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2동
우리 집 뒤에는 헬기산이라 불리는 작은 산이 하나 있었다. 아마 산 꼭대기에 헬리콥터가 이착륙할 수 있는 넓은 공터가 있어서 그런 별명을 붙인 것 같다. 가족들과의 기억, 교회 어린이 부서에서 운동회와 소풍을 했던 기억 속에도 이 산이 있다.
내 또래 많은 아이들이 그랬듯 입학식 이후부터는 혼자 걸어서 통학을 했다. 큰길을 따라서 집에 가면 가장 빠르고 정확하고 안전했지만 그 길이 익숙해지자 새로운 길을 찾아다녔다. 학교 정문에서 나와 큰길이 아닌 주택가를 따라가면 바로 헬기산에 올라가는 입구가 나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후부터는 혼자 산에 올라가 시간을 때우다 집에 가기도 했다.
헬기산의 중턱 즈음엔 큰 바위가 있었는데 유성 스프레이로 ‘자연보호’ 라 쓰여 있었다. 오래된 사진첩 어딘가 어린 사촌동생이 그 바위에 기대어 포즈를 잡고 찍은 사진 속에도 그 네 글자가 뚜렷이 새겨져 있다. 그런 사진이 있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며 살던 어느 날 저녁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바위를 다시 보았다. 내 기억 속, 사진 속 바로 그 ‘자연보호’가 쓰여 있는 바위 밑에서 간첩들이 쓰는 장비가 숨겨져 있었다는 뉴스였다.
자신이 속한 역사/시대의 흐름과 개인의 현실/삶 사이에서 거리감이 없이 살아가는 경우는 드물다. (내 지식과 경험의 한계 때문에 ‘드물다’는 단어를 선택했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한은 '없다'.) 한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아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현재적 시간에서 그 사건의 의미 전체를 인지하며 살아가기란 불가능하기에 거기엔 늘 해결할 수 없는 낯섦이 있다. 큰 그림을 한눈에 보는 통찰을 가졌다 해도 거기에 자기의 전 인격을 투신하며 살아갈 수 없기에 거기엔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회의가 있다. (나는) 시대와 개인의 삶 사이에 놓인 낯섦과 회의의 계곡 어딘가를 왕래하며 무심코 역사 속에 좌표를 찍고 있는 상상을 해본다. 신비로운 것은 그처럼 불분명해 보이는 수많은 개개인의 좌표들 속에서만 역사는 생동감과 진실성을 획득한다는 사실이다. 오래된 사진 속에서, 어느 일기장의 기록 속에서 후대의 사람들은 그 좌표 위에 쌓인 시대의 먼지를 들이마신다.
1997년 최정남, 강연정 부부간첩 사건. 이 두 사람이 바위 밑에 간첩 장비를 묻은 주인공이었다. 적국에 숨어 들어온 지 삼 개월 만에 붙잡혀 아내 강연정은 수사 중 독약 캡슐을 사용해 스스로 생명을 끊었고, 남편 최정남은 이후 전향하였다는 것이 이들에 관해 내가 알 수 있는 마지막 정보이다. 어떤 사람들은 정치적 용어 안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고 상상력을 넓혀가겠지만 나는 오히려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낭만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싶다. 이 두 사람 안에 있었던,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있었던 대답하기 어려운 무수한 질문들을 유추해보며 그때의 간첩사건을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은 우리 시대의 상처라는 범주에 넣어두고 싶다. 그리고 이 짧은 글로 어린 시절의 기억과 시대의 상처 사이에 보잘것없는 다리를 놓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