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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롱 Jul 24. 2022

특이하다 vs. 특별하다

대단한 무엇이 아니어도 당신은 충분히 특별합니다.

대단한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살았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어딜 가나 항상 대다수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늘 소외 받거나 겉도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그래서 늘 대단한 무엇이 되어서 아무도 나를 무시할 수 없도록 하고 싶었다.


대학 때는 학교의 소문난 ‘파티의 여왕’이었다. 신입생들이 내 하우스 파티에 와서 “나 네 이름 들은 적 있어! 이 학교 다녔던 친구가 네 파티가 얼마나 근사하고 재밌는지 말해줬어!” 할 정도로 나는 잘 놀았다. 때문에 모두가 나의 친구가 되고 싶어 했다. 잊혀지거나 소외되는 것과는 아주 멀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해서도 튀지만 ‘일 잘하는 애’가 되고 싶었다. 코 피어싱, 대기업에서 보기 어려운 패션, 파랑 머리, 보라 머리, 탈색 머리 등 개성 있는 스타일을 자신 있게 고집하면서도 일만 잘하면 되는 것 아닌가 보란듯이 증명하고 싶었다. 처음에 나를 색안경 끼고 봐도 괜찮았다. 내 실력이 뛰어나면 그 또한 반전 매력이 될 테니까.


친한 언니가 본인이 애정하는 한 친구를 "J는 특이해. 특별해!"라고 말할 때에 이런 생각을 했다. J가 특이한 것이 아니라 특별하다고 정의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그만큼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기 때문 아닐까? 만약 그 사람이 별 볼 일 없는 학벌에, 흑수저에,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업가가 아니었어도 특별하다고 인정 받을 수 있었을까? 만약 자폐아 '우영우'가 천재 변호사가 아니었다면 특별했을까? 평범한(Ordinary) 자폐아 우영우였다면 그저 차별 받는 사회적 약자 우영우, 별난 우영우로 남지 않았을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Extraordinary Attorney Woo)


이런 생각 때문에 나는 늘 치열하게 살았나 보다. 늘 나를 특별하다고 증명해내기 위해 애썼나 보다. 그러다 문득 나는 왜 내 자체만으로 사랑 받을 수 없나 속상했다. 사실 지나간 세월을 돌이켜 보면 내가 찌질하고 힘이 없을 때도 그저 이유 없이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고등학교 친구 수영이가 그랬고, 지난 직장에서 만난 선민 언니가 그랬다. 무리에서 소외되어 외로웠던 때에 그냥 내가 좋다며 질풍노도 시기를 함께 해준 친구가 있다. 해외에서 굴러들어 온 돌이라고 모두가 나를 낙하산이라 부를 때 유일히 내게 기회를 준 언니가 있다. 어쩌면 더럽고 치사한 세상 속에 찌들어 나는 정작 중요한 것들을 잊고 살았는가 보다.


사실 우리는 특별해지기 위해 그 '무엇'을 이룰 필요도, 될 필요도 없다. 단지 우리가 특별하다고 생각해주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된다. 그러면 우리는 그 사랑을 먹고 쑥쑥 자라 특별해진다. 혹은 그저 묵묵히 내가 좋아하는 일, 가치 있다고 믿는 일,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하면 된다. 주변의 평가에 흔들릴 필요 없다. 우리를 특이하거나 특별하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무엇을 고민하고 노력하며 살아가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관심조차 없다. 이는 마치 길이를 재는데 체중계를 쓰는 것과 같다. 내가 나의 기준이 아닌 남의 기준에 맞춰 내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 받으려 하는 것은 바다에서는 엄청 빠른 거북이인 내가 토끼의 기준으로 육지에서 경주해서 느린 거북이가 되는 것과 같다.



요즘 부쩍 주변에서 꿈이 뭐냐고 묻는다. 꼬마에게만 이런 질문을 하는 줄 알았는데, 서른 넘은 성인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건 내가 인생에서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달라는 거다. 내가 가진 꿈을 내가 죽기 전에 완벽히 이룰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면 모두가 그 존재 자체로서 사랑 받고 존중 받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나 역시 그런 사회에 살아가고 싶다. 사회적으로 인정 받는 가치 기준, 예를 들자면 외모, 몸매, 졸업 대학, 연봉과 같은 기준에서 노력하고 성공해야 인정 받는 사회가 아니라 다양성의 가치를 존중하고 개개인의 장점과 가치를 충분히 발전시키고 발굴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싶다.


만약 지금 누군가 나처럼 본인의 특별함을 증명해내는 데 실패해서 좌절하고 있다면 스스로 고민해보자. 나는 바다 거북이인데 육지 토끼 속에서 경쟁 중인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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