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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니 Jan 24. 2024


쉼이라는 단어는 단어가 주는 실제적인 느낌도 편안함을 주듯이 느껴진다. 한 글자로 꽉 차게 들어가는 글자 자체의 모양도 사람이 어딘가에 기대어 꽉 찬 안락함을 주는 것 같다. 한자의 쉴 휴 자도 나무에 사람이 기대어 쉬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하니 사람이 어딘가에 기대어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끼는 상태가 쉼이라고 하겠다.


결혼을 하고 나서 임신, 출산, 육아를 하는 동안 온전히 나를 위한 쉼은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 아침에 눈을 떠서부터 밤에 잠이 들기 전까지 나라는 사람의 필요나 욕구보다 가족 모두를 위한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일들이 더 많으니 말이다. 아침에는 새벽기상이라 하는 미라클 모닝을 하지 않으면, 눈을 뜨자마자 아침을 준비하고 먹이고 치우고 출근하는 일상이다. 강사의 일 특성상 오전, 오후 출근으로 나뉘는 경우가 많아 틈새시간에는 틈틈이 장을 보고 집안의 물품을 점검하며 청소와 집안일을 한다. 아이들 학원 라이딩도 하며 쓰레기도 버리고 식사 준비와 아이들 공부와 여러 가지를 챙겨가며 하루가 휘몰아치게 지나가면 어느덧 밤시간이 된다. 아이들을 재우고 남는 소중한 밤시간을 쪼개어 책도 읽고, 글도 쓰는 그 시간이 쉼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지금은 방학이라 아이들과 거의 하루 온종일 붙어 있다 보니 혼자서 오롯이 쓸 수 있는 내 시간이 많이 없다. 집안 일과 육아의 시간이 구분되지 않아 혼재된 생활 중이라서 쉼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없는 까닭이다.


책을 좋아하고 즐겨 읽었지만 에너지가 소진되고 방전된 느낌이 들면 하염없이 폰만 들여다보며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며 보낸 시간들도 많았다. 그리고 그것을 쉼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쉼이 아니라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온전한 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최근에 아이들이 방학을 맞아 외할머니 집으로 10일 동안 지내다 왔다. 아이들이 없는 집은 적막하고 고요했다. 아이들이 없으니 끼니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고 남편과 둘이 먹는 식사는 햇반과 김, 계란 정도만 차린 소박하고 단출한 식사여서 식사준비에 대한 부담감이 줄었다. 또 외식도 자주 해서 내일 뭐 먹지, 뭐 해 주지 하는 걱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기분이었다. 둘이서만 생활하는 집은 크게 더러워지지 않아 일주일에 두 번씩 하는 욕실 청소도, 대 청소에서도 벗어나서 시간이 많이 늘어났다. 그래서 10일 동안 한 일은 책 읽고, 글 쓰고, 필사하고, 운동하는 시간으로 채웠다. 일어나서 오늘의 글감을 확인하고 생각도 하며, 책을 읽고 필사를 먼저 했다. 그리고 병렬독서로 스스로 정한 분량의 독서를 하고 글을 세 편 정도 매일 썼다. 상황에 따라서는 4~5편을 쓴 적도 있었다. 시간이 되면 밥을 먹고 걷기 운동을 하러 집을 나서 1시간 정도 빠른 걸음으로 걷고 들어와 샤워를 하고 또 책을 읽었다. 즐겨보던 유튜브 채널도 많고, 인스타도 많았지만 유튜브는 한, 두 프로그램 정도 보는 걸로 그쳤고 오롯이 책과 글쓰기, 운동으로 10일의 시간을 채웠다. 중간중간 만난 지인도 있었고, 식사 약속도 있었지만 주된 생활은 그런 시간들로 채워졌다. 쉼과 휴가라고 생각하면 남국과 같은 이국적인 곳에서 해먹에 누워 시원한 음료를 들이키며 책을 읽는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 이미지와 동떨어진 시간들로 10일을 보냈는데 그 시간이 나에게 많은 쉼을 가져다주었다. 책을 읽고 새로운 것으로 나를 채웠지만 잡생각이나 괴로운 생각 없으니 나를 비워내는 시간이 되었다. 글을 쓰며 생각을 하고 다양하게 생각을 쏟아내니 자유로워졌다. 걸으면서는 잡생각이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도 즐거웠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걷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10일의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이 돌아온 집은 활기차고 분주하고 소란하다. 사람 사는 집 같은 온기도 돈다. 온전한 나만의 쉼이 끝난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10일의 쉼이 달콤하고 꿈같았던 것은 일상의 활기와 분주함과 소란함이 있었기에 쉼의 참맛을 맛보았다고도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주어진 나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쉼을 누리는 시간이 다시 도래하길 꿈꿔본다. 틈새 시간을 이용해서 커피 브레이크와 같은 잠깐잠깐 맛보는 망중한의 쉼을 놓치지 않으면서 이 시간을 잘 보내보길 바라본다.


길고 긴 아이들의 겨울방학은 아직도 44일이 남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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