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허예진
작년 겨울, 초등학교 쌍둥이 아들 둘은 난생처음 가는 뷔페에 대한 기대로 들떠 있었다. 한 녀석은 가기 전날부터 아이스크림만 잔뜩 먹고 올 거라며 비장하게 말했다. 그날 예상치 못했던 일이 발생했다. 평소 뷔페에 가면 남편이 손이 불편한 나를 대신해 음식을 접시에 담아 주곤 했다. 하지만 그날은 아이들 음식 담아 주느라 바빠 미처 내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결국 한 녀석이 내가 접시에 음식을 담지 못하는 걸 눈치 채고 슬그머니 다가왔다. “엄마, 먹고 싶은 거 말해. 내가 담아줄게.” 그 순간 울컥, 속에서 뭔가 올라왔다. 도와주는 아이 얼굴엔 귀찮거나 장애 있는 엄마 돕기를 부끄러워하는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차라리 짜증이라도 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제 겨우 여덟 살 된 조그마한 손이 내 접시에 음식을 떠 주는 장면에 만감이 교차했다. 한창 도움받을 나이인 아이가 오히려 엄마 보호자 노릇이라니. 미안하고, 서글픔이 밀려왔다.
훗날 성인이 된 아이는 이날을 어떻게 기억할까? 처음 뷔페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은 날일까, 아니면 엄마를 챙기느라 먹고 싶은 걸 제대로 먹지 못한 날일까. 비록 난 장애가 있지만, 아이들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려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기에 그래도 엄마 자격은 있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오늘 불편한 엄마를 챙기느라 정작 자기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지 못하는 아이 모습에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아이들이 점점 커 갈수록 이렇게 도움받을 일이 더 많아질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어느 부분에선 내가 짐이 될 것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 남편에게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늘 긍정적인 남편은 이번에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장애 있는 엄마를 만난 것도 아이들 운명”이라며 “세상에는 꼭 비장애인 엄마만 있는 게 아니란 사실을 아이들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자식에게 늙어서 효도 받는 걸 조금 일찍 당겨 받는 것”이니 마음 편히 생각하란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선택권 없이, 태어나 보니 엄마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아이 처지를 생각해보면 억울할 것 같다. 스스로 장애를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기까지 40여 년이 걸렸다. 우리 아이들이 장애 있는 엄마를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도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하지만 다른 엄마들처럼 나 또한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란 사실을 아이들이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글은 조선일보 <일사일언>에 연재한 글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