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희영 Mar 02. 2020

엄마와 혜화역과 그날의 파스타

애호박을 넣은 명란 오일 파스타

 3년 전 입시 시험을 치르고 난 후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나와 엄마는 혜화역으로 향했다. 요즘 맛집은 인스타그램으로 찾아야 한다는 엄마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 날이었다. 가게로 가는 도중 이 벤치에서 누구와 이야기를 했고 또 저 장소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엄마는 자신의 대학 시절을 전부 기억하고 계셨다.


그렇다면 나는 그날 긴 웨이팅을 기다려가면서 먹었던 한 가게의 파스타를 기억할 것이다. 파스타에 무슨 애호박이야, 라는 생각이 무색할 만큼 애호박은 면 사이사이에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씹을수록 달큰한 맛이 우러났고 밋밋할 수 있는 식감에 아삭함을 더했다. 뒤에 고소하게 올라오는 명란젓과도 무척 잘 어우러졌다. 호들갑을 떨면서 먹었던 파스타 한 그릇에 그날 자리에 없던 남동생과 아빠는 평생 알 수 없을, 나와 엄마만의 작은 연대감(?)이 생겼다. 물론 나 혼자만의 생각이다.


 그 후 집에서 종종 명란젓을 넣은 파스타를 해 먹는다. 올리브 오일을 넉넉하게 두른 팬에 채 썬 애호박을 볶다가 삶은 면을 넣고 껍질을 제거한 명란젓은 마지막에 넣는다. 그래야 수천 개의 알들이 사방으로 튀는 걸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다. 명란젓 하나를 통째로 넣으면 마지막에 따로 간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애호박에(집에 마늘이 있어서 그냥 넣어버린 나는 뼛속까지 한국인이다. 애매하게 남은 양파도 넣어 봤는데 괜찮았다.)  살짝 소금간만 해주자.


 엄마는 가끔 내 앞에 앉아서 포크로 면을 돌돌 말아 한입 드신다. 맛있다는 말도 빼놓지 않으신다.

그때 그 집 진짜 맛있었는데, 그치? 또 갈까? 별로 안 멀어.

 지하철로 장거리를 이동하는 걸 싫어하는 엄마를 보면서 하루빨리 운전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주 아니더라도 적지는 않을 만큼, 기억에 남을만한 곳을 함께 가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얇게 덮어둔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