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살고 있어서 휴가를 갖다가도 집으로 돌아갈 때쯤이면 지인들이 우스갯소리로 농을 건넨다. 휴가 끝나고 집에 가는데 제주로 가네? 이러면서 제주에 사는 기쁨을 더하게 만든다.
제주에 살아서 좋은 점도 많지만, 그중에 좋지 않은 점을 꼽으라면 바로 배나 비행기를 이용해야지만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날씨의 제약을 많이 받는 교통수단이고 비용도 많이 들기도 해서 그 점은 아쉽다. 그래서 이동계획이 있으면 미리미리 일찍 표를 알아봐야 하고 날씨도 체크해 가며 미리 준비를 해 두어야 한다. 지난번 겨울 서울에 갈 계획이 있었는데 폭설로 모든 비행기가 결항이 되어, 바로 다음 날 비행기를 다시 예매하고 숙소와 여러 예약도 변경했었다. 그러한 어려움이 있기에 명절전후로 시댁과 친정에 다녀오고 명절에는 더더욱 표도 없고 비싸기도 해서 잘 움직이지 않는 편이다.
그런 우리를 위해서, 아니면 친정엄마의 손주사랑 때문인지 친정 엄마는 명절에 항상 우리 집으로 오신다.
오시기 전에는 미리 택배로 먹거리를 잔뜩 보내놓으셔서 음식에 대한 걱정도 덜어놓게 하신다. 그리고 가뿐하게 비행기에 올라 관광객처럼 딸네 집을 방문하신다. 오고 갈 때는 관광객모드라지만 딸네 집에 오면 현지 도민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제주로 온 지 처음 몇 해에는 관광객처럼 엄마를 모시고 여기저기 다니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 두해 지나니 막상 새롭게 갈 데가 없어지고, 사람만 많아 오히려 피곤해지기도 해서 이제는 우리 집에 오시면 도민과 같다. 아이들이 원하는 보드게임을 원 없이 함께 해 주고, 아이들과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집 근처 오름에 오르고 그리고 돌아와서 집에서 집밥을 드신다.
유명한 관광지보다 집 앞의 바다 풍경과 동네카페의 한적함을 함께 누리며 소소하게 카페 나들이도 하고, 도민이 느끼는 제주의 모습을 그대로 느끼고 즐기신다.
친정아빠가 돌아가시고, 제사도 지내지 않는 집이라 이 모든 것이 가능하겠지만 거기에는 엄마의 제주행 비행기 티켓을 끊어주는 남동생의 역할도 크다.
올해 추석에도 어김없는 엄마의 제주행. 관광지라기보다 내 새끼들이 살고 있어 더 정겨운 땅이 된 제주에서 짧지만 강렬하게 삶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는 시간이다. 아직 초등인 손주들을 보며 사춘기 직전의 손주의 궁둥이를 토닥이고 눈을 맞추며 손주들이 원하는 보드게임을 원 없이 10판이고 반복해서 해 주는 할미의 진한 사랑이 함께 한다. 또 손주들의 모든 악기 연주를 경청해서 듣는 청중이다. 리코더, 대금, 단소, 오카리나, 우쿨렐레, 피아노로 이어지는 모든 곡들을 듣고 또 들어주며 기꺼이 박수와 큰 웃음을 보내는 진심 어린 청중이다.
그 할미가, 나에게는 엄마가 육지로 돌아가는 육지행 날이면 우리 눈은 벌게지고 코는 시큰해지더라도 지금 여기서 바로 나눌 수 있는 사랑에 감격해서 이번 추석에도 제주로 오시는 친정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