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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니 Jan 18. 2024

나의 소울 푸드

소울 푸드란 말이 언제부터 유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정확한 의미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소울 푸드는 '솔 푸드'라고 쓰는 것이 맞으며 영혼의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음식 또는 영혼을 흔들 만큼 인상적인 음식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네이버 시사상식사전이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국립 국어원에서는 이 용어를 '위안음식'이라는 순화어로 명명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말 그대로 먹었을 때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며 안식을 얻게 해주는 음식이 소울 푸드이다. 보통 소울 푸드가 어릴 때부터 즐겨 먹어서 추억과 향수가 어린 음식이 많은데, 나 역시 그러하다. 나의 소울 푸드는 돼지고기 김치찌개이다. 맛내기용 다른 것을 넣으면 안 된다. 오로지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여야만 한다. 참치를 넣은 참치 김치찌개도 맛있다고 들었지만 잘 먹어 보지 않아 그 맛을 모른다.


어릴 때 아빠는 술을 많이 드셨다. 술안주로 해장용으로 엄마에게 얼큰한 찌개류를 많이 주문하셨다. 엄마는 한 숨을 푹 푹 내쉬면서도 아빠의 요구에 응하여 여러 찌개류를 만들어 주셨다. 아빠가 선호한 것은 돼지고추장찌개였는데 감자와 애호박, 돼지고기와 고추장과 다른 양념을 넣고 푹푹 끓인 찌개였는데, 그것도 엄청 맛있어 보였지만 그 음식은 언제나 아빠 전용이었다. 그것을 맛보고 싶어 하던 나와 동생에게 엄마는 덜 맵고 덜 자극적인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끓여 주셨다. 그리고 밥 한 공기가 있으면 밥은 언제나 금세 뚝딱 사라져 버렸다. 김치찌개 속 돼지고기를 놓고 쟁탈전을 벌이는 나와 동생을 위해 돼지고기는 언제나 넉넉하게 많이 넣어서 김치보다 고기가 더 많아 보인 적도 있었다. 밥 한 숟가락 떠서 돼지고기를 올리고 김치는 약간의 고명으로 얹어 먹으면 정말 밥이 입 안에서 넣자마자 없어졌다. 앞접시를 두고 따로 먹지 않던 어린 시절이라 숟가락을 부딪혀 가며 넉넉한 고기여도 한 점 더 먹으려고 싸우던 동생과 나의 모습이 생각난다.


주부가 되니 힘들이지 않고 빨리 할 수 있는 만만한 찌개는 역시 한국의 전통음식 된장찌개와 김치찌개이다. 초보주부 시절에는 김치와 물, 돼지고기만 넣으면 김치찌개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완성된 것은 김칫국도 아닌, 돼지국도 아닌 정체 모를 희한한 음식이었다. 신혼시절 그렇게 돼지김칫국을 끓인 나의 눈치를 살피며 남편은 잠시 나를 쉬게 하고 먹을만한 요리로 재탄생시켜 주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비결은 라면수프였다.


신김치로 김치찌개를 끓여야 한다는 기본 상식도 없던 내가 이제는 주부구단에 약간 못 미치는 주부 5단 정도 되어 김치찌개는 일주일에 한 번은 우리 집 식탁에 오르는 단골메뉴가 되었다. 신김치를 잘 썰어 돼지고기와 달달달 볶다가 준비한 육수를 부어 한소끔 끓여내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팽이버섯과 두부, 파까지 송송 썰어 넣으며 맛간장으로 간을 하고 감칠맛을 위해 아주 약간의 설탕을 추가하면 우리 집만의 돼지고기 김치찌개가 완성된다. 남편도 아이들도 나도 좋아하는 김치찌개다.


나의 소울 푸드에서 우리 아이들까지 이어지는 소울 푸드가 되어버린 돼지고기 김치찌개. 오늘 저녁으로 보글보글 끓여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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