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단쓰기클럽 240407
글을 쓸 때 가장 힘든 점은 누군가 이 글이 나라는 사람의 전부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게 아닐까 싶다. 사실 나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생각이 바뀌는 사람이고, 출근길 놓친 버스에 기분이 바닥을 쳤다가도 불어오는 바람에 실실 웃고 마는 일희일비의 대명사 같은 사람인데, 몇 자 되지도 않을 한 편의 글로 나라는 존재가 정의된다는 게 때로는 소름이 끼치곤 한다.
글로 나를 먼저 접한 사람을 현실에서 만나는 게 두려운 때가 있었다. 나의 실제가 그가 생각한 것과 너무 많이 다를까 봐. 아마도 그 무렵 나 역시 누군가에게 가졌던 나만의 기대가 그런 식으로 무너진 경험이 꽤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후론 북토크 같은 행사들을 잘 찾지 않게 되기도 했고.
반대로 나의 실체를 잘 아는 사람들이 내 글을 읽는 게 두려웠던 때도 있었다. 나는 '페르소나'라는 대표 키워드를 가진 ISFJ로서 만나는 사람에 따라 다른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현실의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 글 속의 나를 마주하고선 느낄 당혹감이 조금 두려웠던 것 같다. 내가 마치 이중인격, 혹은 다중인격처럼 보일까 봐. 그게 아니라면 겉멋 든 허세 작가로 비칠까 봐.
내가 평생 동안 쓴 글을 한데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는다면 그것이 나와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닌 것 같다. 내가 쓴 글들은 이런저런 이유들로 변화한다. 나이가 들어서, 직장이 바뀌어서, 새로운 인연이 생겨서, 어떤 책을 읽어서,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들어서, 등등. 게 중에는 글로 쓰인 변화도 있을 테지만 아마도 그렇지 않은 것이 훨씬 더 많을 테다. 이쯤 되니 글은 결국 내가 될 수 없겠다는 생각에까지 미치기도 한다.
그렇다면 굳이 나의 전부이지도 않을 이 한 편의 글에 온 마음을 쏟아야 할 이유 같은 게 있을까. 아는 에세이 작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 엄마는 내 책을 읽고서는 너한테 내가 그렇게나 나쁜 사람이냐고 비난하더라. 나는 그 책 한 권을 쓰는 내내 엄마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었는데."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도 내 글의 진심을 몰라준다면 과연 누구에게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매달려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오늘 읽단쓰기클럽에서 글 쓰는 마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든다. '글로 적힌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건 나 하나면 충분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