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엄마가 팔과 다리가 동시에 부러져 대학병원 정형외과에 입원하신 적이 있다. 수술을 해야 해서, 간병을 자처했다. 생전 효도 한 번 못 했는데, 몸으로라도 때우자 싶었다. 병실이 꽉 차서, 2인실에 들어갔다. 수술 날짜가 잡히고, 그 날 수술하실 분들 중 엄마가 제일 어려서(?) 맨 마지막 순서라 대기 시간이 길거라고 했다.
‘엥, 낼모레 여든인 울 엄마가 젤 어리다고?..’
같은 날, 수술하는 옆 침대 할머니는 낼모레 아흔이셨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다. 하지만 졸지에 혼자 움직일 수가 없게 된 엄마가 많이 힘들어하셔서, 나도 빠릿빠릿해질 수밖에 없었다.
옆 침대 할머니는 젊어서 혼자되셔서, 아들 하나를 키웠다고 하셨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다 굴러서 고관절이 빠졌단다. 부러지진 않아서 수술도 간단했지만, CC TV를 확인해 보니 할머니가 에스컬레이터 손잡이를 놓은 게 확인돼서 보상을 받기 어렵다고 했다. 할머니는 자기가 도대체 왜 손을 놨는지 모르겠다고 자책하셨다. 할머니는 간병인 여사님이랑 생활하셨는데, 자꾸 미안해하며 간병인 눈치를 보셨다.
간병인 여사님도 좋은 분이셨다. 날마다 할머니 몸을 깨끗하게 닦아주시고,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간병인인 나를 광명의 길로 인도해 주셨다. 할머니는 자신을 자주 찾지 않는(못하는) 아들을 기다리셨다. 눈길이 항상 문 쪽을 향했고, 나 하고 눈이 마주치면,
“옛날에 우리 아들이 엄마가 어디 가 버릴까 봐, 내 치마를 꼭 잡고 잠들고 그랬어”
하며 웃으셨다. 할머니는 우리 엄마랑 수십 년 며느리랑 같이 산 얘기를 하곤 하셨는데, 할머니나 며느리나 힘든 세월이었을 거라고 엄마가 그러셨다. 할머니가 요양병원으로 옮겨가시고, 간병인 여사님도 다른 병실 환자를 맡아 가셨다.
새로 옆 침대로 들어오신 할머니는 낼모레... 백 살이셨다. 귀가 좀 어둡고, 약간 정신이 흐리신 듯했지만, 내가 보기엔 불리한 것(?)만 모른 척하시는 것 같았다. 역시나 간병인 여사님이랑 같이 오셨는데, 역시나 고관절이 빠졌다고 했다. 고관절을 고정해 놓은 걸 못 참아하셔서, 밤에 소리를 자꾸 지르셨다. 갈대처럼 깡마른 할머니에겐 묘하게 ‘신여성’의 향기가 났다. 딸들이 찾아와, 돈을 어디에 두셨는지 물었지만 모른 척하시더니, 브라자(속옷)에 넣어뒀다고 며칠 만에 말씀하셨다. 치아 임플란트를 하려고 모으셨다고 했다.
통장은 딸들이 아닌 집에 오는 요양 보호사분에게 맡겼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은 간병인 여사님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아무리 그래도 자식이 최고라고 흥분했다. 이 간병인 여사님은 ‘직무유기’였다. 입으로만 일을 했다.
가장 놀란 건 할머니가 남의 집에 세 들어 사신다는 거였다. 그 주인집 할머니가 아들과 함께 문병을 오셨는데, 딸들과 안 맞아서 같이 못 살고 나와서, 자기 집에 살고 있다고 하셨다. 엄마도 놀라셨다. 상수(上壽-100세)는 거뜬하시리라. 이번 할머니도 요양병원으로 가셨다.
주치의가 퇴원을 종용했다. 엄마는 이제 겨우 보조기 밀고 몇 걸음 걷는데, 벌써 움직이기가 불안하고 무섭다고, 며칠만 더 있다 가고 싶다고 하셨다. 주치의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더 이상 해 줄게 없으니, 다른 분들처럼 요양병원이나 작은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자기 가족이 입원해도 그렇게 한다면서, 당장 병원을 알아보라고 했다.
‘대학병원에서 해 줄 게 없는데, 작은 병원에선 뭘 해 줄 수 있나요...?’
밖엔 눈이 펑펑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