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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momo Feb 16. 2024

맛있는 탐험

  방방 할머니와 내가 주로 즐기는 놀이는 숲 속 탐험이다. 주로 먹을 것을 찾아 탐험을 한다. 숲에는 먹을 게 많다. 겨울만 빼고. 하지만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나는 겨울도 좋다. 다람쥐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도토리와 알밤을 찾는다면, 게다가 썩은 구멍 하나 없는 걸 찾는다면 보물을 찾은 거나 다름없다. 하지만 언젠가 날 위해 알밤을 주우러 갔다가 늑대 같은 짐승을 봤다는 방방 할머니 말을 들은 후론 우리의 탐험이 뜸해졌다. 내가 학교 다니느라 바빠서 그렇기도 하다. 

 봄이면 제일 먼저 진달래꽃이 핀다. 엄마는 요즘은 공기가 안 좋아서 먹으면 안 된다고 하지만 방방 할머니는 여기는 공기가 좋아 문제없다고 한다. 꽃술을 떼어내고 쪽 빨아먹으면 달콤한 맛이 들어온다. 방방 할머니가 꽃잎을 한 움큼 떼어와 꽃전을 해 준 적도 있다. 그 예쁜 떡을 먹기가 아까워 남겨 놓았더니 딱딱해져 버렸다. 방방 할머니는 먹을 수 있는 나무가 뭔지 진짜 잘 알고 있다. 내 눈에는 그냥 초록 색 풀인데 똑 꺾어서 껍질을 벗겨 주신다. 그게 찔레라고 했다. 나는 그 맛이 하도 좋아서 엄마를 주려고 한 움큼 따간 적도 있다. 엄마는 주춤하며 입에 넣어보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맛있다고 했다. 더 먹어도 된다고 하니 속이 안 좋다고 했다. 엄마는 맨날 속이 안 좋다고 한다. 

  날씨가 조금 더워졌다 싶으면 산딸기가 빨갛게 익는다. 보리수와 앵두, 오디도 먹을 수 있다. 물론 방방 할머니와 내가 가는 길을 눈치챘는지, 누군가 익은 것을 먼저 따 버릴 때도 있다. 그러면, 방방 할머니는 실망에 가득 찬 나를 위해 새로운 탐험 길을 물색해 놓으시곤 했다.

  가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곳곳에 맛있게 익은 것들이 널린다. 이런 걸 햇곡식과 햇과일이라고 한다는 걸 얼마 전에 학교에서 배웠다. 그런데 그것보다 가장 맛있는 게 있다. 방방 할머니는 별미라고 했다. 바로 메뚜기다. 방방 할머니가 옛날에 구워 먹고 튀겨먹었다는 이야기에 계속 침이 넘어가해 달라고 조르니, 정말로 메뚜기를 볶아 주셨다. 한 열두 마리는 되었다. 정말 짭조름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엄지를 안 올릴 수가 없다. 메뚜기의 맛을 알게 된 이후로 방방 할머니와 나는 오동통한 녀석으로 잡으려고 풀숲에서 모기에게 뜯겨가며 모험을 감행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여덟 살은 매일 메뚜기를 잡으러 뛰어다닐 수 없는 나이라 방방 할머니와 잡은 몇 마리의 오동통한 메뚜기는 할머니의 훼방으로 모두 풀숲에 놓아줬다. 할머니 말로는 농약을 안 치면 농사가 안 되는 시대라서 메뚜기도 농약을 먹을 수밖에 없을 거라고 했다.  

  여하튼 나는 방방 할머니가 입에 넣어주는 건 다 맛있다. 내 입맛은 그렇다. 물론 쌍둥이 동생들은 또 다른 걸 좋아한다. 같은 날 태어난 쌍둥이도 입맛이 다르다. 참 신기한 일이다. 쌍쌍이는 오이와 열무김치, 파프리카 같이 아삭한 걸 좋아하고, 둥둥이는 익힌 가지와 조린 마늘같이 물컹한 것을 좋아한다. 나는 또 그런 건 질색이다. 하지만 우리가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것도 있다. 달콤한 사탕과 초콜릿 같은. 우리는 그걸 단것이라고 부른다. 단것을 안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방방 할머니 방에는 방방 할머니와 나만이 아는 보물단지가 두 개 있다. 하나는 단것이 가득 들어간 단지, 하나는 아주 작은 장난감이나 예쁜 돌들을 모아둔 단지다. '춥파춥*'라고 적힌, 알록달록한 사탕 통에는 사람들이 방방 할머니 드시라고 준 단 것이 가득 들어있다. 단것을 많이 먹으면 이가 다 썩어 빠져 맛있는 걸 못 먹는다고 하면서, 왜 이가 없는 할머니에게 이런 걸 주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 단지에는 '과일맛 종합 젤리'라고 적힌 알록달록한 젤리와 '黑'이라고 적힌 사탕, 그리고 '홍삼'이라고 적힌 여러 가지 종류의 사탕이 섞여있다. 방방 할머니는 언제나 내 입이 심심하지 않도록 먹을 것을 입에 넣어주시는데, 먹기 좋게 자른 것들이 내 입속으로 사라지고 나면 마지막으로 이것 중 하나를 가져와 입에 쏙 넣어주신다. 물론 엄마가 알면 안 된다. 그건 여기저기 썩은 내 이 때문이었는데, 방방 할머니는 엄마가 그럴 때마다 "아이고, 개안타. 빠질 이를 와글케!" 하며 내 편을 들어주신다. 얼마 전, 상한 어금니를 치료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로는 방방 할머니도 엄마 눈치를 좀 보는 것 같긴 하다. 엄마가 없을 때만 살짝 입에 넣어주시고, 자기 전엔 꼭 "치카했소?" 하고 물어보시는 걸 보면 말이다. 

  여덟 살들은 젤리를 좋아한다. 음... 물론 여덟 살이 되기 전에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음식이지만 그건 어른들이 그렇게 만든 거나 다름없다. 아주 어릴 때부터 우리를 달래기 위해 쓴 방법이 이것이니까. 약국에 가도, 어린이집에 가도 우리가 울면 비타민을 주곤 했다. 그때부터 단 것에 길들여졌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몸이 자라고 키가 커지면서 비타민은 시시해진다. 그러면 곰젤리가 우리 앞에 나타난다. 앙증맞고 귀여운 곰이 우리 입에 들어가는 것부터가 기쁨이고, 알록달록한 색깔마다 전부 다른 맛이라는 게 놀라웠다. 엄마가 잘 사주지 않아도 이 알록달록한 것은 유치원 가방에 들어있곤 했다. 내가 아주 어릴 때는 엄마가 그걸 가방에서 꺼내 숨기는 걸 몰랐지만, 이제 엄마가 발견하기도 전에 먹어치우는 기술을 배웠다. 그런데 방방 할머니의 젤리는 뭔가 좀 다르다. 뭉툭하고 흐리멍덩한 색깔의 할머니 젤리는 말랑말랑한 곰젤리와는 달리 끈적끈적 계속 어금니에 달라붙는다. 하지만 맛은 환상적으로 달다. 물론 어금니에 붙은 젤리를 떼어내는 방법도 곧 터득했다. 첫째, 혀가 얼얼하도록 밀어내기. 둘째, 오랫동안 살살 녹여먹기. 셋째, 하나 더 먹어서 새 젤리에 달라붙게 만들기. 역시 어른들의 젤리는 먹기도 어렵다. 그래서 동생들한테 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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