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a Sep 06. 2024

부모의 거울

고등학생 때였나. 나도 모르게 싫어했던 <부모의 행동>을 답습하는 걸 깨닫고 화들짝 놀랐던 적이 있다. 정확히 어떤 행동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걸 자각했을 때의 기분은 분명하다. 매우 찝찝하고 불쾌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듯이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어머니와 아버지도 평범한 존재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또래 친구들(의 부모) 보다 젊은 나이, 맞벌이, 개방적인 사고방식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나는 1992년 음력 5월 세상에 태어났고,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우리 엄마는 나를 <지우려고> 했었다. 왜냐하면 당시 나의 부모는 <결혼 전>이었기 때문이다. 구세주와도 같은 큰 이모 덕에 스물셋 어린 공여사는 나를 낳기로 결정하고, 그렇게 난 존재할 수 있었다.


내 어린 기억에 부모님은 항상 바빴다. 정말 일을 많이 했는지는 모르지만, 긴 시간 집에 없었던 건 분명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아버지는 나에게 전기밥솥으로 밥 짓는 법을 알려주었고, 하교 후 나와 동생은 알아서 밥을 먹는 일이 당연했다.


그게 딱히 불만인 적은 없었다. 그냥 해야 되는 건 줄로만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핸드폰을 썼다. 부모님은 항상 늦게 들어오시고, 그에 맞춰 나도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우리 연락은 하고 살자”며 친구가 다니는 대리점에서 맞춰 준 폴더폰의 생김새가 아직도 선명하다.


사실 어릴 땐 잘 몰랐다. 내가 왜 그렇게 반에서 반장이나 부반장을 하고 싶어 했는지 말이다. 중학교 1학년 때 학교 축제 장기자랑에서 노래를 부르고 대상을 탔다. 기쁜 마음에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했는데 반응이 시큰둥했다. 전화를 끊고 엉엉 울었다. “장하다, 내 딸” 이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성인이 되고 나서 내가 애정결핍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친구들에 비해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졌지만 사랑을 갈구하기엔 이미 너무 커버린 뒤였다. 나는 연애와 대외활동으로 그 사랑을 채우려 했다.


자기소개서에 성장과정을 쓸 때면 <나의 선택을 존중하는 부모>와 그에 따른 <책임감>을 어필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정말 나에게 무언가를 강요한 적이 없다.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네가 행복하면 그걸로 됐어,라고 항상 나를 응원하는 쪽이었다.


그런데 사실은 그 응원이 진심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 글을 쓴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지도 모른 채,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힘들면 때려치우라는 말을 너무나도 쉽게 하는 그들에게 나는 오늘 또 상처를 받았다.


로컬 스타트업 기업의 공간 매니저로서 2년을 조금 넘게 일했다. 정말 매일이 사건 사고에 체력적으로 힘든 건 둘째 치고, 정신적으로도 당연히 고되다. 그런데 나는 아직 이 직장을 사랑하고, 일 하는 것이 재밌다. 당장 그만둘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나의 부모는 내가 피곤해 보이면 바로 “때려치워”라고 말한다.


그게 나에 대한 걱정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전혀 고맙지가 않다. 아빠는 오늘 나에게 “비전도 없는 그런 회사“라며 내 직장을 비하했다. 아빠의 기준에 내가 다니는 곳이 정녕 <비전이 없어> 보이더라도 그걸 딸에게 직접적으로 할 소린가? 싶다.


게다가 우리 부모는 내가 2년 넘게 이 직장에서 공연을 올리고 있음에도 단 한 번도 보러 온 적이 없다. 나는 이게 나에 대한 관심의 척도라 생각하고, 정확히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관심도 없는 사람이 나의 일에 대해 평가하고 조언할 자격은 부모라도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부모에게 실망한 날. 다시 한번 상처를 받은 날. 부모의 거울인 나, 부모가 될 자신이 없는 나의 하소연.

작가의 이전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