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救援)
5학년 때, 웅변을 지도하던 옆 반 남자 선생님이 수업 끝나고 남으라고 했다. 당시에 무슨 이야기 대회에 나가려고 준비하고 있어서(그땐 대회도 참 많았다. 주로 반공에 관한 것들), 그러려니 하고 그 선생님 교실로 갔다. 그 반도 수업이 다 끝나서 교실엔 그 선생님뿐이었다. 선생님은 이야기 대회는 웅변과 달라서 부드럽게 말하듯이 해야 한다면서, 교탁에 서서 한 번 해 보라고 했다. 교탁에 서서 준비된 원고를 말하듯이, 읽었다. 선생님은 가까이 오더니, 이런저런 손짓을 하면서 해야 자연스럽다고 가르쳐줬다. 그러더니 갑자기 날보고 자길 업어달라고 했다.
“못 업어요!”
덩치 큰 선생님을 어떻게 업느냐고, 못 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그 선생님은 계속해서 내 뒤로 와서는 장난처럼 나에게 업히려고 했다. 그때, 그 반 남자애 하나가 ‘드르륵~!’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뭔가 놓고 간 걸 찾으러 온 것 같았는데, 그 꼴을 보고는 제가 더 당황해서 집안에 잘못 들어온 새처럼 여기저기 부딪치다가 의자를 붙잡고 뭐라고 하더니, 다시 나가 버렸다. 목격자가 생겨선지 그 선생은, 집에 가라고 했다.
기분이 더러웠다. 그 남자애가 그렇게 당황한 것만 봐도 내가 아주 불쾌한 꼴을 당했단 걸 알 수 있었다. 평소에도 느끼하고 오버스럽더니 역시나 개ㅅㄲ이라고 아무리 욕을 해 봐도 기분이 풀어지지 않았다. 더욱 싫은 것은, 학교에서 그 남자애를 볼 때마다 내가 창피해지는 것이었다. 난 아무 잘못도 없는데, 왜 내가 창피해야 하는지, 너무 싫었다.
중학교 1학년 땐, 영어 선생한테 더한 꼴을 당했다. 입을 맞추려고 했다. 도망쳤고, 본 사람도 없었지만, 그 밤은 지옥이었다. 다음 날부터 난, 영어시간에 하얀 벽만 노려봤다. 내 자린 출입구 쪽 맨 앞자리였는데, 인사도 안 하고, 필기도 안 하고, 따라 읽지도 않고, 영어 선생을 보지도 않았다. 영어 선생은 들으라는 듯, 선생님을 보라고 자꾸 얘기했지만, 샤프를 잡은 내 손은 부르르 떨리기만 했다. 와중에도 그 영어 선생은 수업 중에 여학생들을 교탁 앞으로 불러내 은근히 놀리고 추행했다. 점점 영어는 끔찍한 것(그래, 내가 영어 못한 건 다 그 새ㄲ...., 선생 탓이다!)이 되어 가는데, 어느 날부터 그 영어 선생이 안 보였다. 소문엔 그전에 있던 학교에서 사기를 쳐서 경찰에 잡혀 갔다고 했다.
그 두 선생들이 나에게만 그랬을 거라곤 생각 안 한다. 절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피해자는 많을 것이다. 그들은 상습범이다. 말 그대로 지위를 이용해, 어린 제자들을 추행한 파렴치한들이다. 하지만 그때의 어린 난, 그 누구에게도 그 얘길 안 했다. 담임 선생님들은 물론, 엄마에게도, 언니들에게도... 아빠나 오빠들한테는 말할 것도 없다. 얘길 하면, 사람들이 다 알게 되고, 가족들도 다 맘 아파할 것이 싫었다. 그냥 나 혼자 조용히 해결하고 싶었다. 나의 구원(救援) 자는 오직 ‘나’ 뿐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 남자애가 교실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그 영어 선생이 사기죄로 경찰에 잡혀가지 않았다면, 난 나를 구원할 수 있었을까... 우연(偶然)에 기대서 구원을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당시 어린 내가 어떤 기분이었고, 어떤 상태였는지 어른이 된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느낀다. 난, 어리지만 얘길 하면 오히려 나만 더 이상한 눈길 받다가, 흐지부지 끝날 거란 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얘길 하는 거냐고 했을 수도 있다. 당시 사회가 그랬으니까. 그리고 그걸 제일 잘 알고 있는 것들이 바로 그 선생들이었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아이들은 얘기하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지금 많은 얘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어른들이 할 일이 그거다. 아이들이 걱정 없이 얘기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지금 어린 영혼들아, 다 얘기해라. 다!! 씨가 마르지도, 지구에서 떠나지도 않는 그것들이 제일 겁내는 게 소문나는 거다. 찍히는 거다. 누구보다 그거 잘할 수 있잖아, 느낌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