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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슬욱 Apr 29. 2020

엄마에게

    엄마! 저 성욱이에요. 지금은 분명 좋은 데에 가 있을 테니, 이 편지를 틀림없이 읽으실 수 있으리라 믿어요. 저는 2월 말에 홍콩에서 돌아와 한국에서 지내고 있어요. 계속 홍콩에서 지내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비자 문제로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어요. 혼자 집에 있을 때 분명 누군가가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있고, 무슨 소리라도 거실에서 들려야 하는데 들리지 않고, 내 머리를 쓰다듬곤 하던 촉감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을 때 엄마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져요. 이 감정을 몇 번이나 친한 친구, 가족에게 이야기해 보기도 했지만 그때뿐이지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다시금 슬픔이 찾아와 견딜 수가 없었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찰나, 오늘 아침 집에 나설 때 이중섭 화백의 그림과 그가 아내와 아들들에게 썼던 편지가 담겨있는 책을 아주 우연히 집어 들게 되었어요. 얼마 전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다 읽었거든요. 그래서 새로이 읽을 책이 필요했는데 마침 책장 위에 올려져 있는 이중섭 화백의 그림이 인쇄되어 있는 책의 표지가 눈에 확 띄는 게 아니겠어요! 고민하지 않고 책을 집어 들고 집을 나섰어요. 

    아빠나 지연이는 기본적으로 독서를 많이 하지 않고, 독서를 하더라도 실용서 위주로 하기 때문에 이 책을 샀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이 책을 산 기억이 없기 때문에 분명 엄마가 산 책이리라 믿어요. 책, 그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이젠 이런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으니 너무 허전해요. 엄마의 손 떼나 향기가 조금이나마 페이지 사이사이에 남아있을까 봐 책장을 넘길 때마다 냄새를 맡고 손으로 쓰다듬기도 해 보았는데, 어떠한 물리적인 흔적도 느낄 수 없었어요... 하지만 문자와 그림 안에는 엄마가 내게 물려준 비슷한 취향과 예술에 대한 애정이 분명 스며들어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한결 기분이 좋아져 독서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이중섭 화백은 가족을 일본에 보내고 혼자 한국에 남아 가난한 생활을 이어가며 작품 활동에 전념했었죠. 그러다가 스스로 지쳐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가족은 그의 유일한 버팀목이자 고독한 예술가로서의 삶을 이어나갈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던 것 같아요. 이중섭 화백이 편지를 쓰며 근황을 전하고, 그들에 대한 사랑을 전하며 그리움을 해소하는 모습을 보고 저도 엄마가 너무 보고 싶을 때 더 이상 혼자 힘들어하지 말고 엄마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기로 다짐했어요. 그 책을 저에게 남겨주셔서 고마워요.

    이중섭 화백은 편지에 항상 멋진 삽화를 그려 넣었는데, 저는 그림실력이 좋지 않아 그렇게 하지 못 하는 게 아쉬워요. 대신 엄마가 생전 좋아했던 이중섭 화백의 그림을 첨부하여 보냅니다. 사랑해요.


2020. 0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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