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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okie Run Apr 30. 2020

어떤 모습으로 퇴근하고 있나요?

슬퍼하며? 분노하며? 평온하게?

어느덧 사회생활 5년 차가 되었다.

돌이켜보니 지난 5년간 참 다양한 모습으로 퇴근했다.


1. 사회생활 0-2년 차, 전철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퇴근했다.

2015년은 첫 회사에서 처음으로 인턴 생활을 시작한 해다. 업무에 도움이 안 되고 계속 실수만 하니 대학교는 뭣하러 나왔냐고 자책하며 퇴근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업계에서 명성 높은 '갑 of 갑' 클라이언트와 일하면서도 눈물 한 번 안 흘려 '깡다구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앞에서 울지 않았을 뿐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답답함에 퇴근길에 전철에서, 혹은 집에 터덜터덜 걸어가면서 울었다. 혼나든 말든 내가 일을 못한다는 게 너무나도 싫은 나날들이었고, 이때는 뭣도 몰랐기에 그저 열심히 했다. 어쩌다 야근을 덜 할 수 있는 날이면 나도 보고서 잘 만들고 싶다며 주제를 정해 빈 슬라이드에 글을 끼적이고 차트를 그려보기도 했다. 이러한 나날들을 보내던 중 글로벌에서 한국 사업을 접는다는 이유로 해고 통지를 받으며 경력 2년을 채우기 전 정리 해고되었다.


2. 사회생활 2-3년 차, 전철에서 분노에 차 씩씩거리며 퇴근했다.

첫 번째 회사에서 정규직 되었다고 좋아해 봤자 2년도 못 채우고 정리 해고된 후, 두 번째 회사에 계약직으로 갔다. 팀장은 다른 팀에 있다가 새로 왔으며, 나머지 세 명의 팀원도 2, 3년 차 신입들이었다. 그중 나는 첫 번째 회사에서 많이 굴렀던 덕분인지 일을 잘하는 편이었지만, 매일같이 분노에 찬 상태로 퇴근했다. 팀에서 홍일점이었는데, 회의에서 의견 낼 때 들었던 말은 "여자여서 모르시나 본데." 접기에는 아까운 아이디어여서 설득에 설득을 해 겨우 진행하게 됐는데, 팀에서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기로 한 이유로 들었던 말은 "여자한테 약해서 ㅎ." 그 후 내가 보고서의 절반을 담당해 진행했고, 성과가 팀의 목표치를 크게 뛰어넘었는데 보고서 끝에 내 이름은 빠지고 딴 놈 이름 단독으로 클라이언트들에게 나갔다. 마치 그놈 혼자 일을 다 한 것처럼. 그것도 내 아이디어에 가장 크게 반대했던 놈의 이름이. 팀장에게 이게 무슨 경우냐고 물으니 돌아왔던 답변은 "어이쿠, 그랬나?" 그로부터 얼마 안 되어 보고서에 단독으로 이름 들어간 놈이 승진했다. 잘해보겠다고 애써 죽을 쒀봤자 계속 멍멍이한테 넘어가니 일할 맛을 잃었다. 매일같이 책상을 뒤엎고 퇴사하고 싶었지만 이력서에 한 줄을 더 넣기 위해, 그리고 월급을 벌기 위해 버티고 또 버텼다. 온갖 부당하고 불합리한 일을 겪었는데 특히 마지막 네 달은 그 모든 경험이 화룡점정을 찍었고, 목표하던 경력 1년을 채우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왔다.


3. 사회생활 4 , 새파랗게 질려 혼을 잃은 모습으로 퇴근했다.

세 번째 회사는 일 자체에는 관심 없는 사람들의 정치판임을 보고 두 달 만에 도망치듯 나왔다. 이전 글에서 많이 언급했기에 그 외 많이 적을 건 없다. 업무 퀄리티, 업무 윤리, 사람 존중. 셋 중 그 무엇 하나 지키기 어려운 곳이었고, 그런 곳은 내게 아무리 높은 연봉을 준다고 해도 가치가 없었다.


4. 사회생활 4-5년 차, 전철에서 평범한 모습으로 퇴근하는 30대가 되었다.

네 번째 회사는 첫 번째부터 세 번째 회사와는 달리 새로운 업계다. 너무 잘나지도 너무 모나지도 않은, 너무 좋지도 너무 싫지도 않은, 그럭저럭 평범한 사람들이 그럭저럭 평범하게 일하는 곳이다. 평범한 학력과 경력, 평범한 텃세, 평범한 업무량. 그 무엇 하나 평범하지 않은 게 없을 정도다.


아이가 가장 예쁜 나이는 다섯 살, 가장 미운 나이도 다섯 살이라고 하는데, 이제 나도 가장 예쁘고 미운 사회생활 5년 차인 것 같다. 회사에서 예쁜 다섯 살은 일을 잘한다고 인정받는다. 바쁘게 돌아가던 업계 출신이라 그런지 업무 효율성도 높은 편이다. 회사에서 미운 다섯 살은 이것저것 불만이 많다. 이직 시 가장 중시했던 세 가지는 성장, 업무 윤리, 그리고 사람. 이렇게 세 가지였는데, 현재 업무에서 저 세 가지와 크게 어긋나는 것은 없다. 그러면 만족하며 다닐까? 아니다. 연봉이 걸린다. 직급은 나이에 비해 높게 받은 편이고, 회사 내부를 보더라도 현 직급에서 최연소다. 다만 내게 높은 직급을 준건 그만큼 내게 기대하는 게 많다는 뜻 같은데, 왜 연봉은 나이와 연결되어 있는 것만 같지? 괜히 어깨만 무거워지고 그에 대한 보상은 미비하다 생각된다. 지금껏 내가 노력하고 쌓아왔던 것들의 가치가, 내 업무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을 못 받는 것만 같아 불만이다. 현재 수준보다는 더 받을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쉽사리 떠나지 않는다. 회사 선택 시 연봉도 고려사항에 들어갔지만 우선순위 Top 3에는 없었음을 되돌아보며, 지금 Top 3 외 다른 요소인 연봉이 걸리는 건 Top 3가 어느 정도 지켜지기에 가능한 '배부른 투정'이라며 마음을 다잡아보려 하지만 쉽지는 않다. 평범한 고민거리면서도 내게는 나름 큰 고민거리.


이렇게 요즘은 평범한 곳에서 평범하게 일을 하고 평범한 고민을 하며 퇴근길에 오른다. 이 회사에 머물러야 할지, 떠나야 할지.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을지. 주말에는 무엇을 할지.


앞으로는 어떤 모습으로 퇴근길에 오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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