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변호사를 꿈꾸는 신입변호사님들을 위한 조언
사내변호사를 꿈꾸는 신입변호사님들을 위한 조언
요즘 들어 유난히 신입 변호사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이럴 때면 나도 어느덧 멘토링을 하게 되는 연차가 되었다는 생각에 세월이 무색해진다. 지금은 백 오피스(back office)와 프론트 오피스(front office)의 경계에 있는 내 커리어에 대한 약간은 무모한 확신을 갖고 있지만, 나도 수 년 전 처음 실무수습을 하던 그때에는 인하우스로 법조 커리어를 시작하는 것에 대한 많은 의문을 품었다.
대한민국 변호사 3만 명 시대, 이제는 사업하는 변호사, 방송하는 변호사, 강의하는 변호사, 정치하는 변호사가 흔해질 정도로 법조 커리어도 정말 다양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커리어의 시작을 로펌에서 하게 된다.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법조 드라마를 보면서 변호사는 모두 법정에서 변론을 하는 송무 변호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나처럼 처음부터 사내변호사를 꿈꾸는 신입변호사님들이 내게 찾아와서 묻는 질문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사람이 사내변호사에 적합한가요?’ , ‘사내변호사로 커리어를 시작하면 송무를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요?’, ‘사내변호사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요?’, ‘사내변호사, 정말 워라밸이 좋나요?’라는 질문인 것 같다.
물론 어떤 회사인지, 어떤 산업군에 있는지, 어느 정도 규모의 회사인지에 따라 워낙 직무강도와 조직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나 또한 신입변호사 시절 같은 고민을 오랜 기간 해왔기에, 이렇게 대답해 주고 싶다.
어떤 사람이 사내변호사에 적합한가요?
1. 안된다는 말보다는 해결책을 찾아주려는 사람
때로는 현업이 원하는 정답이 법과 규제의 측면에서 불가능할 때가 있다.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물론 이럴 때는 안된다는 답을 해야할테다. 그러나, 현업이 원하는 것은 그들이 떠올린 그 방법론이 아니라, 그 방법론을 통하여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이다. 리스크를 진단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단한 리스크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이 스킬셋은 문제 해결 능력(problem solving skill)과 유연성(flexibility)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현업이 진정으로 원하는 니즈(needs)를 파악하고, 관리 가능한 리스크 내에서 그 니즈를 충족해줄 수 있는 대안을 찾아주는 것이 사내변호사의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물론 살아서 가야겠지만.
2.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접점을 찾을 줄 아는 사람
세상에 생각처럼 되는 일은 없다. 하나의 의사결정에 얼마나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지. 모두가 쉽사리 동의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애초에 이렇게까지 어렵지 않았겠지.
문제에 대한 답안을 제시하면 되는 외부의 자문 변호사들과 달리, 인하우스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미션을 안고 있기에 문제해결에 대한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때로는 임원진의 힘을 빌어서, 때로는 외부 로펌 의견서의 힘을 빌어서, 딜이 클로징 될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조율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스킬셋은 인내심(perserverance)과 대인관계(interpersonal skill)라는 소프트 스킬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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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산업군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
사내변호사는 법률의 언어를 현업의 언어로, 현업의 언어를 법률의 언어로 통역해줄 수 있는 통역사(translator) 같은 존재다. 외부 자문사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해당 이슈에 대한 히스토리와 레퍼런스라든가 해당 산업의 관행과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일하는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개업변호사와 달리 사내변호사는 직장인이기에 월급에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정을 갖고 이 일을 해내려면, 산업군에 대한 애정이 필요하다.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와 산업에 대한 애정(affection)과 믿음(belief)과 비전(vision)이 없다면 그런 열정을 끝끝내 유지하는 것이 마냥 쉽지는 않다.
나의 경우 스타트업 파운더들을 만나는 것을 참 좋아한다. 파운더들이 인식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각박한 현실 속에서 0 to 100을 해내는 과정에서 자금조달이든 규제분석이든 그들이 필요한 지원을 해주는 것이야말로 내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그 사명감(mission)이 밤낮없이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사내변호사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면 송무를 못하는게 아닌가요?
