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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J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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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elle J Jun 30. 2024

아마도 넌 나의 첫사랑

넌 감동이었어.





나는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좋아하면 대체로 한결같이 오래 좋아하는 편이다.


28년째 사소한 다툼 한 번조차 없이 함께 하고 있는 친구가 있고 가장 좋아하는 가수는 20년 넘게, 몇몇 스포츠는 14년째 꾸준히 좋아하고 있다.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어렸던 나이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중학생이 된 이후까지 총 약 8년 정도 좋아했던 아이가 있었는데 얼마 전에 뜬금없이 그 아이가 꿈에 나왔다.


특별한 꿈은 아니고 그냥 같은 초등학교 친구들 여럿과 함께 웃고 떠드는 의미 없는 꿈이지만 너무 뜬금없어서 웃기기도 했다.



첫사랑의 사전적 의미는 처음으로 느끼거나 맺은 사랑이라고 한다.


사실 첫사랑의 기준을 나이에 상관없이 어렸을 때라도 처음으로 좋아했던 사람으로 봐야 하는 건지 아니면 가장 많이 좋아했던 사람으로 봐야 하는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말 그대로 처음이니 첫사랑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가장 처음으로 꽤 오랫동안 좋아했던 아이였기에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내가 그때처럼 순수하게 누군가를 좋아할 수는 없을 테니 그 마음을 기억하기 위해 내 첫사랑에 대한 글을 써 보려고 한다.










그 아이는 소위 말하는 우리 학교의 아이돌이자 인기남이었고 학교 여학생의 반 이상이 좋아하던 운동도 공부도 잘하던 은색 안경테가 참 잘 어울리던 멋진 아이였는데 이하 L군이라고 하겠다.


점심시간에 L군이 축구를 할 때면 늘 여학생들 여럿이 단체로 우르르 몰려서 구경을 나가고는 했지만 나는 구경은커녕 L군을 제대로 쳐다보지조차 못 했다.


쑥스러움 많은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은 하교할 때에 L군의 반 앞을 지나가면서 복도의 사물함에 붙어져 있는 자기소개서를 몰래 훔쳐보는 정도였다.





모든 이들이 환영하는 방학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L군을 다시 보게 될 개학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매년 새 학년이 될 때마다 같은 반이 되기를 바랐지만 같은 반은커녕 늘 멀리 뚝 떨어지기만 했고 마지막 희망이었던 6학년 때조차 무슨 운명의 자랑인 건지..

바로 옆 반에 배정되었고 4학년 때 같은 반이라 친해진 친구 K가 나의 옆 반이자.. 무려 L군과 같은 반 짝꿍이었는데 당시 넌 도대체 무슨 복이냐고 K를 매우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나는 L군과 말 한마디 할 껀덕지조차 없었..

아니, 따지고 보면 말을 딱 한 마디.. 내가 해 보기는 했다.




어느 날 쉬는 시간에 K네 반 앞에서 수다를 떨다가 실수로 L군과 부딪혀서 그 아이의 발을 밟게 되었다.


내가 L군을 좋아하는 걸 알던 K는 나의 당황한 모습과 미간에 주름 잡힌 L군의 모습을 보고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서 아주 그냥 웃겨 죽으려고 했고 나는 기어들어가는 개미 목소리로 L군을 올려다보며




“미안...”




딱 그 한마디를 해봤는데..

그때 은색 안경테 너머의 차가운 L군의 눈빛과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너무나 큰 마음의 상처였나...?



머릿속에 내가 L군과 언젠가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라고 수없이 혼자 생각했었지만 맹세코 나의 시나리오에 그 한마디가 미안일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비록 한 번도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바로 옆 반이라 선생님 심부름도 자주 갔었고 체육시간에 반 대항 피구 경기라던가 간혹 반을 합쳐서 수업한 적도 있었고 또 매일 쉬는 시간마다 반 앞에서 본인 짝꿍인 K와 떠들고 있었으니 아마 L군도 내 얼굴 정도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얼굴이라도 알기를 바랐다.


졸업 전에 고백이라도 해 보라고 날 부추기던 불도저 타입의 K는 L군을 몇 년 동안이나 좋아하면서 말 한마디 못 거는 나를 보며 무척이나 답답해했지만 전형적인 소심한 트리플 A형인 나는 지금까지도 평생 먼저 누군가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해 본 적이 없다.



