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단쓰기클럽 240526
요즘 내 글쓰기를 방해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최근 푹 빠져있는 시가 아닐까 싶다. 시와 시인에 대한 관심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갑작스레 내 글쓰기 인생에 찾아왔다. 나는 그들의 문장을 보며, 기발한 아름다움을 느끼다가도 여전히 난해한 거부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런 문장을 자꾸만 쓰고 싶은 것은, 그간 내가 그렇게도 경멸했던 그들의 표현법이 어떤 삶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지를 조금은 알 것 같아서이다.
요즘 시를 읽으면 머릿속에 어떤 그림들이 그려진다. 때로는 그 장면들이 하나의 프레임이 되어 영상처럼 흘러가기도 한다. 이런 감상을 갖게 하는 시는 극히 일부이지만, 요즘은 무슨 시를 읽든 이런 식의 그림을 한 장씩 그려내 보려 노력하기도 한다. 며칠 전 처음 가봤던 시 낭독 모임에서 나는 그곳에 모인 사람 수만큼의 그림을 그려냈고, 그럴수록 다른 사람들이 읽었을 때 저마다의 작품을 하나씩 가질 수 있게 만들어주는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커졌다.
덕분에 요즘 글을 쓰는 게 좀 어렵다. 사실 많이 어렵다. 시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늘 하고 싶은 말이 많았고, 그 이야기를 꺼내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다. 누가 읽어도 같은 주장에 도달하게 하고 싶었고, 그 과정에 일말의 오해도 없었으면 했다. 그래서 되도록 명료하고 간결하게, 꾸밈없이 담백하게 쓰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무리 감정적이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 글이 세상에 존재할까 하는 의문을 시가 가져다준 것 같다. 누구도 오해하지 않을 말이라는 게 있긴 할까. 내가 A라고 말했더라도 상대가 B라고 알아들었다면 그건 B이지 않을까. 사실 세상에는 이해를 가장한 오해만 가득한 건 아닐까.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느냐고 물으면, 많은 시인이 자유롭게 읽으면 된다고 답한다. 어떻게 읽든 원하는 대로 읽고 그대로 느끼면 된다고. 나는 이 말이 참 싫었다. 모든 것이 정답이라는 말은 곧 모든 것이 오답이라는 말과 같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적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언제나 내가 글을 쓰는 이유였는데, 이 빌어먹을 시인들의 난입으로 내 글쓰기 인생이 흔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