대를 가져오셨어요?”

내가 묻자 그녀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선생님도 필요할 것 같아서 챙겨왔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예전에 언제인가 라면 국물을 먹기 위해 도움을 요청하려고 기다리는 지연 씨가 내 눈에 띄었다. 그때 나는 빨대로 꼭 음료수만 먹으라는 법은 없다며 라면 국물도 빨대로 먹을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나도 종종 그렇게 마실 때가 있다고. 그 얘기를 지연 씨가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빨대를 선물 받은 날, 지연 씨에 대한 오해가 풀렸다. 표현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녀가 고마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지독하게 많은 상처를 안은 채 살아온 사람이고, 그래서 마음을 표현하는 데 너무 서툴렀을 뿐이다. 나 또한 혼자서 섭섭해 했을 뿐, 그녀에게 마음을 털어놓지 못했다.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사실도 알려주지 않았다. 이제 지연 씨는 자신을 담당하는 선생님의 생일이 되면 다른 선생님의 케이크를 사달라고 부탁해 파티를 열어주는 사람이 되었다. 

지연 씨는 나에게 있어 또 다른 선생님이다.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점이 있으면 서비스를 받는 입장에서 날카롭게 지적하고 알려준다. 그녀와의 관계를 통해 나는 시설의 다른 장애인과 나의 관계를 재점검하기도 한다. 도움이 필요한 입장에서도 누구에게 어떤 도움을 받고 싶은지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표현하는 그녀. 당당하게 살고 싶은 한 사람으로서 그녀를 열렬하게 응원한다.         


이미지 출처: https://blog.naver.com/ddmchoi/22229469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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