밸런타인데이 혹은 빼빼로데이 이런 날에 미친 척 익명의 쪽지라도 써서 사물함에 몰래 넣어볼까 같은 생각도 했었지만 학교 여학생의 반 이상이 좋아하던 아이돌에게 그게 누구에게서 온 쪽지인지는 전혀 중요하 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나는 바로 마음을 접었다.


그렇게 나는 학교 다닐 동안 같은 반도 한 번도 못 해 보고 끝내 대화 한 번 섞어보지 못 한 L군을 약 5년 정도 좋아하다가 시간은 그렇게 흘러 정말 오지 않았으면 했던 졸업식이 다가왔고 L군은 학교 근처 남중으로 나는 우리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남녀공학으로 진학을 했다.



그렇게 나는 졸업식날이 L군을 평생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 날일줄 알았다.










중학교에 가서 친한 친구들이 생기고 그 또래의 여학생들이 흔히들 하는 학교에 마음에 들거나 관심 있는 남자애는 없냐는 질문에 나는 늘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하던 남자애가 있다고 했고 말 한마디 나눠보지 못한 지난 5년의 순애보 이야기를 들려주면 다들 본인 일처럼 매우 안타까워하고 답답해했으며 물론 당연히 L군의 얼굴도 무척이나 궁금해했다.



내가 중학생 때에는 근처 고등학교나 혹은 대학교 축제에 갔다가 그 밤을 장식하는 하이라이트인 불꽃놀이를 구경을 다니는 게 나름의 유행이었는데 한여름처럼 유독 덥던 어느 봄날, 집 근처 대학교에서 축제 후 저녁에 불꽃놀이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같은 반 친구 A와 함께 불꽃놀이 구경을 위해 집을 나섰다.



우리의 목적은 축제구경보다는 불꽃놀이였고 너무 어두워지기 전에 불꽃놀이 명당이라는 곳에 미리 가서 자리를 잡으려고 걸어가고 있었는데 정말 어느 순간 갑자기 자석처럼 이끌리 듯 보게 된 곳에는 L군이 본인의 친구와 함께 서 있었다.


엄청나게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하지만 서로 얼굴은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딱 적당한 그 정도 거리에..




그리고 L군을 보자마자 나는 그대로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갑자기 얼어붙어서 얼굴이 빨개진 나를 보고 A는 괜찮냐고 어디가 아픈 건지 물었고 아니라고만 하고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내게 A는 영문을 물었다.


나는 정말 간신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내가 누누이 얘기하던 좋아한다던 L군이 바로 저기에 서 있다고.. 그리고 티 난다고 제발 쳐다보지 말라고 너무나 간곡하게 부탁하는 나의 말을 깡그리 무시해 버린 A는 고개를 완전히 돌려서는 대놓고 L군을 잠시 빤히 쳐다본 후 다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마자 한 마디를 던지며 내 등을 떠밀었다.




" 쟤야? 잘생겼네. 한 번 말 걸어봐. “








아니 친구야,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아..


만약 지금의 나라면 같은 학교 나왔고 옆 반이었는데 혹시 나 기억하냐고 앞으로 안 볼 사이라고 생각하고 싱글이라면 밑져야 본전으로 미친 척 번호까지 물어볼 수 있으려나?



하지만 당시의 내게는 번호를 물어볼 용기도 없을뿐더러 있다고 해도 그때는 대부분 흑백폰에 컬러폰조차 매우 귀하던 시절이었다.


고로 대부분의 중1에게는 상대에게 번호 좀 찍어달라고 할 핸드폰조차 없던 시절이다.

친구네 집에 전화해서 혹시 집에 친구 있냐고 묻던 그 시절.




나는 그동안 내 친구 A가 참 수줍음이 많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마도 본인 일이 아니라 그런지 나를 꽤나 적극적으로 꼬드기기 시작했다.


L군이 우리 쪽을 자꾸 쳐다본다나?





정말 솔직히 L군이 계속 쳐다보는 게 느껴지기는 했는데 제발 쳐다보지 말라는 내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A가 참 많이도 힐끔거렸을 거다.


