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주춤, 멈칫하게 만드는 어정쩡함이 여럿 있을 것이다.
자신의 약점과 관계된 것이나 아니면 자신의 역할과 관계된 것이나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선뜻 나서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머무를 수밖에 없는 어떤 지점 말이다.
4월을 생각하면 어정쩡한 달이네 싶은 생각이 몰려온다.
새로운 시작을 새 학기와 더불어 또 알려주는 3월을 보내고, 날씨부터가 4월은 봄과 초여름 사이에 끼인 온도와, 시작과 중간의 그 어느 지점에 끼여 있는 듯하니까.
새 학기와 관련된 절찬리 판매를 알리는 쇼핑의 혜택도 3월까지이고, 새 학기의 낯섦과 신선한 기분도 3월까지이다.
5월은 계절의 여왕답게 신록의 색깔을 뽐내려 준비 중이고, 각종 지역축제와 가정의 달임을 알려주는 통장 잔고와 카드내역서를 보면 존재감을 해마다 뽐낸다.
그렇다면 중간에 끼인 4월은 중간에 끼인 달답게 학교에서는 중간고사를 실시하고, 새 학기의 설렘이 지나간 뒤 익숙함의 옷을 슬며시 입고 노곤함이 밀려온다.
기온 차도 들쑥날쑥해서 더웠다가 추웠다가를 반복하는 달도 4월이 아닐까. (최근에는 3월의 이상기후가 심해 이 부분은 4월이 면피를 하기도 한다.)
이처럼 4월은 생각할수록 어정쩡한 달이다. 오늘이 4월의 시작인 것을 생각하면 어정쩡함에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며 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보낼 것 같다.
그 와중에 재미난 것이 없을까 주위를 한 번 휙 둘러보며 말이다.
그래도 특별하고 새로울 것이 없는 4월이 어쩌면 더 좋다. 새로움을 동반한 긴장감이 없고, 활기참을 동반한 분주함과 바쁨이 없는 달이어서 그렇다.
어정쩡하지만 없어서는 안 될 4월,
어정쩡하지만 그래도 나 자체로 존재하는 나.
4월을 기대하며 기다려보는 것도 새로운 느낌이다.
그러면 더 이상의 어정쩡함이 없는 4월인 것인가.
또 이미 만개하고, 만개하기로 마음먹고 달려가는 해사한 꽃들을 보며 4월이 어정쩡하다는 것은 나의 내면의 상황이 표출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어정쩡하지만 이유가 있고
어정쩡하지만 사랑스러운 4월을,
어정쩡해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4월로 삼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