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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롱 Mar 15. 2022

온전히 마음을 주는 것이 어렵다.

내 마음의 울타리를 넘어주세요.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걸까,

타지 생활과 홀로서기 기간이 길었기 때문일까,

마음을 100 주는 것이 어렵다.


일이든 투자든 사업이든 올인(All-in)이 전혀 어렵지 않은데, 누군가와 경계를 허물고 충분히 가까워지는 건 참 어렵다. 두렵다. 놀 때도 끝까지 노는 것에 익숙하고, 의리의 측면에서도 내 바운더리(Boundary)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당장 내 앞에 있는 모든 것을 던져 버리더라도 그 사람에게 달려가는 것이 가장 나답다. 그럼에도 행동과 마음은 따로 노는지 관계가 깊어지면 괜히 그 사람을 밀어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누군가가 내 마음 깊숙한 곳에 들어오는 것이 불편하다. 깊은 관계 형성이 나는 두렵다.


마음을 100 내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도 그 사람에게 달려갈 수 있어?

내 사람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고 싶다. 다만 나는 내가 그렇게나 아끼는 사람이 나를 떠날까봐, 내가 그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나를 소중히 생각하지 않을까봐 두려운 것 같다. '두렵다'고 마침표 찍어 표현하기보다 '~한 것 같다' 정도로 모호하게 마무리하는 건 이런 내 마음을 온전히 인정하기 싫어서다.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내가 주는 만큼 사랑 받고 싶은 마음, 기대감이 있다는 게 솔직히 자존심 상한다. 강인해 보이고 싶은데, 홀로 남겨져도 즐겁게 살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고 싶은데...


지난 몇 달 사이 내게 오래 보고 싶은 친구들이 생겼다.

그리고 부쩍 그들과 거리감을 두고 싶은 마음과 계속 밀착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중심을 못 잡겠다.

워낙 허물 없이 지내는 사이라 사람들이 얼마나 알고 지냈냐고 물으면 불과 5개월 정도 되었다고 말하기 민망할 때가 있다. 많이 볼 때는 일주일 내내 본 것도 같고, 가장 오래된 친구에게도 아주 오래 털어놓지 못 한 깊은 상처, 가족사까지 모두 공유한 친구들이다. 커리어 고민으로 마음이 추울 때 군말 없이 곁을 지켜준 친구들, 같은 업계 종사자로서 함께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친구들이다.


세상의 더러운 맛 충분히 본 나이에 이렇게 급속도로 가까워질 수 있다니 참 신기하고 감사하다.

그만큼 경계 없이 맨살을 맞대는 게 혹여 약점이 될까 걱정도 된다.


방어 기제?

부쩍 요즘 이 친구들을 밀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 심장을 꺼내다 못해 뒤집어 모든 면을 다 보여줬어. 이런 우리 관계가 너에게도 정말 소중하다면 내가 너를 아무리 밀어낼지라도 나를 끌어당기는 모습을 보여줘!

아주 유치한 짓이란 걸 알면서도 제어할 수 없는 나의 속마음이다. (나를 이만큼 사랑했으면 하는 '기대'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전화가 와도 일부로 받지 않고, 카톡이 와도 최대한 늦게 답장하고, 혹여 만나더라도 눈도 안 마주치고 차갑게 대한다. (관종인가?)


하루가 멀다 하고 붙어 지내다 보니 떨어져 있을 때 괜히 외로움을 느낀다. 10년 넘게 혼자 살면서 아주 오래 부재했던 '가족'의 순기능을 기억하게 된다. '혼자'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던 때에 혼자가 아니여서 불안하고 외로울 수 있음을 인지하게 되니, 나는 이게 참 싫다.


어릴 땐 가까운 친구들이 내게 말했다.

또롱이는 사랑 받고 자라서 마음을 온전히 내어줄 줄 아는구나.

나는 사랑 받은 티가 나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도 그렇게 믿었던 때가 있다.


물론 사랑 받고 자랐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 타지에서 홀로 버티면서, 어린 나이에 굳이 몰라도 되는 '채울 수 없음'과 외로움을 체화하면서 상처 받지 않는 법이라고 터득한 게 곧 남들이 내 울타리를 넘지 못 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연애를 하면서도 종종 남자친구는 우리 사이의 적당한 거리감이 서운하다고 했다. 친구나 직장 동료가 내게 바라는 것 없이 기쁘게 베풀 때는 그게 그렇게 불편해서 어떻게든 그 이상으로 보답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내가 더 마음 쓰고 노력하면 '사회 생활하면서 친구 사귀는 게 참 어렵다'는 말을 부정할 수 있는 관계들이 있는데, 나는 굳이 애쓰지 않았다.


결국 그 적당한 거리감을 누군가 깨고 내 마음 속에 파고들길 바라는 거면서...

그래서 나이 먹고 깊은 관계를 쌓는 것이 어렵다. 나도 마음을 내주지 않고, 남도 그 거리를 굳이 좁히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관계는 깊어질 수 없다. 결국 상처 받기 두려워 상처 받지 않을 만큼만 내 마음을 내주는 거, 이런 나의 비겁함을 무너뜨릴 수 있는 관계들이 절실하다. 내주는 마음의 소중함을 알고 그 마음을 예쁘게 다뤄줄 사람들, 관계의 역경도 건강하게 극복하는 경험들이 많아져서 내가 예전처럼 온전히 마음을 내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p.s. 마음의 울타리를 최대한 높이 쌓고 울타리 넘는 것의 난이도를 상향 조절하면서 나는 조금 더 어른에 가까워졌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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