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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슬욱 Nov 03. 2019

나는 가끔 배를 탄다

홍콩 스타페리

    홍콩에서 불현듯 배가 타고 싶을 때가 있다. 홍콩섬과 구룡반도를 이어주는 스타 페리. 홍콩섬 센트럴과 구룡반도의 침사추이 사이를 운행하는 이 배는, 운행 시간은 약 7분이며 가격은 2.2 달러 (약 330원)로 아주 저렴하다. 배선 간격은 약 5분에서 10분 사이로 짧아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다. 침사추이에서 탑승할 때도 있지만, 주로 북쪽에 있는 집에 돌아갈 때 야경을 감상할 요량으로 센트럴에서 탑승한다. 센트럴 부두에서 옥토퍼스 카드 (우리나라의 티머니와 비슷한 홍콩의 교통카드)를 찍고 간편히 입장한 뒤 배로 통하는 길 앞에 있는 철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린다. 철문 앞에는 한두 명의 스타페리 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배가 들어오면 승객들을 위해 철문을 열어준다. 길을 따라 아래로 20초 정도만 걸으면 배에 몸을 실을 수 있다. 배 앞에 근무하고 있는 또 다른 직원은 승객이 전부 탑승하면 문을 닫고 선장에게 출발 신호를 준다. 배의 문이 닫히면 배는 지체하지 않고 출발한다. 그렇게 7분 간의 짧은 여행이 시작된다. 배는 출렁이는 파도 위를 넘실거리며 바다를 가로지른다.

스타페리 선상에서 찍은 IFC 건물

    홍콩섬은 "섬"이긴 하지만 센트럴, 완차이, 코즈웨이 베이 등 명실상부 홍콩 중심지가 모여있기 때문에 홍콩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 교통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다. 수많은 홍콩발 2층 버스는 홍콩의 다른 지역으로 승객을 끊임없이 실어 나르며, 홍콩섬은 홍콩 각지에서 모여든 버스로도 붐빈다. 지하철 (MTR)도 마찬가지다. 1분 간격으로 떠나고 도착하는 센트럴의 지하철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품는다. 그런데 "섬"이라는 본질 때문일까. 다양한 방법으로 쉽게 도달할 수 있는 홍콩섬이지만 마음속에는 이상하게 거리감이 있다. 갈 때마다 먼 길을 가야 하는 것 같은 불안함과 거기에서 오는 약간의 부담감. 하지만 막상 도착했을 때는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새로운 세계를 여행한다는 설렘. 이런 복잡한 감정 때문에 홍콩섬으로 향할 때는, 항상 홍콩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런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다. 도심 속에서의 작은 여행. 이 여행하는 기분을 가중시키기 위해, 홍콩섬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할 다른 교통수단보다 시간이 배로 많이 걸림에도 가끔씩 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곤 한다.

스타페리 선상에서 찍은 구룡반도

    바다 위를 천천히 항해하는 배 위에서 구룡반도를 등지고 점점 멀어져 가는 홍콩섬을 바라본다. 뱅크 오브 차이나 (Bank of China), IFC, HSBC, 호프웰 센터 (Hopewell Centre) 등 홍콩섬 북쪽 바다 앞에서 나란히 서있는 건물들은 배가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고개를 치켜들고 쳐다봐야 할 정도로 높이 솟아 있지만, 배가 구룡반도에 다가갈수록 그 크기가 작아지고 결국 손바닥 하나로 가릴 수 있을 정도가 된다. 반대로, 구룡반도에 솟아있는 AIA, 문화중심, 하버시티 등의 건물들은 처음에는 희미하지만 다가갈수록 거대해지며 도착했을 때는 또다시 고개를 치켜들어 봐야만 한다. 이별과 만남. 홍콩섬과의 이별과 구룡반도와의 만남이 공존하고 있는 7분 간의 짧은 시간 동안 짠 바다 냄새를 맡으며, 얼굴을 끊임없이 스치는 바닷바람을 느끼며, 홍채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수많은 홍콩섬의 불빛을 바라보며 잠시 현실에서 벗어난다. 육지와 비교했을 때 턱없이 작은 배라는 공간 안에서 바다 위를 항해하고 있는 몸처럼, 마음 또한 무언가에서 벗어나 홀로 존재하게 된다.

   홀로 남은 육체와 정신을 가지고 단 한 가지 생각에 잠긴다. 어머니. 이 화려하게 빛나는 불빛을 거대한 몸으로 홀로 받아내고 있는,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낯선 공간 홍콩 바다 위에서 세 달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돈다. 암세포가 온몸으로 퍼져 젊은 나이에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하셨던 어머니. 한평생 아들만 생각하셨던 어머니. 어렵게 아들을 키워놓고 남은 여생을 재미있게 사실 일만 남았던 어머니. 아들에게 부담될까 자신의 병을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까지 숨기셨던 어머니. 타지 생활하는 아들의 안부를 항상 걱정하셨던 어머니. 날씨가 조금 선선해지는 11월에 아버지, 동생과 함께 꼭 홍콩에 놀러 오시겠다고 나와 약속했던 어머니. 이 약속 때문일까. 양쪽에서 화려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수많은 건물들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빅토리아 하버 선상 위에서는 유독 어머니가 그리워지며, 그녀와 함께 했던 순간들로 머릿속은 꽉 채워진다. 그러다가 배가 구룡반도에 도착하여 배의 문이 "쿵"소리를 내며 땅과 연결될 때, 나는 꿈에서 깨어난다. 7분이라는 짧은 시간이 야속하기만 하다.

    여행한다는 기분을 가중시키기 위해 배를 탄다는 것이 사실은 어머니를 마음껏 그리워하기 위함임을 깨달았을 때, 내 마음은 훨씬 홀가분해졌다. 바닷바람에 눈물 몇 방울을 실어 바닷물에 던진다. 눈물을 머금은 바닷물이 흘러 흘러 그녀에게 다다르길 바라면서. 홍콩의 야경, 바닷바람, 바다 냄새가 선물해주는 7분 동안의 추억 여행. 이 여행을 하기 위해 오늘도 홍콩섬에서 구룡반도로 가는 배로 몸을 싣는다. 만남과 이별이 공존하는 스타페리 선상. 어머니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공간과 시간. 홍콩섬과 구룡반도라는 거대한 현실과 잠시 동안 떨어져 있을 수 있는 귀중한 공간과 시간 속에서 나는 조용히 마음속으로 어머니의 안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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