이건 법무법인 소속 자문변호사들도 동일하게 안고 있는 고민이 아닐까 싶다. 미국에서 로펌 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미국변호사 친구들의 경우, 로스쿨 졸업 이후에는 법원에 발을 들여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자문변호사로서의 커리어를 택하였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일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유난히 변호사 본연의 일이 송무라는 인식이 팽배한 것 같지만, 변호사의 활동무대가 점점 넓어지면서 전문성 또한 더욱 뾰족해지는 이 시점에, 지나치게 이 고민에 매몰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법무법인 소속으로 사건을 수임하던 때, 나를 찾는 의뢰인들은 주로 내게 송무 사건을 맡기지 않았다. 동료 변호사님과 함께 송무 사건을 처리할 때도 있지만, 그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은 사내변호사로서 수행하던 업무의 연장선인 기업법무에 대한 이해였다. 무엇보다도 개업을 하게 되면, 그 절박한 마음과 함께라면 어떻게든 솔루션은 찾게 되어있다. 적어도 기본적인 리걸 마인드를 구비한 변호사들에게, 개업의 핵심은 고객이 있느냐, 라는 영업의 문제이지, 사건 수행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또한 다시 선택권이 있다면, 1–3년 정도는 법무법인에서 송무든 자문이든 경험을 하고나서 사내변호사로 이직을 하는 커리어를 깊이 고려해볼 것 같다. 특수하게도 나는 항상 외국계 회사에서 사내변호사 생활을 해왔기에 소송 수행을 요청받는 경우가 없었지만, 여전히 국내 기업들의 경우 소송 수행 경력을 상당히 비중있게 평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법무법인에서의 경력은 변호사 업에 대한 기본기를 쌓을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기 때문에, 첫 시작을 로펌에서 하는 것은 가치 있는 선택일 수 있다고 본다. 송무(litigation)든 자문(corporate)이든.
사내변호사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요?
변호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실무경험이다. 비단 사내변호사 뿐 아니라 변호사든 회계사든 컨설턴트든 투자자든 프로젝트 기반의 전문용역을 제공하는 직업이라면, 그 어떤 자격증과 학위보다도 내가 어떤 사건을 수행하고 어떤 딜에 관여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그걸 트랙 레코드(track record)라고 부른다.
초년차 변호사들 중에 미국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할까요, 박사 과정에 입학할까요, 같은 질문들을 많이 하는데, 평생 공부가 몸에 밴 변호사들이 커리어점프를 위해서 또 공부를 하려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습관이겠지만, 실제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자격증이든 학위든 있으면 더 좋겠지만, 실제로는 어떤 일을 실무적으로 경험해서 어떤 스킬셋을 보유하고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어쩌면 초년차 변호사가 겪는 실무는 파트너 또는 매니저의 의사결정에 따라 그저 주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은 만큼, 경험하게 되는 실무의 영역은 선택 보다도 운이 더 크게 작용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을 두드리면 항상 열리기 마련이기 때문에, 나의 관심사를 끊임없이 어필하면서 적극적인 자세로 내게 주어진 일을 하다 보면 해당 영역에 한층 더 가까워진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커리어에서 피봇(pivot)은 어찌보면 필수불가결이다. 내가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섹터가 생각보다 나와 잘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외부적인 환경이나 삶의 단계에 따라 새로운 분야로 옮겨야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낙담하지 않길. 레쥬메는 결국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다. 내가 어떤 이유로 이직을 하게 되었고, 각 단계에서 어떤 실무 경험과 스킬셋을 쌓았는지를 잘 엮어내다 보면, 어느덧 내가 원하는 자리에서 활약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테다.
사내변호사, 정말 워라밸이 좋나요?
사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당연히 전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자문사인 로펌에 재직한다면, 의뢰인을 위해서 항상 대기하는 마음으로 회사생활을 하게 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나의 시간을 내가 컨트롤하기는 어렵다. 반면, 사내변호사는 외부 자문사에게 일을 건네는 입장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업무시간만 준수하면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가 있다. 금융 섹터에서 셀사이드(sell side)보다 바이사이드(buy side)가 조금 더 자유로운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내변호사도 결국 조직생활이기 때문에, 조직 내에서 우수한 퍼포먼스를 내기 위해서 때로는 라이프를 희생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놀랍게도 나는 삶에 워크-라이프 밸런스가 없다. 내게 일은 곧 삶이고, 삶은 곧 일이기에. 밤 늦게 때로는 주말에 일을 하는 것은 퍼포먼스와 팀 하모니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내게 자율적으로 일과 삶의 균형을 조정할 수 있는 재량(discretion)이 주어지는 직장문화 속에 놓여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변호사인 동시에 심사역으로 일하고 있는 지금, 나는 내 삶에 만족한다. 때로는 일과 삶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정도로 내 일을 사랑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직도 끊임없이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한다. 사회초년생 때 하는 고민과 중년에 접어들어 하는 고민의 주제와 결이 달라질 뿐, 현대인에게 커리어에 대한 깊은 성찰은 평생 따라다니는 숙제일 것이기에 내 삶의 절반 이상을 함께하는 ‘일’이라는 업을 선택함에 있어, 나의 우선순위를 항상 잘 살피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궁금한 것이 있다면 shin.eunhae.823@gmail.com 으로 메일을 보내주시면, 시간이 다소 소요되더라도 답변을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