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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갤럭시맘 Oct 19. 2020

개천보다 더한 늪으로 떨어질까봐

불안감이 만드는 헬조선맘


그런데 언니
요즘 저는 하얗게 된 얼굴로 새벽부터 밤까지 학원을 오가는 아이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해요.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김애란, [비행운] 중에서           


 2020년, 코로나로 인해 늦춰진 수시 원서 접수 기간이 드디어 끝났다.

 홀가분하게 읽고 싶었던 책을 쌓아놓고 읽었다. 그런데 이 한 구절을 읽고 옆에 곤히 잠든 딸을 보는 순간 조금 슬퍼졌다.  어느 대학에 원서를 넣어야 합격할지 첩보작전 방불케한 눈치 작전을 펼치느라 기를 소진해서 일수도 있다. 형편없는 자소서를 많이 보느라 머리가 마비된 거 일수도 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이 한 구절이 계속 맴돌았다.

    

 ‘(이렇게 죽어라 하는데)겨우 내가 되겠지.’     


 내 자식은 나보다 나은 삶을 살길 바래 죽어라 교육 시키는 이 땅의 모든 엄마의 마음이 전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이제는 이 말이 점점 나와 내 아이에게도 해당되는 것 같아 슬펐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학부모들께 왜 이렇게 애들 교육 열심히 시키세요? 하고 물어본다. 다들 그저 웃을 뿐이다. 하지만 안다. 꽃향기처럼 은은하게 뿜어져 나온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가난만 물려줄 거 같아서요.”          


 그렇다. 지금의 학부모들은 개천에서 용을 내보내려고 자식 교육에 올인하는 에듀푸어가 아니다.

개천보다 더한 늪과 하수구로 안 떨어지려고 죽어라 시키는 것이다. 그래도 공부만이 내 아이의 살 길 같아서 그러는 거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사다리’를 올라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정글짐’ 같은 세상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이 복잡한 정글짐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지금의 교육이 과연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이미 우리는 그 답을 잘 알고 있다.




 가장 부유하게 태어났지만 가장 가난하게 살 세대.

 이 말은 우리 아이들 뿐만 아니라 현재 20-30대에게도 해당된다. 우리 부모세대는 고성장 시대로 이때는 사람들에게 많은 기회가 있었고 빈곤한 상태에서 많은 사람들이 중산층이 될 기회가 많았다.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이 자신보다 잘살 수 있기를 기대라도 할 수 있었다. 소 팔고 논 팔아 교육시키면 그 자식 덕을 조금이라도 볼 수는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자식들 덕을 보기는커녕 빌붙지만 않고 자기 앞가림만 해도 그저 감지덕지한 시대에 들어섰다.

  ‘저성장’만 우리가 우리의 삶의 터전을 ‘헬조선’이라고 부르게 만든 것은 아닐 것이다.

 극심한 취업난, 과연 어디까지 오를 것인가 예측불허인 집 값, 갈수록 교묘해지는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은 불공정과 불공평, 뭐 하나 살 때마다 각종 쿠폰을 긁어모아야 겨우 살까 말까한 높은 물가, 세계 최고의 자살률, 세계 최고의 고령화 & 저출산률, 그냥 짜증 나는 북한과 중국과 일본, 이제 그러려니 하는 미세먼지, 정말 죽이고 싶은 코로나 19, 점점 바닥나는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는 경쟁 상품들(그나마 BTS가 있어 참 고마움), 차별과 혐오 등 우리는 그야말로 헬조선에서 살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지극히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부모라면 당연히 자식에게 ‘교육’을 아주 최고로 해주고 싶지 않을까? 금수저 부모는 건물을 물려주지만 한 평 땅도 물려줄 수 없는 서민 엄마인 나는 무얼 해줄 수 있단 말인가? 그저 공부만이 내 아이를 살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금수저 부모야 말로 더 좋은 교육을 시킨다. 물려준 거 잘 지키라고. 그러니 원래 교육은 사랑이고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이다.

 (이 ‘교육의 방식’에 대한 잘잘못은 나중에 뒤에서 말하겠다.)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죽어라 열심히 해도) 겨우 내가 되겠지."


  소설 속 이 말이 무섭도록 슬픈 건 이제 겨우 ‘나’조차도 못 될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 아닐까?

앞으로 다가올 시대는 지금껏 생각지도 못한 거대한 변화가 펼쳐질텐데. 여전히 산더미 같은 문제집과 시험지, 답답한 주입식 교육과 입시, 사교육 시장과 고여있는 공교육. 참 징글징글하다. 교육은 사회를 외면하고 있다. 사회도 교육을 무시하고 있다. 이건 쌍방과실 미필적 고의다.           


 서태지와 아이들 그리고 HOT의 음악을 들으며 십대들의 승리를 당연히 여기며 자란 나.

 2002년 월드컵을 통해 대한민국의 가능성을 확인했던 나. 그 소녀가 커서 엄마가 되면 그 때는 좀 세상이 달라질 줄 알았다. 내 아이들은 좀 다르게 교육받고 학교생활을 나보다는 행복하게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도 이 모양이다. 무슨 거대한 미스테리, 수수께끼도 아닌데 답을 알아도 답에 이르지 못하는 우리가 참 답답하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나훈아 노래가 더 끌린다. 나야말로 테스 오빠한테 묻고 싶다. 왜 이러냐고.


 내가 자라서 사회에 나왔듯 이제 내 아이가 교육을 받고 자라 사회로 나갈 것이다.

그렇게 교육의 문제는 사회의 문제가 되고 돌고 돈다. 그래서 사회에 대한 성찰 없이는 교육을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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