친구야, L군이 이쪽을 쳐다보는 이유가 네가 계속 빤히 쳐다봐서라고는 생각하지 않니?


하지만 A의 생각은 완고했다.





" 아니야, 같은 초등학교였던 동창을 만났으니 반갑겠 지. 말 걸어봐! "





분명 불꽃놀이를 보러 간 거였는데 명당자리를 잡으러 가다가 L군을 본 이후에는 결국 그 장소가 우리의 최종 스팟이 되어버렸고 물론 불꽃놀이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내게 불꽃놀이 따위가 중요한가?






분명 새까만 밤하늘에 수놓아지는 아름다운 불꽃들을 쳐다보고는 있었지만 이상하게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고 나는 그저 느껴지는 L군의 시선과 그 시선에 미친 듯이 뛰던 내 심장박동

그리고 그 아이와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같은 불꽃놀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내 가슴을 설레게 했다.



제발 끝나지 않았으면 했고 매우 짧게 느껴졌던.. 남들은 그렇게 예쁘다고 감동했던 하지만 나는 하나도 기억에 없는 불꽃놀이가 그렇게 끝이 났다.





A는 계속 말을 걸어보라고 했지만 말 걸기도 무서울뿐더러 혹시라도 L군이 나를 기억 못 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에 그렇게 끝내 말을 걸지 못했다.










불꽃놀이가 끝나고 떨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을 겨우 옮기며 집에 가는 길에 L군과 L군의 친구가 아까 떨어져 있었던 정도의 거리를 계속 유지하며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게 느껴졌다.





" 흠... 이상하다. “


" 뭐가? "


" 쟤네 집 이 쪽 아닌데... 아니, 뭐 이 쪽으로 갈려 면 갈 수는 있는데 엄청 돌아가야 할 텐데. "


"너 쟤네 집도 알아? ”


" 아, 학교 사물함 자기소개서에서 봤었어. “





집으로 가는 방향이 아닌데 왜 이쪽으로 오냐고 혹시 너에게 말을 걸려고 오는 거냐라고 호들갑 떨던 A를 진정시키며 아파트 앞까지 왔는데도 L군과 그의 친구는 여전히 말 한마디 없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서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왜 그러나 혹시 친구네가 같은 아파트인 건가 싶었는데 그 궁금증은 바로 A와 내가 아파트 단지 안에 헤어지고 나서야 풀렸다.





A와 헤어진 내가 우리 동 라인 문 앞까지 도착하고 나서야 L군은 본인의 친구와 함께 왔던 길을 다시 그대로 돌아서 나갔다.


그때는 정말로 미친 척하고 쫓아가서 말을 걸어볼까 고민을 했지만.. 소심한 나는 결국 그러지 못했다.





다음 날 학교에서 만난 A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그럼 너 때문에 L군이 우리를 밤길에 아파트까지 데려다준 거냐며 너무 감동이라며 호들갑을 떨었고 친구들에게 본인은 드디어 L군을 봤고 내가 좋아할 만하다는 이야기를 해서 다른 친구들 모두를 궁금하게 했다.





그렇게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서 한 번도 보지 못했을 수도 있던 그래서 어쩌면 금방 잊었을 수도 있었던 나의 L군을 그렇게 우연히 만났다.


말 한마디 한 번 해보지는 않았지만 같은 학교 다녔던 친구라고 어두운 밤길을 뒤에서 함께 걸어줘서 너무나 든든했던 L군을 마지막으로 봤던 그날

L군에게 다시 한번 반한 나는 그 이후에도 약 3년 정도 더 좋아했다.




아마도 그는 본인과 말 한마디 섞어본 적 없는 내가 약 8년간 본인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물론 평생 모를 것이고 그날을 마지막으로 L군의 모습을 다시 본 적은 없지만 마지막으로 봤던 모습조차 멋있었고 설레었다.


첫사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렸고 그저 짝사랑으로 치부하기에는 뭔가 아쉬운 나름 진심이었던 내 첫 풋 짝사랑..





내가 가장 순수했던 마음으로 누군가를 처음으로 좋아했던 소중한 추억을 좋게 기억할 수 있게 해 준 L군이 너무나 고맙고 또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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